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찻잔 Aug 12. 2024

추상명사의 삶


"더 이상 콘텐츠를 만드는 게 즐겁지 않아. 

난 이제 올드하고, 내가 봐도 내가 만든 게 재미가 없어.

내가 봐도 재미없는데, 남들이 봐도 재미없겠지? 

이렇게 도태되는 걸까?


요즘 한없이 마음이 일렁였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무책임하고 게으른적이 있었나 싶게, 내일의 나에게 일을 맡기는 나날들이다. 


쓰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아서 콘텐츠를 만들 수 없게 된 것인지, 

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니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고민의 쳇바퀴에 갇힌 기분이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만난 전 회사 선배이자,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이계절 에게 한없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보다 몇 년 먼저 이런 경험을 한 그녀의 대답은, 

어쩌면 이런 고민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도 콘텐츠를 만들던 업에서, 이제 행정업으로 바꾼 것도 있다고. 

후배들이, 어린 친구들이 스킬적인 부분에서 앞서가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 그들은 하지 못하고 우리는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특유의 발랄함과 긍정으로 고민의 바퀴를 함께 굴려주었다. 


고민이 생기면 꽃보다 누나를 보곤 한다. 

나보다 먼저 산 네명의 언니들의 인터뷰로 위안을 받곤 한다.


꽃보다 누나가 2013년에 방송을 했으니 11년이 지났다. 

그 사이 

굳어진 이미지를 고민하던 김희애 배우는 윤희에게, 쀼의세계, 데드맨, 퀸메이커, 돌풍 등을 찍었다.  

그냥 사는 것이라고 말하던 윤여정 배우는 오스카상을 받았다.   

작품고민이 역력해 보였던 이미연 배우는 단편영화와 장편 한편에 출연했다.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김자옥 배우는 다음해 생을 마감했다. 


그때는 한없이 나이많은 언니들처럼 보였는데, 

이제 넷째였던 이미연 배우의 그때 나이와 얼추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때는 그리 와닿지 않았던 

인터뷰에 담겼던 후회, 걱정, 불안 등이 이제는 내것처럼 느껴진다. 


성향상 고민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침잠한다. 

이럴 때는 물고기 건져내듯 나를 건져줄 사람이 필요하다. 


때마침 해외여행을 안가도 같이 대화하면 

무국적 어디든 함께 여행하는 것 같은 친구를 만났다.


내 글이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정제된 글보다 날 것의 대화가 더 좋다고 하는 사람. 

고프로 켜 놓고 이야기 하고 싶다는 사람. 

대화만 하면 이미 콘텐츠 열 개 나왔다는 사람. 


그런 말들이 내게는 꽤 힘이 된다. 


술취해 그녀의 프사를 건져주겠다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나를,

카메라에 담아줬는데, 

아, 나 원래 이렇게 웃던 사람이지 싶었다. 


그날 밤 공간도, 음악도, 공기도 너무 좋았던 날

그렇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몇 년 전, 재미있는 일을 하겠다며 프리랜서의 삶을 이어갈 때 누군가 이야기 했다

"넌 아직도 일에서 재미를 찾니?"



내 삶은 절반 이상이 고민으로 차있다.

뭘 하면 재미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진정한 사랑이란 게 뭘까?

내가 가치있게 쓰일수 있는 방법은 뭘까?


답이 늘 바뀌는 이런 고민들이 집 안 가득 공기처럼 채워져 있다. 

그래서 아직도 일에서 재미를 찾는다. 

정확히는 재미없는 일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쪽이랄까. 

편안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맞는 옷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콘텐츠라는 게 그간 나를 많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옷이었는데, 

이제 너무 낡고 헤졌다면 새 옷을 입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전처럼 어디든 철푸덕 잘 앉고, 눕고, 적응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일단 가보고, 

내가 들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챙겨 떠나는 일상을

다시 살아봐야겠다. 


그렇게 다시 재미, 행복, 사랑, 가치를 찾는 하루하루를

드립 커피 내리듯 익숙하지만 정성을 들여 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