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사랑하는 도시, 비엔나
커피를 사랑하는 도시, 비엔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카페이다. 비엔나의 카페는 300년 전통을 자랑한다. 비엔나에서는 과거에 지식인들, 예술가들이 카페에 모여 토론을 했다고 한다. 카페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작은 동네 카페를 부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는 비엔나에서의 카페가 정말 기대된다. 거리 곳곳에 카페가 많고 커피를 즐기는 시민들이 굉장히 많다. 어딜 가나 카페가 있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빈 시내에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가 유난히 많다. 이미 17세기 말에 유럽에서 베네치아, 런던, 파리 등에 카페가 생겨났고, 빈에서도 1685년 최초로 카페가 문을 열었다. 1683년 빈을 침공한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버리고 간 물품들 중에 커피 원두 자루들을 발견했을 때, 빈 사람들은 거기 담긴 푸른 곡식들이 낙타 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콜쉬츠키(G.F. Kolschitzky)라는 통역사가 그것이 커피 원두라는 것을 알았으며, 왕의 허락을 받아 현재의 돔가세에 빈 최초의 카페를 개업해 커피를 끓여 팔았다고 한다.
<빈-예술을 사랑하는 영원한 중세 도시>
인성기, 살림출판사
그 후 수많은 카페가 빈에 생겨났으며, '비엔나 커피'(커피 반 컵 분량에 뜨거운 우유를 부어 채우고, 우유 거품과 액체 프림을 그 위에 붓고 마지막으로 약간의 카카오 가루를 뿌린 커피)를 비롯해 약 30여 종의 커피가 개발되어 커피가 그야말로 예술로 승화되었다. 1819년도에는 빈의 카페가 150곳으로 늘어났으며, 1910년에는 이미 1202곳이나 되었다.
빈 시민들이 커피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19세기 민중극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연극에서 하인은 주인과 노동 계약을 맺으면서 날마다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치커리 뿌리 달인 물을 커피 대용으로 마시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높은 신분을 과시하는 표시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빈의 커피 소비량은 엄청나서 빈 시민 1인당 하루 평균 0.5리터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빈-예술을 사랑하는 영원한 중세 도시>
인성기, 살림출판사
나는 비엔나에 있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카페 세 군데를 골랐다. 먼저 찾아간 곳은 Cafe Demel이다. 콜마르크트 거리에 있는 이 카페는 1786년부터 캔디와 잼을 넣은 도넛을 판매한 루드비히 데너의 사업으로 시작었다고 한다. Demel 가에서 이 사업을 이어받아 황실에 납품할 정도로 성공시켰다고 한다.
나는 거리에 나와 있는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여기에서 맛 볼 커피는 멜랑게(Melange)인데 비엔나에서 가장 인기있는 커피라고 한다. 맛은 카푸치노와 비슷했다. 함께 주문한 자허 토르테 역시 맛있다. 초코 케이크를 포크로 떠서 달콤한 생크림에 찍어 먹는다. 초코 케이크가 너무 달지 않아 생크림과 잘 어울린다.
자허 토르테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Cafe Sacher라는 카페에서 황제가 먹었다는 자허 토르테를 탄생시켰는데 한 동안 Sacher와 Demel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단다. 더 흥미로운 것은 Sacher의 아들과 Demel의 딸이 결혼을 해서 제 2의 자허 토르테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그 레시피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서 비엔나의 다른 카페에서도 같은 형태의 케이크를 판매한다고 한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카페 안을 구경했다. 케익들의 진열이 달콤하다. 초콜릿과 캔디도 판매용으로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이 바로 Demel의 자허 토르테의 원조라고 하는 Cafe Sacher이다. Hotel Sacher의 1층에 있는 카페라 외관도 분위기도 고급스럽다. 1층 전체가 카페이고 한쪽 면의 케른트너 거리에는 외부 테이블이 많다.
1832년에 문을 연 이곳의 멜랑게(Melange)는 Demel과 비슷했다. 자허 토르테 역시 외관은 비슷했는데 맛은 조금 달랐다. Demel에서 먹은 것 보다는 더 달았다. 초코 케이크가 더 진하고 달다.
