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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공학자 Sep 16. 2016

#74. 세 번째 본 영화 <어바웃 타임>

 시간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첫 날, 야간 열차로 새벽 4시에 도착해서 대기실에서 네 시간을 졸고 시내를 관광했다. 뱃속에 거지가 들었는지 나는 1시에 밥을 사먹고 5시에 라면을 또 사먹었다. 배를 불리고 숙소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숙소로 가서 샤워를 하고 편안하게 누웠다. 시간은 아직 7시 밖에 되지 않았다. 영화를 한 편 볼 생각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영화 한 편 보기 적당한 휴식시간이었다.


나는 영화 <어바웃 타임, 2013, 리차드 커티스 감독> 선택했다. 이번에 보면 세 번째 보는 거다. 책 역시 볼 때마다 느끼는 것들이 달라지듯이 영화도 그렇다. 볼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재미 덕분에 이미 아는 내용의 같은 영화를 다시 본다. 내용보다는 장면마다 떠오르는 생각이나 깨달음을 즐긴다. 삶의 깊이를 더해가며 이런 소소한 재미을 더 느낀다. 그래서 어른들이 나이들어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가보다.



45일이라는 나름 긴 기간동안 배낭여행을 하며 정말 값진 경험(Rich experience)을 하고 여행을 통해 인생을 또 배운다. 그중 가장 큰 주제가 아마 이 영화의 주제와 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렇듯 이미 내가 갖고 있던 생각도 여행을 하며, 혹은 인생의 여정을 이어가며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살면서 시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참 빠르다."라고 가장 많이, 자주 말하지 않았을까.


인생에서 시간이 왜 중요할까.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말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죽음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정된 시간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누구에게나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그렇게 살아왔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지구라는 생명체 위에서 그렇게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금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바로 인생이라는 그 시간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저자 유시민은 책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이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날이 밝으면 더 죽음에 다가선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무엇엔가 가슴 설레어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이 쉬이 밝지 않음을 한탄한다.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영원한 사랑과 충성을 서약한다. 죽음을 원해서가 아니다. 의미 있는 삶을 원해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함으로 충만해야 한다."


여행 중에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고맙게 느껴진다. 세 번째 본 <어바웃 타임>에서 나는 분명 이전 두 번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것들을 얻었다. 나는 '시간' 자체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해서 보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보았다. 영화에서 아들 팀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시간을 여행을 할 수 있는) 이 능력을 어떻게 썼어요?"



아버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을 어떻게 썼을까. 아버지는 '책'을 선택했다. 인간이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다 읽었다며 책을 읽는데 그 능력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돈을 벌거나 성공을 위해서 시간 여행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강조한다.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생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게 좋아."



아버지의 말은 뜻깊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시간 여행을 해본 인생의 경험이 축적된 말이다. 이 대화에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시간'이라고 바꿔서 우리에게 대입할 수 있다. 아버지의 조언처럼 우리는 시간을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생을 위해 쓸 필요가 분명하게 있다.



팀이 시간 여행을 하며 깨달은 첫번째는 '아무리 시간 여행을 한다 해도 누군가 날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방향과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팀의 깨달음처럼 누군가 날 사랑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내가 누군가를 먼저 사랑하고 사랑을 주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충분히 가능하고 이를 통해 인생의 '시간'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즉 사랑을 먼저 주면, 팀의 아내 메리가 말한 것처럼 사랑을 받은 누군가는 스스로 변화할 용기를 낼지도 모른다. 그 용기는 자신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영화에서도 팀은 자신의 동생이 못된 남자친구을 사귀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되자 시간여행을 통해 동생의 변화에 개입한다. 그러나 메리의 말처럼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그것을 대신해줄 수 없다. 개입을 통하면 무언가 잘못되거나 바뀌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팀은 다시 아내 메리의 뜻을 따른다. 그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동생의 병상 곁에 있어주는 것이었다. 그게 사랑이고 결국 동생은 스스로 변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영화 중간에 동생  킷캣이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남자들은 자유를 원하면서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아." 나는 마음에 한켠에 이 말을 새긴다.

메리와 결혼을 결심한 팀은 메리와 함께 부모님 집에 간다. 어머니는 예쁜 메리에게 말한다.

