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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Jun 10. 2024

니체가 말한다, '조셉 필라테스는 죽었다'


고통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고통은 우리를 훈육한다.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가 높이 올라설 수 있는 이유는 전부 고통 덕분이다. 고난 속에 있는 영혼의 긴장이, 인내하고 감내하고 이용하고 극복함으로써 불행을 짊어지고자 하는 용기가 영혼을 더욱 강인하게 만든다.

우리가 최소한 엄청난 고통을 겪을 가능성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최고의 기쁨 역시 결코 맛볼 수 없다.

왜 살아야 하는가 6장 프리드리히 니체, 미하엘 하우스켈러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저서 '즐거운 학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은 죽었다."


니체는 중세 시대 천 년 동안 유지되었던 기독교 철학을 부정했다. 종교에서 과학으로 넘어왔던 근대 철학자들의 이성 중심 철학조차 부정한다. 니체는 인간은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는 중세 기독교적 사상에서 신을 부르짖게 만드는 자들을 비판하고 나약한 자들을 우려했다. 가난한 사람, 나약한 사람들은, 부자와 강인한 사람들을 '좋고, 싫음'이 아닌, '선과 악'의 대립으로 규정지었다. 이것은 중세 기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뿌리내린 생각으로 니체가 말하는 '원한의 도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를 찾는가?  


니체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낙타·사자·어린아이 비유를 들어서 말한다.


낙타는 사회에서 원하는 규율, 정해져 있는 생각, 전통 등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일관된 수동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생각보다는 타인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다. 그들에게 거대한 용이 나타나 말한다.

(니체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한다)


"해야 한다", "너는 해야 한다"


비유적 상징인 거대한 용은 낙타에게 끊임없이 '해야 한다'라는 사자후를 내뱉는다. 여기서 낙타는 선택해야 한다.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인 삶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막에는 무거운 짐이 필요하지 않다. 전통과 규율 그리고 '해야 한다'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기존의 관습을 파괴한 낙타는 자유를 쟁취하는 사자로 변모하게 된다. 거대한 용의 '해야 한다'라는 사자에게 통하지 않는다. 사자는 강인하고 능동적이다.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는 존재이다.


니체가 비판한 중세 기독교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은 현세에서는 불행하지만, 천국에서는 행복한 삶을 산다는 달콤한 말을 전파한다. 낙타처럼 그들의 생각대로 삶을 살아가면 현세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수동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성장에는 언제나 비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자는 중세 기독교 사상에서 벗어난 존재이다.


그런데 사자는 자유롭지만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창조는 자유로운 것 말고도 다른 것이 필요하다. 니체가 말하는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는 '어린아이'이다.


기존의 규범을 파괴한 사자는 강인하고 자유롭지만, 유연하지 않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존재는 유연한 태도, 긍정적인 태도만이 창조력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고, 망각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를 놀이로서 다가간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는 궁극적인 존재이다. 




니체의 비유 '낙타·사자·어린아이'는 필라테스 강사에게도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태어남도 처음이고 삶을 살아가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 필라테스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것이다.


처음 리포머를 할 때,

처음 매트를 할 때,

우리에게는 낙타가 짊어진 무거운 짐이 있다.   


    운동을 필요로 하는 사회  

    건강을 위해  

    유행에 맞춰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  


이런 여러 가지 짐들이 필라테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얹어져 있다. 그들에게 타인이 혹은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 있다.


"해야 한다", "너는 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 사상으로 인간의 수동적인 태도가 있었다면, 지금 시대는 사회, 규율, 전통,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처음 필라테스를 시작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낙타인 것이다. 그들에게 조셉이 창안한 컨트롤로지의 반복된 동작은 어쩌면 새로운 짐이 될 수 있다. 그것조차 전통으로 내려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셉 필라테스가 창안한 컨트롤로지에는 '능동과 자유'가 있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는 낙타는 수동적이고 자유롭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니체는 말한다.


"모든 짐을 스스로 파괴해야만 한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나면, 어려움을 겪었던 자신을 파괴하고 조셉 필라테스가 말한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그리고 니체가 말한 기존의 것을 파괴한 사자로 변모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삶에는 조셉의 컨트롤로지가 자리 잡을 것이며, 나아가 자신의 모든 곳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능동과 자유는 선택적이지 않다.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능동적이고 자유로움만이 필라테스 강사에게 필요한 것일까?


조셉 필라테스가 창안한 컨트롤로지를 누군가에게 기계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필라테스 강사는 니체가 말하는 마지막 단계, '어린아이'로 변모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긍정과 유연함은 필라테스 강사에게 중요한 가치이다.

  

    조셉 필라테스가 오랫동안 연구에서 만든 컨트롤로지를 많은 대상들에게 옳은 방식으로 전달하려면  

    조셉 필라테스가 오랫동안 연구에서 만든 컨트롤로지를 많은 고객들에게 효율적이고 정확에 가까운 방향을 안내하려면   


기존의 관습을 파괴하고 능동과 자유만을 부르짖는 사자의 경직된 태도는 오히려 반감만 가지게 될 뿐이다. 놀이로서 접근하는 즐거움, 시야의 확장이 필라테스 강사에게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필라테스 강사는 어린아이이다. 그들에게는 나약함, 강인함보다 그것을 겪고 난 뒤, 유연함만이 남게 될 것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니체 편의 저자 이진우는 말한다.


"사회에 대한 반감과 불만족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정작 사회의 규범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을 폭로하고, 세속적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그 가치를 강렬하게 열망하는 냉소주의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능력은 없으면서도 모든 가치를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퇴폐주의를 깨부술 다이너마이트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프리드리히 니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니체', 이진우

철학의 역사, 나이절 워버턴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새무얼 이녹 스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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