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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찻잔 Oct 31. 2022

실패를 모으는 사람

몸치의 발레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백종원은 갈빗살집, 등심찜, 분식, 통닭 등 여러 요식 브랜드를 실패했다.

마이클 조던은 9,000번 넘게 슛을 넣지 못하고, 300번 이상 경기에서 졌으며 26번이나 결정적인 슛을 실패했다.

에디슨은 전구를 완성하기 전 9,999번이나 실패했고, 축전기 완성 전에는 2만 번이나 실패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의 실패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주말이었던 10월 29일 발레 오네긴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관람했다. 땅에 두 발을 붙이고 해도 상체와 팔의 유연함을 표현하기 어려울 텐데, 발레리노에게 들려 공중에서 아크로바틱 하듯 감정을 표현하는 발레리나와 깃털을 든 듯 무심한 표정으로 발레리나를 하늘로 번쩍 들면서도 눈빛에서는 오만함이 묻어나는 발레리노를 보니 지금 그들에게 감동할 뿐이었다. 저 무대에 서기 위해 두 무용수는 얼마나 많은 실패를 모았을까?


직장인 시절 내게 성공의 순간은 기획안이 통과되었을 때, 내가 만든 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보였을 때, VIP가 참여하는 행사가 시나리오대로 탈없이 끝났을 때, 동료들과 몇 날 며칠 자정까지 야근하며 쓴 제안서가 채택되었을 때였다.


반대로 파워포인트 창만 열어놓고 카드뉴스 한 장도 기획을 못 한 때도 있고, 우리가 다른 업체에 밀려 떨어진 제안서도 많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오늘 망했네, 이번 제안 실패야, 등 부정적인 말로 점철되는 하루였다. 애착 인형을 빼앗긴 아이처럼 슬픔과 분노가 차오르고, 잘못된 사랑의 말로처럼 시기와 질투로 버무려진 순간도 있다. 모든 것은 실패의 순간으로 남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예 선택을 받지 못한 순간도 있고, 중간에 어그러진 프로젝트도 있다. 매 순간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을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실패의 경험은 더욱 많은데 치기 어린 푸념이나 부정적인 단어로 하루를 채우지 않게 되었다. 사는 게 다 그렇다고.. 계획한 대로 되면 그건 잘 짜인 각본이지 삶이겠냐는 말이 나왔다. 당장 통장은 홀쭉하고 배고파졌어도, 실패 통장은 하나 더 채워졌으니 멘탈은 배부르고 뇌 벽은 통통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발레 학원에 가면 매 순간 거울 앞에 선 나를 마주한다. 그 어느 날도 100% 만족스러운 날이 없다. 심지어 지난 수업보다 동작이 더 안 되는 날도 있다. 알았던 걸 까먹은 게 아니라, 뭘 못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뭘 못하는지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반면교사. 매일 스스로 반면교사가 되어 어제의 나처럼 하지 말자, 내일은 오늘의 나처럼 하지 말자면서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실패를 전달한다.


실패는 언제나 한다. 어디에나 있다.

실패를 흘리면 실에 패가 종종종종 걸린 채로 심지어 많이 걸려있는 채로 계속 걸리적거린다.   

실패를 모으면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아 어느 곳에 당도했을 때 한꺼번에 폐기 처분하면 깔끔하다.


어차피 하게 될 실패라면, 그것을 모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22.10.29 오네긴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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