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수상 도시를 헤매다
베네치아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관광객은 누구라도 한번 이상은 길을 잃어봤을 것 같다. 베네치아의 작은 골목들을 걷다 보면 지도를 유심히 보고 있는 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둘째 날 아침, 나는 지도를 갖고 걷다가도 여러 번 길을 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을 잃고 들어서는 낯선 골목과 바닷길이 황홀했다. 길을 잃으면 다시 목적지를 향해 경로를 보며 정신을 차리곤 한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서는 길을 잃어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다. 길을 잃어도 황홀하다.
길을 잃고 마주한 거리에 신선한 과일 상점이 보인다. 작은 골목을 빠져나가니 바포레토 승강장이 있다. 그 옆에는 아침부터 분주한 화물을 운반하는 작은 배들이 보인다. 배 위에는 여러 종류의 박스들이 가득하다. 다시 걷다가 골목에서 마주한 풍경은 작은 다리 위에서 보는 곤돌라의 모습이다.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작은 배다. 곤돌라는 ‘흔들리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이동수단이다. 어느 골목을 봐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관광객들은 곤돌라에 앉아 여유롭게 이 멋진 도시를 감상한다. 그리고 뱃사공은 관광 안내와 더불어 여유롭게 바닷물을 흔들며 이동한다. 뱃사공을 곤돌리에르(Gondolier)라고 하는데 자격시험도 본다고 한다. 곤돌라 조정 능력과 함께 영어, 역사, 문화 등의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곤돌라는 손으로 깎아 만들어지는데, 겉보기에도 무척 화려하고 많은 수고가 들어간 모습이 보인다.
작은 다리를 여러 번 건너자 작은 마을이 나온다. 마을처럼 보이는 이유는 가운데 광장과 같은 공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근처 레스토랑에는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이 보인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과거에 공동 우물로 사용했던 것 같은 우물이 있다.
좁은 골목과 집집마다 다른 문의 장식과 색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다시 운하가 나온다. 운하의 곳곳에는 앉아서 이 멋진 도시를 감상하는 사람이 또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시장이 보인다. 시장에는 형형색색의 과일과 신선한 해산물이 있다. 각종 채소와 과일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경쾌함이 느껴진다. 탐스런 과일들이 나의 침샘을 자극한다. 나는 조각으로 파는 수박과 복숭아를 샀다. 근처에 물이 나오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바로 복숭아를 씻어 입으로 넣었다. 시원함과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잃은 길을 여러 번 다시 찾아가며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말해서 유명한 곳인데 베네치아의 중심이다. 정말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그리고 96m 높이의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는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비잔틴 양식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광장 끝으로 걸어가서 대종루와 광장을 함께 감상해본다.
96m의 대종루를 지나 바다가 보이는 트인 곳으로 가니 두칼레 궁전이 보인다. 이곳은 공식 관저로 사용된 곳인데 과거에 화재 이후에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건축물을 감상하며 바닷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정박해 있는 곤돌라들, 운하를 이동하는 바포레토가 보인다. 조금 걸어가니 사람들이 한 건축물 사진을 찍고 있다.
‘탄식의 다리’라고 하는 곳인데 두칼레 궁전과 궁전 옆에 있는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그 이름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죄수가 감옥으로 갈 때 탄식을 내뱉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죄수가 ‘언제 다시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탄식을 내뱉는다는 말이다.
한 차례 바포레토를 타고 건너편에 보이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간다. 성당에 올라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서 감상하는 베네치아의 풍경이 황홀하다. 햇빛이 바다에 부딪혀 에메랄드 빛으로 산란된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숙소 주인이 알려준 튀김 가게에 들렀다. Trip Advisor에서도 유명한 이곳의 튀김 요리가 고소하다. 맥주와 함께 걷느라 고생한 나의 뱃속을 달랬다.
해질 무렵에 나는 무작정 서쪽을 향해 걸었다. 이제는 베네치아에서 길을 잃는 것도 익숙해졌고 길을 잃어도 황홀한 느낌 때문인지 어딜 가도 발걸음이 가볍다. 해질 무렵에 멀리 보이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돔이 아름답게 보인다. 붉으스름하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함께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눈에 띈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벗 삼아 베네치아의 바다와 물이 붉게 물든다. 거리에는 한가롭게 책을 읽는 사람이 보이고 여럿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현지인들도 있다. 레스토랑들도 저녁 준비로 바빠 보인다. 동네의 꼬마들은 마치 우리네 어릴 적에 노는 것같이 신나게 논다. 해 질 녘이 다 되도록 신나게 노는 그 모습이 정겹다. 어릴 적에 하던 술래잡기 놀이를 이 친구들도 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 베네치아를 걸으며 숙소로 향한다. 황홀했던 나의 기분은 밤에도 여전하다. 은은한 조명들로 작은 골목들이 비치고 운하들 양옆의 오래된 건물들이 밝은 빛으로 운하를 빛낸다. 나는 다시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길들을 천천히 걸으며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황홀함의 여운을 숙소까지 끌고 간다. 길을 잃어도 황홀한 도시, 베네치아에서의 둘째 날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