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배워 뭐하게?
'3개월만 하면 몸에 익는다'는 둥 '100일의 기적'이라는 둥 다 개소리!!
발레를 배운 지 6개월 차.
일주일에 2번의 발레 수업.
집으로 돌아오면 땀에 젖은 레오타드를 갈아입을 힘조차 없이 침대에 픽픽 쓰러지기를 반복
핸드폰 배터리가 20% 이하로 떨어지면 울리는 알림처럼 입에서 끙 소리가 나와 시작한 걷기 운동
어느새 '나 생활 체육인'이야 라고 말하던 주 4-5일의 호기로운 운동 일정.......
에도 불구하고 대체 몸뚱이가 어떻게 생겨 먹으면 이렇게까지 몸에 변화가 없나 싶었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9월 초 추석.
대학교를 핑계 삼아 집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가장 긴 시간을 본가에 머무른 것.
월요일 아침 ktx를 타고 떠난 서울을 그다음 주 화요일이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빠져나갔다. 근육근육근육
그리고 거의 2주 만에 찾은 발레 학원.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 쌤의 한마디.
"몸이 왜 굳어졌죠?"
그랬다.
내 몸은 철저히 주 2회 발레를 하기 전으로 회기 한 것이다.
이 배신감을 누구에게 던져야 하지?
누군가 나를 배신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탓하며 진정이 되겠지만
이 감정의 주인이 누구체 누구니
3개월만 하면 몸에 익는다며!!!
100일만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6개월을 했는데 2주간 안 한다고 몸이 전보다 더 나빠지면, 누가 운동하겠냐고!!!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혼자 빠져 지냈으면서도
마치 누군가 등 떠밀어 발레라도 배운 것 마냥
자기 계발과 루틴 만들기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에 화를 쏟아냈다.
이런 목적지 없는 질책 속에 슬그머니 비집고 나온 '염치'라는 녀석.
"몸에 알코올을 들이붓고, 누워서 먹기만 하고, 운동도 안 하면서 좋아라 웃던 건 너야"
"응, 그리고 니 몸 원래 그랬어. 잠깐 6개월 달라질 뻔한 거야"
어느 순간 입꾹!
아, 이게 원래 내 몸이었구나.
몸이란 것은 옷처럼 갈아입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잠시 잠깐 방심하면 돌보지 않던 상태로 돌아간다.
6개월 운동했으니 2주 쉬어도 단숨에 지난주로 돌아갈 것이라는 나의 착각!
관성의 법칙의 그 관성은 2주 전이 아니라, 운동을 하지 않던 그 시간으로 쏜살같이 돌아간다.
마치 힘들게 줄을 잡아끌었으나 놓으면 재빨리 돌아가는 고무줄마냥.
내가 생각한 나의 원래 상태는 매주 결석 없이 학원 수업을 나가는 그 순간이었으나,
내 몸이 인지한 나의 원래 상태는 침대에 등 붙이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던 그 순간이었던 것.
최고치를 원래 상태라고 인지해 박탈감이 더욱 커졌다.
쪼랩에서 잠깐 1등 했는데 원래 잘한 줄 알고, 이런 모순덩어리 ㅋㅋㅋ
그래서 오늘도 군말 없이 레오타드와 천 슈즈를 챙긴다.
발레 배워 뭐하게?
- 어깨 뽕 빼고 사람되려고. 거울보면 잠깐 가진 자만심도 사라져, 늘 쪼랩이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