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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ow is your journey?

상대를 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여행

by 의미공학자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다. 늘 약간은 긴장되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큰 관심없는 면세점을 지나고 보니 비행기 안이다. 내 몸은 이미 웅장한 비행기 동체에 실려있다. 그리고 웅웅 거리며 대기를 가르고 있다. 내 옆좌석에는 출장을 가는 한국인과 한국에서 일하다 잠시 고국으로 가는 독일인이 앉았다. 독일 항공인 LUFTHANSA를 타고 갔기 때문에 독일 승무원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그녀는 독일 네이티브가 틀림없었다. 나는 “Good afternoon”이라고 하며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냈다. 그녀는 반갑게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자리에 앉으니 옆에 계신 한국인 분께서 먼저 말을 거신다.


처음타본 2층 비행기


“독일로 혼자 가나봐요?”

“네, 동유럽 여행가는데요, 혼자 갑니다.”

“혼자가면 심심하지 않나요?”

“가면서 현지인한테 말도 걸고, 여행객도 사귀면 재밌어요.”


한국인 아저씨는 여행사 일로 출장을 가신다고 했다. 그는 사십대 후반의 친절한 아저씨다. 내가 아저씨보다 훨씬 나이가 어려보이는데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가며 말을 걸어주신다. 아저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바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포루투갈로 향한다고 하셨다. 한편 오른쪽에 앉은 독일인 여성은 울산에서 일을 하는데 잠시 독일에 간다고 말했다. 점심식사로 비빔밤이 나왔는데 고추장을 듬뿍 넣어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젓가락질이 굉장히 능숙했다. 사실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고추장도 나보다 더 넣어서 아주 맛있게 비빔밥을 즐기고 있었다.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해 보이는 젓가락 실력에 감탄의 말을 내뱉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Material chemistry를 전공한 그녀에게 난 material science & engineering을 전공했다고 하니 흥미로워했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녀는 곧 헤드폰으로 자신의 귀를 덮었다. 영화 감상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대화를 더 진행하진 않았다. 그녀는 피곤했는지 비빔밥을 깨끗이 비우고 바로 잠을 청했다.


안정적으로 비행하는 비행기는 계속해서 독일 푸랑크푸르트로 향해 날았다. 비행기 동체가 상당히 컸다. 사실 나는 2층으로 된 비행기는 처음 타봤다. 나는 2층짜리 비행기 2층에 탑승했다. 1층에 탔을때와 다른점은 이상하게도 비행기가 이륙하는 시점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점이다. 아무래도 지면으로부터 비행기 바퀴를 통해 전해지는 진동이 덜 느껴진 것 같다. 아니면 비행기의 부피가 커서 내가 느끼는 절대적 진동이 크지 않음을 내가 처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공돌이같은 생각은 집어치우자.


다시 11시간의 비행시간동안 뭘할지 잠시 생각해본다. 제공되는 영화 목록에 내가 책으로 읽었던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감상해보기로 한다. 자막이 나오지 않아 오롯이 영어 리스닝에 의존한다. 내용을 이미 알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다른 영화를 재생했을 것이다. 잘 해석되지 않는 대사를 열심히 들으며 화면에 집중했다. 영화에서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난 정신과 의사 꾸뻬 씨(영화에서는 헥터라는 이름)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중국에서 만난 수도승과 화상통화를 한다. 수도승의 첫마디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 주인공 꾸뻬(헥터)>


“How is you journey?”


수도승은 꾸뻬 씨에게 물었다. 그러자 꾸뻬 씨는 여러 가지 있었던 일들을 연신 내뱉고는 자신이 깨달은 점을 수도승에게 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수도승의 첫마디가 인상깊었다. 내가 여행을 하고 있어서 더 그런듯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 보통 상대를 먼저 본다. 다시 말해 상대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등이다. 일상에서 좀처럼 실천하지 못하는 상대를 바라보는 일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해낸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내 이야기 좀 들어봐 달라고 안달내는 모습이 일상에서 우리의 모습이라면 한 번쯤 돌이켜볼 대목이다. 달리말하면 여행은 그만큼 우리에게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여유를 주는 것인 것 같다. 또한 어쩌면 우리 안에는 상대를 바라보는 여유와 가능성이 무한한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수도승은 자신의 일상에서 꾸뻬 씨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주 여유있게 말이다. 수도승은 인생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늘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도 수도승의 자세와 노력처럼 일상을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봐야 겠다.


옆에 앉았던 아저씨는 14명의 손님들을 이끌고 포스투갈과 스페인 여행을 가이드하는 여행사 직원이었다. 이야기를 더 나누다보니 비행기에 관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대해서 넓고 얕은 지식의 표면을 잠깐 맛본듯하다. 도착해서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독일 네이티브 여성과 눈인사를 다시 나눴다. 그리고 각자의 여행으로 공항을 빠져나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향했다. 나는 지도에 나와있는 유스호스텔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체크인을 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조금은 피로해진 몸으로 6인실 룸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른 여행객이 나에게 물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중앙역 건너편 카이저 거리



“How is it going?”


그 역시 상대를 먼저 봐준다. 여행은 스스로에게 상대를 볼 수 있는 여유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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