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여행자의 눈으로 삶을 살아간다. 어딜 가든 어디에 있든 그곳이 인생의 여행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머릿속을 채운 삶의 걱정과 내 몸에 더해진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걱정은 늘어나고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어릴 적 호기심과 호기로움은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다시 추억할 뿐이다. 그러나 계속 그러기엔 선물과 같은 인생이라는 여행의 시간이 아쉽게 소비된다. 아쉬운 마음에 반복해서 여행자의 눈을 뜨려고 시도한다.
여행자의 눈을 뜬 건 3년 전이다. 5년 전에 인생의 방학을 마련한 후 시간을 보내다 다시 2년 후에 새로운 눈을 발견했다. 삶이 힘들어 잠시 쉬고 싶어 마련한 인생의 방학에서 여행자의 눈이 바로 내 안으로 들어온 건 아니었다. 스스로 마련한 인생의 방학은 우선 몸과 마음에 편안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자리를 내주었다. 사실 자연스러운 여정이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과정이었다. 과정이 있기에 또한 얻은 것이 있다. 나의 안과 밖의 변화를 인지하며 과정을 통해 성장한 여정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눈은 과정 후에 출발점에 도착했다. 그 시작은 태어나서 가장 오랫동안 혼자 여행하는 여정의 출발이었다.
“여행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찾는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여행의 초심으로 삼고 떠난 45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여행자의 눈을 떴다. 인생이 여행이라고 했기에 여행을 통해서 인생을 돌아보고 배우고 싶었다. 막대한 시간의 흐름을 그냥 지나치면 배움의 정도가 적다는 믿음 때문인지 나는 다시 긍정적으로 돌아보며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긴 여행의 시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통해 다시 나를 발견하며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새로운 눈을 뜨고 올바른 자세를 다시 세웠다.
우리는 이따금 망각하고 후회하고 아쉬워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시간의 흐름과 시간에 대한 점검이다. 그리고 정리다. 처음 이런 시도를 한 건 첫 직장 입사 후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학 시절의 4년은 그렇게도 길게 느껴지고 많은 추억으로 가득 채웠건만 사회생활 5년은 정말 쏜 살 같이 스쳐간 느낌이 들었다. 아쉽고 허전했다.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물리적인 시간을 멈출 수 없었기에 스스로 시간을 멈춰보려 했다. 그즈음 한날에 카페에 앉아 3시간 동안 혼자 지난 5년을 돌아보았다. 당시 혼자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매우 생소했고 조금은 답답했다. 부정적인 생각도 올라왔다. 후회되는 일들, 자책하는 말과 행동, 타인을 향한 화살, 환경에 대한 불만, 욕심과 욕심에 대한 질책 등의 생각이 긴 열차처럼 이어졌다. 다시 마음의 자세를 잡고 긍정적으로 돌아봤다. 아마 그때 30대의 큰 전환이 시작됐던 것 같다.
그렇게 1년간 인생의 전환을 준비하고 실행했다. 그리고 또다시 5년이 흘렀다. 역시 5년이 빠르게 흘렀지만 인생의 전환점에서 나를 채운 선물과 3년 전 뜬 여행자의 눈 덕분에 과거와 지금은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진다. 새로운 눈을 뜨지 않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추측컨대 아쉬운 생각을 무한 반복하며 소모적인 시간을 보냈고 현재도 그러고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상당히 큰 인생의 전환이었다. 물론 이렇게 다시 돌아보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어찌 됐든 다시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다. 이점이 중요하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어떤가'가 가장 중요하다. 긍정적으로 돌아본 과정으로 채운 나를 통해, 새롭게 뜬 눈을 통해 살아가는 현재가 좋다. 계속해서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고 있다. 때로는 힘이 들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괜찮다. 여행의 시간이다. 힘이 들 때는 혼자 힘을 내보려고 해 보고 좋아하는 주변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을 청해 보면 된다. 어려운 일은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된다. 중요한 건 얼마나 이 여행을 즐기느냐이지 않을까.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요즘 빠져있는 에세이는 류시화 시인의 글이다. 젊은 시절에는 고뇌를 통해 시를 썼고 나이가 들어선 삶의 깊이로 글을 쓰는 그의 책이 좋다. 시인은 말한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고.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들이 시집이었다고.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고 어디에나 책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책은 시간과 풍경으로 인쇄되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로 제본된 책이었다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의 시선과 건강한 자극을 통해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그와 같은 지구별 여행자로서 오늘도 즐겁게 여행해야겠다.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이다.”
- 시인 류시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