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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Oct 21. 2023

80년대생 덕후가 되고싶어

231011 언저리의 기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확신의 내향인이 인싸 소리를 듣다니. 저녁모임 하나 주최했다가 겪은 일이다.


지난 여름이 끝나갈 무렵. 회사 전 인원이 모여 워크샵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우리 회사가 참 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이 수많은 90년대생들 가운데에서 노인이 되고 만 80년대생을 한번 모아보고 싶어졌다.


싶어졌다, 로 끝났어도 됐을 텐데. 한 명이 덥썩 물고 두 명이 덥썩 물더니 약간 기정사실처럼 되어 버렸다. 열 명 남짓이니 참석 의사 묻기도 어렵지 않아서, 가능한 날을 취합하고 저녁 먹을 곳을 예약하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같다.


다들 뭐 이런 모임이 다 있대~? 라는 느낌으로 호기심 주머니를 하나씩 품고 모인 자리였다. 과반수 이상인 80년대 후반생들은 드디어 막내를 할 수 있다는 기대로 온 것 같았고, 80년대 초반생들도 비교적 편한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 반가운 것 같았고.


대표님도 함께한 80년대생 모임. 대표님 주머니를 털어먹은 80년대생 모임.


무엇보다 좋았던 건, 구성원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회사에서는 워낙 뉴비이다 보니 질문하고픈 것이 많았는데. 묻고 나서 답을 듣는 것도 좋았고, 서로 다른 팀에서 오신 분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제작자 입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반응과 오피스에서 사업적으로 접근하는 결과값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 줄이야.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피디는 눈을 좀 더 크게 뜰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이어져도 돼요, 우리 많이 열려 있잖아요. 언제나 마음에 새겨야 할 말.


덕후인 동료들을 볼 때마다 왜 나에겐 "타고난 하고 싶은 것"이 없는지 안타까워하곤 했다. 무언가를 덕질한다는 건 피디에게 상당히 성능 좋은 무기와도 같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안타까워하면서 그 "하고 싶은 것"을 발굴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 적은 없다. 발견이 있어야 풍덩 빠져들 수도 있는 건데 왜 그걸 간과했을까.


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늦을지도 모른다. 아직 하고 싶은 게 확실하지 않아서 소극적인 거야, 라는 변명은 그만하기로 하자.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그냥 게으른 거라고들 하잖아. 가끔은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내가 무언가에 적극성을 보이면, 언젠가 그것은 내 것이 되어있을 것이다.


PS.


이번 촬영도 내 것이라 생각하고 해야지. 메인 피디만 프로그램의 주인인 건 아니니까. 적어도 내 촬영 때에는 이 프로그램이 내 것이라 생각하고 움직일 거다. 마치 여행 덕후인 것처럼 다니고 찍고 이야기를 녹여서 꼭 재밌는 부분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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