빈의 카페는 19세기 말 탐미주의적 예술인들의 문화 활동 공간이 됨으로써 그 명성이 자자했다. 이른바 '빈 모더니즘(Wiener Moderne)'1) 문인들은 단골 카페인 '하벨카(Hawelka) 카페' '그린슈타이들(Griensteidl) 카페' '첸트랄(Central) 카페'에서 문학을 논했으며, 바르(H. Bahr), 호프만스탈(H.V. Hofmannsthal), 알텐베르크(P. Altenberg), 폴가(A. Polgar), 크라우스(K. Kraus), 슈니츨러(A. Schnitzler), 츠바이크는 그 중심인물들이다. 이들은 귀족 중심의 합스부르크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평생을 예술가 정신으로 살아간 방랑자들이었다.
1897년 그린슈타이들 카페 주인이 건물을 헐고 재건축을 하기로 결정하자 크라우스는 빈의 전통이 사라진다고 애석해하며 유명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오늘날도 일간신문들은 전통 카페가 폐업할 때마다 애도하는 글을 싣곤 한다.
현재 우리가 도심 복판의 콜마르크트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린슈타이들 카페는 1990년 다시 개장한 것이다. 또 첸트랄 카페에 가면 마네킹이 진짜 사람처럼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시인 알텐베르크다. 그는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도로테아가세(Dorotheagasse)의 작은 원룸 호텔을 빌려 그곳에서 살면서 음악회나 연극 관람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그가 보낸 편지들에는 주소가 첸트랄 카페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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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카페에는 종업원들 간에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초심자는 '피콜로'라고 해서 매장 청소와 잔심부름을 하는 졸병일 뿐 손님을 상대할 자격이 없다. 손님에게 직접 주문을 받고 커피 값을 받는 점원이 제일 높다. 빈의 오래된 중세적 위계질서가 카페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빈-예술을 사랑하는 영원한 중세 도시>
인성기, 살림출판사
그리고 이곳에서는 우리에게 비엔나 커피로 많이 알려진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블랙커피 위해 휘핑크림이 올라간 형태의 커피이다. 찻잔과 함께 담겨진 커피 그리고 휘핑크림이 예쁘다. 달콤한 휘핑크림과 함께 입 안으로 들어오는 꽤 진한 커피의 맛이 좋다. 함께 주문한 애플파이 아펠슈트루델도 맛본다. 애플파이 안의 사과가 살아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Cafe Central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사실 나는 이곳이 괜찮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카페의 분위기만큼은 1위이다. 멋스런 건물 1층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는 Cafe Central은 1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내부가 굉장히 넓고 은은한 조명과 함께 그 분위기에 매료된다. 내가 간 저녁 시간에는 직접 피아노 곡을 연주해주어서 정말 분위기가 끝내줬다. 곡을 마칠 때마다 손님들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연주자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연주자는 재미있는 표정까지 지어주는 여유를 보였다.
Cafe Central은 1868년에 문을 열었고 당시 활동하던 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왔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비엔나 커피인 아인슈페너와 애플파이인 아펠슈트루델을 주문했다.
Cafe Sacher보다는 작은 잔에 나온 아인슈페너의 맛이 좋다. 어렵지만 우열을 가리자면 내 입맛에는 Cafe Sacher의 아인슈페너가 더 맛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전통을 자랑하는 맛이라 모두 맛이 좋다.
아펠슈트루델 역시 사과가 살아있어 씹히는 맛이 바삭한 파이와 함께 맛있는 조화를 이룬다. 소복하게 쌓인 분당의 달콤함과 사과 1개 정도가 통째로 들어간 듯한 신선함이 느껴진다.
200~3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비엔나의 카페 투어 덕분에 입이 즐겁고 기분이 좋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각각의 매력을 가진 카페 체험을 하며 비엔나 여행을 즐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02년 된 카페 Waker’s Kaffee 맛도 좋았는데 오스트리아 빈에 와서도 전통이 있는 커피 맛을 보게 돼서 기쁘다. 예전에는 설탕 시럽 없이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던 내가 카페 사업을 경험한 덕분에 이렇게 여행지에서도 커피를 그리고 카페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지금 여행의 경험처럼 경험은 언젠가 나에게 소소한 선물을 계속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