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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Jul 24. 2023

필라테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다

철학과 필라테스 Part 2


인간은 단지 실존하고 그 후에야 본질적인 자아가 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란 우선 존재하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세계 내에 출현하며 그 뒤에야 자신을 정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초에는 단지 한 개인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난 뒤 스스로 만든 우리가 존재할 뿐이다.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18장 현상학과 실존주의, 새뮤얼 이녹 스텀프





실존: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


본질: 실존에 상대되는 말로, 어떤 존재에 관해 '그 무엇'이라고 정의 될 수 있는 성질


의식: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모든 정신 작용


주체: 실재하는 객관에 대립하는, 의식하는 주관


출처: 네이버 사전




실존주의 대표적인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말한다.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에게 본질은 없고 의식만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본질을 자유롭게 만들어나는 주체이며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실존'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여기 오리지널 필라테스 기구 리포머가 있다'


리포머의 본질은 조셉이 창안한 컨트롤로지 동작을 할 수 있는 도구로서 존재한다. 의식을 가진 인간 즉, 조셉 필라테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리포머에 부여된 본질은 사물로서의 '운동 도구'이다. 리포머는 본질이 고정되어 있고 스스로 바꿀 수 없다. 의식없는 사물은 그 본질을 벗어날 수 없기에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인간은 자기 의식으로 본질을 자유롭게 만드는 존재이다.


'여기 한 인간이 있다‘


그는 본래 의식적 존재이고 본질이 정해진 사물로서 존재하지 않기에, 언제든 자신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여기 필라테스 강사가 있다’


그런데 '필라테스 강사'라는 본질로 규정되게 되면 인간은 하나의 사물로 규정되게 된다. 타자(고객)의 시선에서 필라테스 강사는 '운동하는 사람, 운동 시켜주는 사람'으로 규정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타자에 의해서 언제든 자유를 박탈 당할 수 있는 위험에 도사리고 있다.


자유롭다는 의미는 불안함을 동반한다. 무엇으로든 규정되어 있지 않기에 사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가끔 불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물이 되기를 원한다. '필라테스 강사'로서의 본질로 규정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역할만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착각할 때, 인간은 미완의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게 된다. 필라테스 강사로서 역할에 심취하면 언제든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로움이 박탈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존하는 인간 =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 인간


사르트르에 의하면 실존하는 인간은 우연히 존재한다. 확고한 존재의 이유를 가지지 못했으므로 불안에 휩싸인 존재로 남게 된다. 주체로서 자유로움과 불안함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필라테스 강사의 본질을 가진 사람은 필라테스를 잘 하지 못할 때, 불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상하다. 필라테스 강사의 본질을 가진 사람은 타자의 시선에서 하나의 사물이 되었기에 자유롭지는 않지만 불안함을 느끼지는 않아야 하는데, 왜 불안함을 느낄까?


그것은 자신이 '필라테스 강사'로서의 본질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아이폰이 있다‘


누군가 전원 버튼 누르고 조작하는데 화면이 깨져있다. 이때 아이폰은 휴대폰으로서의 본질을 상실한다. 그렇기에 폐기되어야 한다.


필라테스 강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필라테스를 잘 아는 사람이다.

필라테스가 무엇인가? 조셉이 창안한 컨트롤로지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필라테스 강사의 본질은 컨트롤로지를 몸으로서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필라테스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강사는 자신의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에 혹은 애초에 사물로서의 본질이 없었기에 불안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가 없다. 사르트르에 말대로 인간은 본질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체로서 자유롭게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라테스로서의 본질을 가지지 못한 강사는, 언제든 컨트롤로지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열려있다. 주체적인 객체로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다.


그런데 컨트롤로지 시스템을 명확하게 느끼는 인간은 ‘필라테스 강사'라는 본질로서 존재하며, 타인에 의해서 자유가 박탈되는 '필라테스 강사'로서의 사물으로, 불안하지는 않지만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기에 조셉 필라테스의 제자 제이 그라임 선생님은 말했다.


"필라테스 강사가 필라테스만 해서는 안 된다. 미술을 보러 가기도 하고, 등산을 하기도 해야 한다. 필라테스 강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시야의 확장을 얻어야 한다."


가끔은 필라테스 강사라는 본질로서 존재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여하는 인간으로서의 필라테스 강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필라테스 강사로서 본질을 가지게 되더라도 타인에 의해 자유를 박탈 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할의 본질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어도 역할의 본질에 하나의 사물처럼 빠져있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런 인간에게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의 본질은 인간의 자유속에서 허공에 매달려 있다." 



<참고문헌>


구토, 장 폴 사르트르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새뮤얼 이녹 스텀프

철학의 역사, 나이절 워버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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