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왔던 꿈, 유럽 배낭여행
주로 대학생 때 많이 가는 유럽 배낭여행, 나는 이제 간다. 지금 내 나이는? 서른다섯이다. 젊은 놈이 이런 말하면 웃기겠지만 시간 참 빠르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내 나이가 어때서?!" 하긴, 어떤 부부는 전세자금 빼서 세계여행을 갔었고, 둘이 합쳐 나이가 계란 세 판인 모자도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내 나이는 충분히 젊다.
나는 16년 동안 공부했다. 오래했나?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합이 16년이다. 별다를 건 없다. 그리고 취업을 했다. 사회로 나가서 열심히 일했다. 조직에 적응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여러 가지 일을 경험했다. 6년 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스스로 방학을 마련했다. 나와 비슷하게 방학을 마련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을 먼저 떠났다. 그들은 퇴사 직후의 여행, 이직 전 여행 등 그동안 자신의 노고에 대한 선물을 마련했다. 그리고 떠났다. 짧게든 길게든 여행이라는 자가제조 힐링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어떤 방식이든 자신에게 선물이 되면 나는 뭐든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선물을 바로 나에게 주진 않았다. 너무 막연하게 떠버리는 건 두려웠다. 직장생활 중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었다고 생각한 시점이 있었지만 사실 지나고 나니 더 큰 에너지가 내 안에 있었음을 알았다. 그 방향을 제대로 알게 된 후로 축적한 에너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에너지를 우선 써보고 나에게 선물을 줘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한 다음 달부터 일했고,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여행을 떠난다.
일 년 반 동안 남은 에너지를 충분히 잘 활용한 덕분에 지금 마음이 가볍다. 마치 열심히 쏘아 올린 로켓의 연료를 충분히 소진시키고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기분이다. 이제 궤도를 따라서 즐기며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된다. 나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스스로 목표로 한 도전을 했다. 그 기간만큼은 그래 보고 싶었다. 기회였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다. 사업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두 개의 사업자등록을 하고 다양하게 경험했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부딪혀 보기도 했다.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조직 그리고 사회에서의 나를 다시 확인했다. 물론 2년간의 방학의 끄트머리의 목표는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일하고 싶은 조직까지 선택은 어렵다고 하더라고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로 말이다. 그리고 나의 30대 목표인 가정을 꾸리고 보금자리라는 목적지로 갈 것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찾는 것"
- 마르셀 프루스트 -
이제 남은 방학은 6개월이다. 그리고 방학 중의 방학은 이번 여름 방학이 마지막이다. 동유럽 배낭 여행를 통해서 나는 새로운 눈을 찾고 싶다. 사람과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며 더 즐겁게 살아갈 여유와 용기를 지닌 눈을 갖고 싶다. 혹은 지금 글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멋진 눈을 갖고 싶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여행에 대한 글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그중 에세이 작가 이애경 씨의 글이 마음에 든다.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이애경 저 중에서
전 세계 70억 명의 사람 중에
우리가 한 번이라도 인사를
나누게 되는 사람은 3천 명 정도이고
그중 150명 정도와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사람들과 내가 경험한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니.
안도감과 우려의 두 가지 감정이
물수제비의 파장처럼 마음의 표현을
훑고 날아가지만,
나는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 한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내가 아직 만나 보지 못한
69억 명의 인생을 관람하거나
그들의 삶에 입장할 수 있는
낯설고도 붙임성 좋은 티켓이다.
중요한 건,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든
관람차를 타든
내가 그 티켓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그들의 일상에 끼어들거나
혹은 관전하다 보면
깊게 관여하지 않고도 깨닫는 일들이 더러 있다.
그건 책을 읽다가 밑줄 긋게 되는 깨달음보다는
조금 더 또렷하게 내 마음과 삶에 각인되어
필요할 때마다 나에게 좋은 길을 제시해 준다.
여행은
길을 찾는 데 꼭 필요한 도구들이 들어 있는,
숨겨 놓은 선물 상자 같은 것.
글이 좋아 지인들에게 보여줬더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모두 달랐다. 나는 '책을 읽다가 밑줄 긋게 되는 깨달음보다는 조금 더 또렷하게 내 마음과 삶에 각인되어 필요할 때마다 나에게 좋은 길을 제시해 준다.'가 좋았다. 마치 이번 여행을 통해 아주 방대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책을 읽다가 밑줄 긋게 되는 깨달음보다 더 강렬하게 내 마음에, 내 삶에 각인될 경험을 이번 여행에서 하고 올 것 같다. 설렌다.
대학생 때 많이 가는 유럽 배낭여행, 나도 대학생 때 가고 싶었다. 사실 계획했었다. 군 전역을 앞두고 부푼 마음에 복학 전까지 돈을 벌어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전역 후 나는 3개월 동안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400만 원을 벌었다. 그런데 복학을 앞둔 복학생의 마음은 그리 간편하지 않았다. 숫자에 강한 공대생에게 숫자가 많이 적힌 학자금의 숫자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 나는 그 돈으로 학자금을 냈다. 그땐 시간은 나중에 또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후로는 시간도 돈도 계속해서 넉넉하진 않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렇게 내가 힘들게 벌어서 낸 학자금 덕분에 태어나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봤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으니 참 좋다.
45일간 떠날 동유럽 배낭여행에서 나는 100개의 스토리를 글로 남길 것이다. 얼마나 멋진 스토리가 이번 여행에서, 내 인생에서 펼쳐질까. 좌충우돌하며 맨땅에 헤딩도 하며 펼쳐질 이야기이기도 한 100개의 스토리,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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