"여자가 너무 예쁜 건 안 좋은 거야. 유머감각이나 개성을 키울 수가 없거든."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메리에게 전한다. 그것은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규정하는 것처럼 바라서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에는 어머니는 메리가 예쁘지만 예쁘게 치장하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유머감각으로 인생을 즐기고 그를 통해 서로 더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아버지는 팀과 메리의 결혼식에서 멋지게 축사를 한다.

"결혼하는 사람에게 전 항상 한 가지만 충고해 줍니다."


"끝엔 우리 모두 다 비슷하다는 것."
"모두 늙고 같은 얘기를 수십 번씩 반복하니까요."
"하지만 상냥한(kind) 사람과 결혼하라는 것."



아버지의 축사는 한 번 시간여행을 해서 다시 한 것이었다.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이 멋진 말을 했다. 한 번 음미해볼 말이다. 늙어서 우리는 추억을 떠올리며 사는 모습이고 그 모습은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을 함께 많이 만들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는 상냥한 사람과 결혼하라는 말이 아닐까. 상냥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에서 소모적인 부분이 많이 생기고 이는 나중에 회상할 추억이 줄어든다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늘 노력해야겠다. 상냥한 사람이 되도록.

아버지는 팀과 대화를 나누며 주옥같은 말을 많이 남긴다. 그중 또 한가지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 대한 것이다.

"바즈 루어만의 'Sun screen'이라는 노래에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건 풍선껌을 씹어서 방정식을 풀겠다는 것만큼이나 소용없는 짓이라고 한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심각한 문제는 항상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현재를 살라고 말한다.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한 그 능력으로 많은 시간 여행을 경험한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시간에 대한 또하나의 통찰이다. 지금-여기를 사는 것을 아버지는 말하고 있다.

시간 여행을 많이 해보고, 인생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또한 책을 많이 읽으며 깨달은 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시간 여행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을 때 말한다. 그는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에게 비밀을 말한 후 시간 여행을 세 번 한다. 그런데 사실 그 세 번은 모두 아들을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첫 번째는 아들의 결혼식 축사에서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걸'이라며 아쉬워하는 장면이다. 그는 다시 결혼식 축사의 시간으로 가서 귀한 말을 다시 하고 아들에게 그리고 엉클.D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아들과 마주했을 때이다. 전에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느냐고 팀이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는 그렇다고 말한다. 팀이  전에는 어땠냐고 묻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주접을 떨었지. 너를 안고."



다시 두 번째로 상황을 맞이한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아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런 모습이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을 안고선 당신의 삶이 위태롭다고 얼마 남지 았다고 흐느끼며 우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아버지의 병을 알게 된 후 아버지와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담담해 하셨다. 오히려 내가 주체할 수 없이 울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해서 다시 온 것 처럼 온화하고 평온해 하셨다. 그후로 병세가 악화되고 나서도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대담해지라고. 전화통화로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대담해져야 한다."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시간을 더해가며 내 나이를 더해가며 나는 느낀다. 아버지의 그 말은 아주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이다. 아버지의 말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한 것과 같은 의미였다.

"삶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만큼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영화에서 팀의 아버지가 세 번째로 시간 여행 능력을 사용한  때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이다.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함께 산책을 가자고 한다. 그곳은 아버지가 젊고 팀이 어린 시절이었다. 집 앞 바닷가에 나가서 그냥 아들과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기도 했고 아버지가 가장 행복했었던 기억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다. 그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간직하도록 선물해 준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사용한 세 번의 시간 여행은 모두 아들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나이가 들어서는 하지 않았던 시간 여행을 했다. 어떤 아버지의 모습으로 남을 것인지가 아들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아버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의 세 번의 시간 여행은 모두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팀에게 행복을 위한 자신의 공식을 말씀해 주셨다.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일단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이다. 팀은 아버지의 말을 실천에 옮기고 새로운 깨달음까지 얻는다. 그리고 명대사로 영화를 마친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세 번째 보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난 더 새롭게 영화를 봤다. 첫 번째, 두 번째 볼때 역시 좋았고 나름의 발견을 했지만 세 번째 보는 이번에도 새로웠고 더 깊은 발견이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여행 중에 봐서 그런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에 대해서 주의 깊게 보았고 그래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도 보고 느꼈으며 아버지가 말하는 인생의 교훈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영화의 OST를 들으며 여운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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