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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Jan 14. 2023

필라테스 강사는 아이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생텍 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 도입부는 화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어른들은 대답했다.

“아니, 모자가 왜 무서워?”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라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뱀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에겐 항상 설명을 해줘야만 한다.

어른들은 나에게 속이 보이는 보아뱀이나 안 보이는 보아뱀의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나 역사, 산수, 문법에 재미를 붙여 보라고 충고했다. 

<어린 왕자, 생텍 쥐페리>



어린 아이들의 생각과 시선이 과연 어린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어른들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제된 인간으로 변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제된 인간은 노동자로서의 가치는 높지만 정제되었기에 정제되지 않은 시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른이 될수록 점점 쾌락적인 것에 에너지를 쏟는 시간이 많아진다.


자극적인 음식

쾌락적인 감각

일시적인 웃음


반대로 정제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어떨까?

어린아이 입장으로 쾌락을 찾을 수 있지만 그들의 시각은 어른들의 시각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사소한 부분이라도 아이들은 웃음이 넘치고 행복을 느낀다.




아내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아기 때부터 보았던 지인의 아들을 만났는데 아이는 부끄러워했지만 저녁이 되었을 때 같이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퀴즈, 초성 게임 그리고 밤에는 부르마블 게임을 같이 했다. 꽤 긴 시간 서로 게임을 즐기고 그만할 때가 되었다. 같이 게임을 정리하는데 십 만원짜리 가짜 돈을 작은 비닐에 넣는데 생각보다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애를 먹긴 했지만 요령껏 비닐에 돈을 넣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잘 들어가지 않는 돈을 넣고 있었다.


다른 지인들이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먹고 있어서 급한 마음에 아이가 들고 있던 가짜 돈을 내가 손에 쥐고 비닐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어른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조금씩 돈을 집어 놓고 있는 아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열 장을 손에 쥐고 시도하더니 다시 내려놓고, 다섯 장을 손에 쥐고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 내려놓고 한 장을 손에 쥐고 시도했더니 비닐에 가짜 돈이 쑥 하고 들어갔다. 그런 반복을 꽤 오랫동안 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도움이라는 것은 오로지 어른들의 급한 생각이구나.'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실패하거나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정제된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작은 성공을 빼앗으려 한 것은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인내, 자기주도, 독립


나이와 상관없이 필요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직업으로 삼고있는 필라테스 강사가 가져야 할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인간의 움직임은 매우 다양하다. 운동 능력, 성별, 나이에 따라서 모두의 움직임은 다르다. 거기에는 다름만 존재하고,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필라테스 강사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 고객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설사 그들의 움직임의 미숙함을 보이더라도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기주도적인 움직임을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창시자 조셉 필라테스는 리포머에서 고객이 움직이고 있을 때 그들의 움직임이 조금 미숙하더라도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적절하게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때, 정제된 어른들이 개입하지 않듯이 필라테스 강사는 고객들의 움직임을 독립적으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그것이 제일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정제된 인간으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일한 교육을 받고, 정답이 존재하는 객관식 문제를 풀어가며 살아왔다.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의 움직임을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에 맞추려 한다.


나도 언제나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씩 고객의 움직임을 개입하려 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곤한다. 생텍 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아이들의 순수한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 마법 같은 시선을 어른까지 이어갈 수 있다면 삶은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시선은 다양성을 발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라테스 강사는 시선의 다양성을 가져야한다. 다양한 인간의 움직임을 느끼려면 다양성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더이상 정제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살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움직임에 자유를 주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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