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 발레를 만나다.
로데오 거리, 달빛 거리 등 지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이름을 가졌다. 우리 동네 ‘하나로 거리’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옷 가게, 인생네컷 포토 스튜디오, 식당과 술집이 즐비하다. 저녁이면 귀가하는 사람, 친구를 만나러 온 사람이 뒤섞여 웃음과 취기 어린 고함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생을 채우는 소리가 어느 때는 반갑다가도 어느 때는 시끄러워 마음이 소란스러워진다. 이럴 때면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사람 물결을 타고 번화가 중심부로 들어가면 드디어 목적지가 나온다.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오랜 시간 누적된 담배 찐 내가 진동한다. 실내 금연이 정해진 게 언젠데. 이 냄새는 그동안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역사를 가진 것인지, 금연 정책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누군가의 한숨인지 새삼 얄밉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데 설렘을 막아서는 이 정도는 잠시 참자고 생각하며 호흡을 멈춘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탑승. 5층을 누르고 참았던 숨을 몰아 뱉는다. 시끄러웠던 소리가 멀어져 가고, 퀴퀴한 담배 찐 내도 사라진다. 3층 즈음 도착하면 주위가 고요하고 길에서 얻은 소란스러운 마음도 조용해진다. 대신 심장박동만 조금 빨라졌다. 5층 도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아무런 냄새가 없어서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코에 훅 들어온다. 차분한 연주음악이 귀를 감싼다. 입구 안쪽 공간에서는 6명의 무용수가 몸에 딱 붙는 옷과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발끝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드디어 도착이다. 발레 학원에.
앞 타임 수업이 끝나기 전 서둘러 학생 모드로 돌입한다. 타이즈를 신고 수영복처럼 생긴 레오타드를 입는다. 하얀색에 하늘색 물감 한 방울이 톡 떨어진 듯한 옅은 푸른색의 레오타드. 거기에 연한 요구르트 색의 속이 비치는 얇은 발레 스커트를 두른다. 마지막으로 천 슈즈 신는다. 옷만 입었을 뿐인데 무대 중앙에 선 발레리나가 된 듯한 기분이다. 하얀 봉을 잡고 발끝을 세운 채로 몸을 우아하게 뒤로 젖히는 모습.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이미지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발레는 기회가 된다면 꼭 배워보고 싶은 운동이었다. 내가 8살 때, 4살 많은 언니가 현대무용을 배우고 온 날이면 사이드 스플릿, 다른 말로 일자 찢기로 본인 다리가 찢긴 만큼 내 다리도 찢어댔다. 그래야 나중에 춤을 잘 출 수 있다면서. 몸이 무용에 가까워진 만큼 마음은 멀어졌다. 그렇게 인생에 무용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산지 한참 후, 요가학원에서 우연히 들은 발레핏 수업이 생각을 바꿔놓았다. 앙 바(en bas) 앙 아방(en avant) 등 입 속에 머무는 용어의 부드러움과 우아한 팔, 다리 동작에 자꾸만 눈이 갔다. 나이가 조금 든 사진 속 발레리나가 예쁜 토슈즈를 신고 기품 있게 서 있었는 사진이 기폭제가 되었다. 자세가 지니는 품격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어 무용 욕구가 샘솟았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학원이 없어서 잊고 있다가 이사를 하면서 발레학원부터 찾았다. 운명처럼 집에서 10분 거리에 학원이 있었다. 동네 주민이 되었다고 전입 신고하듯, 발레 학원에 왕초보 발레리나로 등록했다.
하지만 꿈꾸던 모습을 위해서는 고난의 연속이란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발레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듣는 왕초보 비기너 수업은 초보도 아니고 왕초보에 비기너까지 붙어 있다. 왕초보 레벨도 쉽게 허락할 수 없다는 듯한 이런 콧대 높고 도도함에 매일 나의 콧대가 꺾인다.
1번 발. 서서 발을 11자로 모은 뒤 뒤꿈치는 붙이고 양발 앞쪽만 움직인다. 왼발은 왼쪽, 오른발은 오른쪽으로 두 발끝이 각도기가 된 것처럼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린다. 180도가 돼야 하지만 왕초보에도 끼지 못하는 비기너는 90도만 되어도 감지덕지다. 2번, 4번, 5번 발 모양을 연달아 연습한다. 이제 첫 동작을 한 것이고 가만히 서서 발 모양만 바꾸는데도 이마와 겨드랑이와 등에 힘든 흔적이 역력하다.
