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미공학자 Mar 30. 2016

엄마와 함께한 퇴사 여행

소극적 마마보이의 적극적 여행

"나는 늘 사람들에게 그리 말한다. 한 여자의 배에서 나와 그 여자의 젖을 먹고 자라, 그 여자의 속을 썩이면서 나이 든 우리가 그 여자마저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무슨 사랑 따윌 꿈꾸고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 노희경(드라마 작가) -

엄마한테 어깨동무를 한다. 엄마는 나를 밀쳐내며 저리 가라고 한다. 엄마는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즐겨 본 이후에 더 격하게 반응한다. "너 자꾸 이러면 마마보이라고 장가 못 간다." 엄마가 집에서 얼른 나가 독립하라고 한다.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은 내가 가정을 꾸리고 자식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아들이 그렇듯이 밖에서보다 집에서 더 소극적이다. 더 무뚝뚝하기도 하다. 어색하다고 할까. 그래도 엄마한테 어깨동무를 하는데 엄마의 반응은 격렬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늘 엄마를 아낀다. 나는 소극적 마마보이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셨겠는데요."
"부모님은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6년간 다닌 대기업을 그만둔 사실을 들은 주위 분들이 나에게 주로 물어봐 주시는 질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6년 동안,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보지 못한 엄마에게 나는 제대로 된 여행이 아닌 어려운 여행을 제안했다. 2박 3일 동안 여수에 있는 금오도라는 곳으로 난생처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재작년 10월 마지막 주에 엄마에게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엄마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 돌아다닌 곳 중 괜찮은 도시 중 하나이다. 바로 여수라는 곳이다. 여수는 내가 근무한 전남 광양에서 매우 가깝다. 그래서 나는 자주 갔었다. 회사 동기들과도 바람 쐬러 가고, 퇴근 후 야경을 보러 가기도 했다. 회사에서 함께 가는 봉사활동으로도 가봤다. 그러고 보니 엄마, 이모, 누나와도 여수 오동도에 갔었다. 이번에 간 곳은 '금오도'라는 섬이다. 여수는 바다와 섬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바라만 봐도 시원한 풍경이 많다. 그래서 어딜 가도 참 좋다. 물론 내가 바다를 좋아해서 더 그렇게 보이는 이유도 있다. 금오도는 회사의 어른들이 추천해준 곳이다. 강력하게 추천받고 나는 이곳을 엄마와의 여행 목적지로 정했다.



날씨가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 10월의 마지막 주 그해 가을은 바다에 그 존재감을 녹여냈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눈부신 하늘색이자 바다색은 나와 엄마 마음속 깊은 곳까지 씻어내는 듯했다. 금오도는 면적이 약 27 제곱킬로미터로 비렁길이라는 둘레길로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나는 엄마와 그중 마음에 드는 코스를 선택하고 섬을 감싸며 걸었다. 마치 바다로 행군하는 듯하면서도 섬에 안정적으로 업혀있는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날씨 그리고 시원한 풍경이 함께하는 여행에 엄마는 신이 났다. 아들과 단둘이 함께하는 생애 첫 여행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라 기분이 더 좋은 듯하다.



섬의 둘레길을 따라 엄마와 함께 걸었다. 오르막도 오르고 내리막도 함께 걸으며 땀을 흘렸다. 걸으며 산과 바다를 모두 바라보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섬의 둘레길이 인기가 많은가 보다. 나는 주로 풍경을 이야기하고 지나온 일들을 기분 좋게 이야기하며 엄마와 함께 섬을 따라갔다.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다시 걷다 큼직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엄마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시원했다. 그동안의 힘든 일이 바람에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한테 내 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엄마에게 나의 6년간의 직장생활에 대해 말했다. 6년간 내가 얻은 것, 배운 것, 성장한 것, 힘들었던 일을 말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늘 그랬듯이 엄마는 나를 믿어줬고 응원한다고 말해줬다. 퇴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엄마는 당황하지 않았다. 사실 엄마는 내가 여행을 제안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감했다고 나에게 털어놨다. 그렇다. 엄마다. 뱃속에서부터 나보다 나를 더 오랫동안 기다리고 지켜봐 온 나의 엄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활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엄마는 널 믿고, 언제나 널 응원할 거야."




나는 힘이 났다. 바다를 바라보며 새로운 나의 포부를 다짐했다. 인생을 길게 그리고 넓게 바다와 같이 품고 나가가겠다고 바다에 외쳤다. 6년간의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이 바다에 펼쳐졌다. 그리고 나는 씨익 웃었다.



나는 여수 금오도에서 그리고 여수 밤바다에서 엄마와 2박 3일을 보냈다. 2박 3일 동안 나는 엄마에게 나의 꿈에 대해 말했다. 엄마는 듣고 또 들어주었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 숙소 잡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민박집을 찾고 있었다. 민박인 줄 알고 들어갔던 곳이 레스토랑이었다. 밤은 늦어가고 엄마는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레스토랑 사장님께서 자신의 별장과 같은 숙소를 기꺼이 내어주신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바로 바다가 보이는 숙소였는데, 방이 2개에 테라스도 있었다. 돈 오만원에 나와 엄마는 횡재했다. 엄마와 나는 숙소에서 각자의 방에 누웠다. 집에 있으면 안방에 누워 함께 TV를 봐도 어색하지 않을 텐데, 이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굉장히 어색했다. 그냥 잠을 청했다. 재미있는 어색함을 경험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테라스에서, 상쾌하게 우리는 맞아주는 바다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와 함께 세계여행을 한 여행작가 태원준 씨의 책 두 권을 모두 읽었다. 두 권 모두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책 제목에서 긍정이 솟구친다. 아들과 엄마의 나이를 합쳐 계란 세 판, 그래서 그의 블로그 명은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세계여행을 떠나다'이다. 누나가 나에게 선물해준 이 책을 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나도 엄마와 함께, 세계여행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둘만의 여행에서 얻은 것이 참으로 많다. 태원준 작가가 느낀 그 수많은 배움을 나도 조금은 느낀 듯하다.



책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인천공항에서 엄마와 아들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아들, 사람들이 왜 여행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왜 하는데?"

"예상치 못한 절경들과 생각지도 못한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오! 정답!"

"또 있어."

"뭔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니까."

엄마, 책 써도 될 것 같아."

"벌써 마음속에서 500페이지는 써놨는 걸."

"엄마, 참 신기하지? 이렇게 오랜 기간 수만은 곳을 돌아다니다니."

"그러니까 여행이라고 하나 봐. 나그네의 움직임, 여행. 그치?"

"응."





매거진의 이전글 저 나쁜 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