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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Oct 19. 2019

그것은 악플이 아니다

설리를 되짚으며 4년 만에 풀어놓는 이야기

한 여성 아이돌의 죽음에 며칠째 우울함이 가라앉지 않는다. 목울대 부근이 꽉 막히는 지점들이 있는데 그걸 표현할 언어가 없어 갑갑함만 쌓였다. 오늘 절에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오려고 했다. 반나절 만에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이건 내가 마음을 비워내야 없어지는 종류의 갑갑함이 아니다. 말하고 쓰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못 견딜 만한 일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오랜만에 겪는 감정이다.    

 

그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CNN 기사를 통해서였다. 많은 우리나라 언론에서 ‘악플로 인한 고통’을 말할 때 CNN 기사는 리드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는 올해 한국이 낙태죄를 폐지했을 때, 공개적으로 인공 임신 중절에 찬성하는 몇 안 되는 유명 인사 중 하나였으며,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드러냈고,  여성이 스스로 브래지어가 불편하다고 느끼면 입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She was one of only a few celebrities to be publicly pro-choice when South Korea legalized abortion this year, was open about her own mental health struggles and insisted women shouldn't have to wear bras if they found them uncomfortable.)”    


그의 궤적을 되짚으며 한때 그가 ‘낙태’ 루머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낙태설이 돌았던 여성 아이돌이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기란 얼마나 탁월한 행동인가.    


정작 한국 사회는, 그리고 언론은 그의 삶을 “악플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연예인” 정도로 축소한다. 나는 ‘악플’이 이 맥락에서는 게으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자기는 악플러가 아니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일들에 책임이 없다는 방관자적 태도, 때로는 악플러를 준엄하게 꾸짖는 태도가 불편하다.     


벌써 내 주변의 몇몇은 “걔는 자기가 악플을 불렀다” “걔는 노래보다 노브라로 유명하잖아” 따위의 말을 했다. 이런 말들은 여성 아이돌, 혹은 여성 일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어떤지를 너무 자연스레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그가 겪은 일들이 남일 같지 않고 자꾸만 감정이 이입된다.    


나는 몇 년 전 ‘댓글 테러’에 시달렸다. 심지어 내가 쓰지도 않은 기사인데 한 유명인의 공격 대상이 됐다. 그는 영리하게도 젊은 여자 기자인 나를 공격하려면 사진을 올려 조리돌림하는 것이 가장 잘 먹힘을 알았다. 외모 평가는 아주 귀여운 수준이었고 “내일은 집 주소 공개할 테니 찾아가세요”, “좆도 못 빨게 생겼네”, “이 년 총살 시켜서 종로 사거리에 효시해야지” 등의 댓글이 달렸다. 거의 모든 내용이 성적 모욕과 관련돼 있었다.    


손을 발발 떠는 나에게 일부 남자 동료들은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기자가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성기 작을 거 같다는 댓글도 달렸었어(웃음)”, “넌 뭐가 그렇게 나약하냐. 강해져야지”. 어떤 일을 저질러도 이 정도 수위의 공격을 당하지 않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부당하게 비난 받는 억울함, 감내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는 동료에 대한 배신감, 내 신상이 다 까발려지고 정말로 누군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 이런 감정들을 일기에 적어내려 갔지만 끝까지 언어화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나를 꽤 오랜 기간 집요하게 힘들게 했다.    


지금은 안다. 내가 여기자라서 더 부당하게 비난받았음을. 나도, 내 주변도 그 구조적 폭력을 읽어내지 못하는 데 대한 무력감과 절망감이 나를 집어삼켰음을, 나를 공격한 것이 그냥 '악플'은 아니었음을 지금은 너무 확실하게 안다.  


이 일을 글로 풀어내는 데 4년이 걸렸다. 어쩌면 어느 지점에서 나와 같은 절망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죽음을 보며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나는 지금도 당시 댓글을 채증한 파일을 열어보기는커녕 그때 쓴 일기조차 읽지 못한다.     


그 일 이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생각했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같은 행동을 해도 더 크게 비난받을 수 있음을 깨달은 경험은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리기 충분했다.     


나는 가끔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설리의 행동이 참 통쾌했다. 사과할 필요가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여성 아이돌이 고개를 조아렸던가. 설리에 대한 대중의 아니꼬운 시선은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 자기표현이 강한 여성, 좀체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성에게 보내는 사회의 압박과 맞닿아 있다. 굳이 유명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에서 여성은 수많은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의 삶을 단속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요 며칠간 실은 나는 우울한 게 아니었다. 매우 화가 났던 것이다. 거칠더라도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발언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나 자체로 살려는 여성이, 자기를 드러내려는 여성이 불편한 사람들이 더 불편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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