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영 Mar 22. 2020

코로나 시국의 사랑법

오랜만에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주선자는 ‘가볍게’ 만나보라고 했다. 요즘 약속만 잡히면 주인 반기는 개마냥 꼬리 흔드는 나는 ‘오케이 콜’. 마스크를 낀 채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에 서 있었다. 평소보단 사람이 적었으나 여전히 붐비는 그 곳.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을 식별하느라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피차 구차해보여 남자에게 재빠르게 전화를 걸고 손을 흔들어 접선에 성공했다. 그는 빨리 얼굴을 ‘까고’ 싶어하는 듯했지만 마스크는 식당 가서 벗기로 했다.  


나는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팔렸다. 외식 없이 며칠간 집밥만 먹은 터라, 타코를 연신 입에 욱여넣었다.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이국의 맛이던가. 흥이 한껏 오른 나는 2차를 외쳤다. 계획에 없던 이자카야에 들어가 하이볼을 시켰다. 그는 맛보겠다며 내 잔에 입을 대었다. 불쑥 경계심이 올라왔다. 이미 섞인 침, 에라 모르겠다, 나도 그의 잔을 뺏어 들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거슬리는 면이 딱히 없었고, 나는 그런 사람을 오랜만에 보았다.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나는 그 다음 주에 바로 휴가를 떠났다. 일주일 시간이 떴고 그와 몇 번 카톡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 다음주에는 그가 나에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물어왔다. 한창 종교단체의 배양접시를 타고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 나는 다음 만남은 미루자고 했다. 나름 거절로 보이지 않기 위해 표현에 신경썼다.


나는 한 번쯤 더 만나볼 심산이었다. 모든 게 무난한(듯한) 사람이 얼마나 희귀한지 잘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30대 남녀의 문제는 에너지가 낮고 그에 반비례해 여유는 넉넉하다는 점이었다. 굳이 자존심 굽혀가며 연락할 정도로 스파크가 튀지는 않았다. 그 다음 일주일을 이따금 생각하다가 마음을 접어버렸다. 조금은 아쉬운 맘을 가지고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문득 코로나로 타이밍을 놓친 연애들, 사랑할 기회를 놓아버린 청춘들이 얼마나 될지 가늠해보았다.


결혼한 친구는 한동안 남편과 각방을 쓰기로 했단다. 또 다른 친구는 헬스장에 꼬박꼬박 나가는 남자친구를 못 미더워했다. 친구는 애인 없이 살 수 없었고, 친구의 애인은 근육 없이 살 수 없었다. 아, 서글픈 면역 공동체여! 솔로라서 안전한 이 기분, 지금 아니면 언제 누리랴. 키스 하면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정설처럼 통용되는 평시 상황에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우리는 모두 점막을 통해서 사랑을 나눈다고 했던가. 점막을 이용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연인들 얼마나 되려나. 타인에게 점막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이 시국에 그들은 어떻게 사랑하는 걸까. 정념을 억누르는 연인들을 쓸데없이 걱정해본다.


어젯밤 나는 체온이 그리워서 약간 서러웠다. 나는 가끔 엄마가 보고싶을 때 여동생을 끌어안곤 하는데 요즘은 꾹 참는다. 애꿎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엄마를 보러 갈까 싶다가도 한 달 정도는 더 참아보기로 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둬야 하는 슬픔을 모두가 조금씩 견디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2019년 나를 살린 말(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