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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공학자 Jul 23. 2016

엄마의 육아일기를 내가 다시 쓰다

엄마의 환갑 그리고 자식의 성장 일기


올해 엄마 나이가 환갑을 맞는다. 시간 참 빠르다. 뭐 이런 말은 내가 할 말이기보단 엄마가 할 말이다. 환갑(還甲)이라는 말은 회갑(回甲)과 같은 말로 나이 61세에 자기가 태어난 해로 돌아 왔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70살까지 사는 이가 드물어 환갑만 살아도 큰 경사로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환갑상에서 자손들의 장수도 빌었다. 하지만 평균 수평이 길어지고 100세 시대를 말하는 요즘이라 환갑은 예전처럼 잔치를 하진 않는다.      


엄마에게 환갑이야기를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요즘에 누가 환갑을 챙기냐고 말이다. 그냥 넘어가자고 한다.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뭔가 괜찮은 선물이 없을지 생각했다.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위에 하면 효자라고 칭찬해주신다. 그리고 따라오는 말은 결혼하면 피곤하겠네 또는 마마보이가 되지 말라는 말들이다. 사실 그런 말들에 조금은 염증이 생겼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괜시리 상처입는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 상실감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엄마에게 나는 잘해드리고 싶다. 거창한거라기보다는 작은 것들이 많다. 관심을 더 보이고, 표현을 더 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는 것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울증까지 있던 엄마에게 나는 최선을 다했다. 병환으로 아버지를 보낸 후 나는 왜 내가 가진 것을 다 놓고 아버지를 살리지 못했는지 나를 원망한 적이 있었다. 부정적인 후회였지만 엄마마저 그런 후회의 늪에 두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상실감을 이겨내고 자존감을 더 높일 수 있도록 나는 많이 노력했다. 짜증을 잘 받아주는 엄마에게 나 역시 쉽게 짜증을 냈던 보통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더 이상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더러는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노력했다.      


내가 생각하는 염증들은 나보다는 엄마가 더 우려한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나쁜 시어머니를 보며 혹은 마마보이로 나오는 역할을 보며 내게 말한다. 당신은 그러지 않으실 것이며 나 역시 그러지 말라고 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가 결혼하면 내 집에 잘 오지 않으실 거란다. 많은 간섭하지 않을테니 어서 가정이나 꾸리라고 한다. 나의 가정에서 나의 삶을 살라고 한다. 나 역시 엄마의 바람대로 30대에는 가정을 꾸릴 것이다.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위해 살 것이다. 얼른 장가를 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내가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나는 괜찮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는 엄마가 오히려 애잔하다.      


환갑을 맞은 엄마는 그래도 아직 건강하신 편인데, 요즘들어 여기 저기 조금씩 아프다고 할 때는 세월이 야속하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은데 잘 해드리고 싶다. 다른 가족처럼 환갑에 그냥 밖에서 식사만 하면 될까. 나는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선물을 해드리고 싶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있다가 괜찮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엄마가 가끔 그랬다. 엄마 입장에서는 당신이 낳은 조그만 아기가 이렇게 커서 신기하다고 했다. 엄마의 기억속에 그 모습들이 다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엄마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기억들일까.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되어 나의 육아, 성장일기를 쓸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을 10단계 정도로 해서 그림일기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런 선물을 해준적은 당연히 없다. 엄마의 환갑을 맞아 거창하진 않지만 특별한 선물을 고민하니 마음에 드는 그림이 그려졌다.     



나는 누나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누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누나가 엄마의 입장에서 딸의 성장 일기를 쓰고,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들의 성장 일기를 쓰기로 했다. 어릴적부터의 사진을 10장 정도 골라 우리는 각자 성장 일기를 만들었다.      



이번 여름 배낭여행 전에 엄마에게 환갑 기념 여행을 제안했다. 2박 3일 동안 전남 담양과 영광으로 엄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맑은 공기도 마시며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누나와 난 엄마에게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누나가 만든 딸의 성장 일기를 먼저 보고 엄마는 가슴이 뭉클했나보다.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아마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스치며 그리고 지금의 고마움이 느껴지며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았을까. 누나의 일기를 보고 난 후, 나는 내가 만든 일기를 읽어드렸다. 중간중간에 오히려 내가 말을 잇기 힘든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누나와 함게 엄마의 입장에서의 성장 일기를 만들며,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입장이 되어서 바라보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짜증을 내도 엄마는 늘 받아주었다. 당신의 눈에는 너무나 소중한 아기들이고, 자식이리라.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깊은 마음으로 자식의 투정을 받아주었을 것이다. 나는 감히 생각해본다. 아마 누나도 그랬을 것이고 나도 이번에 많이 느낀다.



몇 번 말을 잇지 못할 뻔하다가 겨우 일기를 다 읽어드렸다. 거창하진 않았지만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고, 선물이었다. 사실 엄마에게 준비한 선물이 누나와 나에게도 선물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휴게소에서 나와 누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환갑 선물을 드렸다.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더 노력해서 결혼을 하고 보금자리라고 하는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나에게도 현실이 그렇게 보이는 게 가끔 답답하다. 원래 가진 것 없이 시작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가진 것이 많진 않지만 이미 가진 것을 바라보고, 나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싶다. 그게 효도하는 길일 것이다. 엄마는 늘 말한다. 다른 건 바라는 것이 없고 너희들이 가정을 꾸리고 잘 사는 것이면 된다고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결혼하면 그때부터는 어머니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나는 군입대할 때 아버지와 약속했다. 군대 갈때부터는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고 부르겠다고. 나는 그 약속을 잘 지켰다. 이제 엄마하고도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 글은 효도자랑을 하기위해 쓴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이 지금 할 수 있는 효도, 말 한마디라도 부모님께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잘 하고 있겠지만 조금 더 따뜻하게 한 번 더 하길 나는 소망한다.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엄마의 입장에서 육아일기를 써보는 것도 추천한다.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점도 많고 선물의 감동은 정말 크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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