다음은 쁠리에. 1번 발에서 상체는 일자로 세우고 무릎만 구부려 앉았다가 일어난다. 이때 주의할 점. 발가락 다섯 개가 전부 땅에 붙어야 하고, 발바닥의 아치는 세운다. 발목이 돌아가지 않도록 힘도 줘야 한다. 무릎은 앞이 아니라 양 옆을 향하고 엉덩이가 뒤로 빠지지 않게 힘을 꽉 주며 척추는 곧바로 세운다. 승모가 올라가지 않도록 돌려 내리고, 날개뼈들이 만난다는 생각으로 가슴은 살짝 앞으로 내밀되, 갈비뼈는 모아줘야 한다. 고개는 살짝 들어 거울에 비친 내 정수리를 보고 눈만 살짝 내리깔아 동작을 체크한다. 전체적으로 무릎을 굽히면서 몸은 내려가지만 누가 정수리를 위로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키가 커져야 한다. 동작 하나를 위해 전신을 신경 써야 하는 것도 힘든데 내밀되 모으고, 내려가는데 커지는 느낌이라니. 강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게 한국말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내밀면서 모으는 것’이 무슨 말인지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알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자꾸 마중 나가는 엉덩이는 벽에 대고 내려가고, 어깨 돌리기 스트레칭하며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하나하나 새롭게 감각을 익히는 중이다. 나름 이것도 기특하다고 생각하지만 31개 아이스크림 중 한 개를 맛 본 정도다. 충만하게 먹은 게 아니라 맛보기 스푼으로 찔끔 맛만 봐 입맛을 더 다시게 된다.
발레는 유독 그날 컨디션이나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되던 동작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다. 오로지 내 몸에 의지해 -발레 바는 중심을 잃지 않은 정도로만 활용하고- 유쾌한 박자에 절도 있게 움직여야 한다. 하체와 코어에 힘이 없다면 발끝으로 서서 춤을 추기는커녕 앞이 평평한 토슈즈를 신을 수조차 없기에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하다. 그래서 발레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재미있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할 틈 없이 힘들어 고통이 앞선다. 그간 뻣뻣한 나무 막대기로 살아온 몸에 관절마다 기름칠하는 작업은 고되고 앞으로도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확신이 매 순간 땀방울을 타고 흐른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고통보다 의지가 다시 앞서기를 반복 중이다.
요즘 뭐하냐 묻는 지인들에게 발레 배운다고 대답한다. 돌아온 말은 ‘지금 발레 배워 뭐하게?’. 이 짧은 문장은 질문으로 가장한 채 ‘40대는 발레를 배워서 써먹을 곳이 없다. 콩쿠르에 나갈 것도 아니고 무대에 서 공연을 할 것도 아니지 않냐. 돈 내고 배우는데 보여주는 곳이 없으면 아깝다. 그렇다고 가르칠 수준이 되기도 힘드니,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는 다른 효율적인 것을 –이를테면 자격증을 딴 뒤 강사 활동을 할 수 있는- 배워봐라.’라는 말풍선이 숨어있다.
처음에는 취미가 치기로 여겨지는 것 같아 ‘발레 컨셉 바디 프로필 찍을 거야’라는 말로 응수했다. 지금은 되묻는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전신을 정성 들여 바라본 적이 있는지, 차분하면서 경쾌한 음악에 몸을 움직이며 머리가 맑아진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빠르게 뛰는 심장에 숨이 헉헉대도 마음은 편안함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무엇보다 익숙한 일상에서 잘하고 싶다는 의욕을 느낀 게 언제인지. 발레를 하면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는 말에 친구들이 불어놓은 풍선은 자연스레 바람이 빠진다.
‘비기너’ 발레리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동작에 신경을 쓸수록 발은 투박해지고 다리에 근육이 잡힌다. 토슈즈를 신으려면 발끝 운동을 더 해야 하고 멋지게 포즈를 취하려면 양발은 180도, 다리도 일자 뻗기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나의 발의 각도는 90도, 다리 각도도 50도 정도로 귀여운 수준이다. 나의 발끝에는 아직 3개월밖에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괜찮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발레 학원에 간다. 모든 것이 부족해도 난 이미 비기너 ‘발레리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