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쓰는 인생

긴 번아웃의 터널을 지나며

by 손찻잔

오랜만에 오전에 책상에 앉았는데

뭘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해야 할 건 많은데,

당장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결국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얼마 전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인생이 번아웃 같다는 이야길 했다.

친구는 두 아이를 출산하고, 학교와 어린이집을 보내고,

작년부터 최근까지는 갑자기 암진단을 받은 엄마도 모시고 살았다.

근 10년간 자기보다 가족을 우선하는 삶에 조금은 지친 모습이었다.


그럼 나는?

프리랜서이자 결혼으로 엮인 가족도 없는 나는

늘 자유롭게 산다고 말했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돈이 필요할 땐 많이 일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자 지금의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며

때론 가족을 우선하며

피곤을 살아내는 친구들 앞에서 약간 우쭐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론은 장기간의 번아웃.

40대 중반에 들어선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조금 긴 번아웃이란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인생 자체가 번아웃처럼 느껴질 때는 무엇을 해야 해결이 될까?


눈앞에 보이는 연습장을 꺼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하이얀 페이지를 편다.


연습장 옆에 있던 필통도 열어 만년필을 꺼낸다.

그렇게 연습장에 긁적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또 이렇게 무언가를 적는 것

결국 쓰는 인생이다.


연습장에 생각을 풀어내었더니,

다시금 힘이 좀 생긴다.

그래서 연습장을 덮고 브런치를 연다.

마지막장을 다 채우면 버려질 연습장에만 남겨두기 아까우니까.

삶의 의지, 열정, 파워, 에너지,, 이런 류의 단어에 아웃(out)과 인(in)은 반복될 테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쓰면 된다.


자기 인생의 많은 물음은 이미 자기 안에 있다.

그걸 어떻게 꺼내는지 모를 뿐

나의 열쇠는 글이다.

오늘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마음을 먹었을 때 옆에 노트와 만년필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내 이야기를 남겨놓을 공간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해지는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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