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etanoi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ie Coree Aug 27. 2020

전업 주부에 관하여

주부도 직업이다

일인 가구 주부 생활을 해 보고서 느낀 점.


나는 아마도 누가 억만금을 벌어 준대도


지대한 사랑이 없으면 


절대로 절대로 2인 가구 이상의 전업 주부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자발적으로는 못할 거라는 것. 


(귀댁에 일을 제대로 하시는 전업주부가 계신다면, 그분의 지대한 사랑을 받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퇴직한다고 했을 때 다들 '어디 가냐고' 물으시길래, 농담 삼아 답했다.


“다른 직장으로 갈아탈 생각에 그만두는 건 아닙니다. 사실 제 꿈이 백수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신선이 되는 겁니다. 이따금씩 무도사 배추도사 머털도사 따라 나와 인간 세상 구경하는...


그러자 어느 분이 그러셨다.


“능력 좋은 남편 만나야겠네.”  - -;;헐... 그게 무슨 백숩니까. 껄껄...



남편이 가사 도우미에 보모까지 고용하면서 일말의 생색도 안 낼 만큼의 능력자라면 몰라도, 주부가 백수는 아니잖소?


주부의 노동력이 과소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논다’는 표현도 거슬릴 때가 있다. 실제로 놀기만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럼 가사 도우미는 놀러 오는 거게요?




연구 데이터를 분석할 때, 전업주부는 따로 ‘주부’라는 직업 카테고리 설정이 없을 경우, 종종 ‘무직’으로 분류되고는 한다. 하다못해 ‘시간제’도 아니고 ‘무직’. (연구자 중에 전업주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르바이트보다 전업주부가 훠얼씬 힘든데. 가정에 따라서는 정규직보다 힘든데. 오로지 ‘경제 활동’ 즉, 실제로 그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금전적 소득의 여부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헛허...그런 경우에도 '학생' 카테고리는 존재하기도 한다. 불공평하다. 사회적 인식의 오류 같다. 애초에 '돈'이라는 건 노동력의 가치를 환산한 것 아닌가. ...주부란 건 그야말로 사랑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priceless니까.



주부들이 괜한 자격지심에 소소한 용돈을 쓰는 것조차 눈치 본다는 얘길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제가 번 돈이 아니라고 흥청망청 쓴다는 얘긴 골치가 아프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작품에서 주는 힌트처럼, 외벌이 부부라면 주부에게 배우자가 그에 합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건 어떨지. 옛날엔 부부간 통장을 합한다는 개념이 당연시되었으니 무리였겠지만, 요즘은 따로 관리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의 필요를 머리로든 마음으로든 느낀 적이 없으므로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설령 나는 거지인데 상대는 억만금을 버는 사람이더라도 내 통장과 합치고 싶진 않다.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각자가 필요한 만큼만 충분히 있다면, 상대의 재산이 얼만지 물어볼 생각도, 내 재산 상황이 어떤지 말해줄 생각도 없다. 정말이지 그런 건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인 경우를 질릴 정도로 많이 듣고 봤다. 시댁이나 처갓댁의 갑질, 자격지심, 불여우짓이라는 것들도 결국 재산의 우열에서 꼬이는 게 대부분이고, 금전으로 인한 가정 불화 또한 대개 ‘(부부간이든 부모 자식 간이든 형제간이든)네 것이나 내 것이나 우리 것(실은 내 거)’라는 감각에서 비롯되고는 한다. 빚도 각자의 몫인 게 좋다. 냉정한 것 같은가. 사랑으로 갚아 주다가 갈등이 생기고 관계가 삐끗해서 결국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동재산이라는 개념에도 선택권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 그래서 다들 조건 맞춰서 결혼하는 거구나. 아하핳핳하. 근데 사랑이 조건 맞춰서 되는 거였나. 아, 그래서 사랑과 결혼은 별개라고도 하는 건가. 아핳핳하




실직한 남편이 주부로 전향하고 아내가 취직을 했는데, 의외의 적성을 찾아서 고수입자가 되어 가정을 일으켜 세웠다는 스토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은 또 의외로 요리에 세탁에 청소까지, 그렇게 잘할 수가 없더란다. 하지만 줄곧 기가 죽어지냈다고. (그런 한편 뒤로는 바람피우고 자식까지 낳아서 그 자식이 장례식장에 나타났더라는,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였다.)


housewife-主婦-든 househusband-主夫-든, 모든 주부가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가사 노동은 사실 프로 정신이 없는 한, 사랑이 없으면 저-ㄹ대로 제대로 할 수 없는 거니까.(그러니까 정당한 보수를 제공하자. 연구 데이터 분석 시에도 최소한 '시간제' 이상의 인정은 받을 수 있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장자의 빈 배 이야기에 관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