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는 웨이트 트레이닝 인가?
필라테스 강사를 하는 사람도 필라테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고객에게 오리지널 필라테스를 줄 수 없어서 혹은 몰라서 자극적인 방법을 찾는다. 대표적으로 근육 운동을 필라테스에 도입하는 방법이다. 엉덩이, 다리, 복부 근육을 타는 느낌이 나도록 운동을 진행한다. 그래야만 고객이 운동을 했다는 만족감을 당장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는 그렇게 한 부위에 자극을 받는 운동인가?'
그렇지 않다. 오리지널 필라테스는 한 부위에 자극은 받는 운동이 아니다. 창시자 조셉 필라테스가 40년을 넘게 연구해서 만들어냈기 때문에, 동작과 동작의 연결의 이유를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분명 부분적으로 자극받는 운동은 좋은 운동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오리지널 필라테스라고 할 수 없다.
필라테스는 필라테스로서 존재한다. 다른 것을 결합시키거나, 필라테스의 부족함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다. 농구를 잘 하기 위해 축구를 연습하지 않듯이, 필라테스를 잘 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필라테스를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 역시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해봐야 하는 것이지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의 모든 관심과 집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많은 지도가 필요한 누군가가 들어와 우리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을 때이거나 혹은 그 없이 모든 루틴을 해냈을 때일 것이다.
결국은 혼자서 루틴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알아챘다. 어려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루틴 자체가 당신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사자, 존하워드 스틸 / 존은 조셉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조셉에게 직접 운동을 지도 받은 인물이다.>
문제는 많은 강사들이 오리지널 필라테스를 모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조셉이 만든 원리를 부정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과거의 거친 운동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의자에 앉아서 창시자가 만든 한 동작을 파악하고 해석하려 한다. 수많은 동작들은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들은 마치 모든 동작들을 이해하거나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비추고 있다. 그렇기에 반복하지도 않고 동작을 설명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프랑스 파리를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책이나 영상으로 프랑스 대혁명 시대 사람들의 설명을 보고 프랑스는 위험하기 때문에 가지 않아야 하거나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만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흥미롭게도 창시자가 만든 운동으로 직업을 삼은 사람들이 창시자의 운동법을 부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겼다. 조셉이 만든 '컨트롤로지 시스템'은 깊고도 깊다. 가만히 앉아서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움직임은 텍스트 형태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과학적 방법론을 접근시켜서 이해하려 하지만, 표면적으로 알 수 있어도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 올바르게 움직여야 알 수 있는 것을 텍스트에 갇힌 움직임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리지널 필라테스는 뒷전, 과학적 방법론이 그 자리를 차지하다.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말한다.
"도대체 어디서 정신은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구하는가? 내 대답은 한마디다, 바로 경험이라는 것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데이비드 흄>
현대 과학은 우주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지만,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빅뱅 시대 이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갇혀있는 시각을 발생시키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비판할 수 있다. 나치의 우생학처럼 과학적으로 설명할 때는 모든 것이 보편적이고 타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생학은 엄청난 폭력을 야기했고, 과학적 방법론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뒤바꾸게 된다.
지금의 필라테스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인해 움직임을 제한시키고 창시자가 만들어 낸 올바른 방향은 사라지고 있다. 경험하지 못한 혹은 마구잡이로 변형된 필라테스(필라테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를 배운 강사들은 그것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면 할수록 필라테스의 인식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더욱더 견고하게 되어버렸다.
'여성적인 운동'
'체형교정 운동'
'코어 운동'
물론 이러한 방법은 고객의 고통스러웠던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조셉이 만들어 낸 운동법을 따르지는 않는다. 분명 한계는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강사들이 스스로 시퀀스라는 운동법을 만들어내거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많은 강사의 필라테스라고 할 수 없는 시퀀스 운동법을 따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 선택한 길에 대해서는 집요하지만, 그 목표에 대해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러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프리드리히 니체>
조셉 필라테스 1세대 제자, 제이 그라임 선생님은 조셉 필라테스는 천재라고 말씀하셨다. 필라테스에 관해서는 자신이 보았던 누구보다도 천재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과연 조셉 필라테스 보다 천재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똑똑한 것과 천재는 다르다. 창안된 운동을 이해하고 잘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천재는 아니다. 진정한 천재는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단순한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으면서 한계를 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 그러한 운동법을 창안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천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조셉 필라테스는 천재인 것이다.
50년 이상 필라테스를 가르친 제이 그라임 선생님조차 오리지널 시스템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책으로, 영상으로 조셉의 운동법을 보면서 해석하고 변형하는 행위가 옳은 것일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남성은 왜 필라테스를 무시하는가?
안타깝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남성이 필라테스 하는 여성을 운동에 대해 무시하는 이유가 있다.(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눈으로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하는 변형된 필라테스(필라테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움직임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은 있지만, 몸의 결과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많은 여자 강사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힙업, 등 운동을 병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14년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10년 넘게 트레이너로서 활동했었다. 지금은 조셉 필라테스의 오리지널 필라테스를 경험하고, 클래식 필라테스 강사로 전향 한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가 만들어낸 운동법을 제대로 따르기만 해도 엄청난 결과물이 몸에 자리 잡는다. 그것이 눈에 띄게 부피가 큰 근육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제대로 오랫동안 수련한다면 클래식 필라테스만의 근육을 얻어 낼 수 있다. 당연하게도 클래식 필라테스 동작에는 큰 근육을 사용하는 동작이 많기 때문이다.(큰 동작을 할 수 있으려면 신체 시스템이 단단해야 한다)
오랫동안 오리지널을 경험한 사람의 움직임은 실로 경이롭다. 오리지널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경험한 사람은 알 수 있다. 그들의 움직임이 얼마의 시간을 들였는지. 그러므로 클래식 필라테스는 눈에 띄게 근육을 과시하려는 운동이 아니다. 수련을 통해서 정신과 육체를 조화롭게 만드는 운동이다.
네가 선을 행했고, 다른 사람이 너의 그 선행으로 유익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왜 너는 어리석은 자들처럼 사람들이 너의 선행을 인정해 주거나 어떤 보답을 해주는 것 같은 다른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본질에서 멀어지고, 혹은 본질 자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필라테스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라테스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메소드를 가지고 있다. 날씬한 여성이 레깅스를 입고 하는 운동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만 단순하다.
조셉이 만든 운동법을 따르기만 해도 효과는 엄청나다. 오리지널 시스템을 제대로 느낀다면, 사실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그가 만들어 낸 동작은 리포머에서만 70가지 이상이고, 매트 38가지 그리고 캐딜락, 운다 체어, 하이체어, 소도구들의 동작들을 다 합하면 실로 많은 동작들이 있다. 각양각색의 바디에 맞게 적절하게 적용하는 사유조차 시간이 매우 걸리며, 그것은 자신의 바디로 익히고 증명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책을 통해서 조셉의 운동 방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가만히 앉아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며 경험해야 한다. 움직이고 나서 휴식을 취할 때 충분한 사유를 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이러한 운동법을 증명한 사람들을 찾아가 배우고 있다. 아내는 뉴욕과 LA를 방문했으며, 매주 서울을 다니며 김지혜 디렉터님의 오리지널 시스템을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다. 김지혜 디렉터님의 시스템을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셉 필라테스의 방식을 제대로 도입한 사람은 유일하게 김지혜 디렉터님이라고 자부한다. 감히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조셉의 방식을 고집하려면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돈으로 모든 가치를 측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정한 가치를 추구한다. 자신이 포기한 것에 대한 희생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정한 예술가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앞으로의 오리지널 필라테스의 인식이 변화되길, 원래의 인식으로 되돌아오길 감히 바라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