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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May 30. 2022

매일 하루의 삶을 담아내는 단단한 사람

브이로그의 그녀들

2. 브이로그의 그녀들, 딤디, 소소, 오눅


그 단단함, 어제와 그리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또 한번 살아내는 담담함, 그 하루를 여전히 카메라에 담는 묵묵함으로부터 보는 이는 눈치채지 못한 채 위로받는다. 


며칠 전에는 이유 없이 마음이 어둡게 쪼그라드는 날이 있었다. 별다른 일 없이도 행동은 작아지고 손끝은 차가워지고, 혼자 있어 좋기보다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 보통 이유가 없는 마음에는 달래줄 길도 없어서 침대에 퍼져 시간이 흐르는 걸 내버려두는 게 전부지만, 내가 자연스럽게 찾은 건 유튜버 ‘deemd 딤디’의 브이로그였다. 눈에 익은 집에서 익숙한 셔츠를 입은 사람이 두부를 썰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역시 유튜브를 보면서 그걸 먹고, 달그락거리며 치우는 걸 보면서 마음은 차츰 가라앉아갔다. 단순히 누군가가 보내는 하루를 지켜보면서, 망쳤다고 생각한 나의 하루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날 내가 느낀 것은 분명 위로였는데, 스스로도 어째서 누군가의 브이로그가 대책 없는 마음에 위로가 되는 건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돌이켜보면 그건 브이로그가 가지는 어떤 태도, 그러니까 브이로그라는 컨텐츠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한동안 나는 브이로그의 효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튜브 컨텐츠에조차 의미나 쓸모를 요구하는 태도는 어쩌면 현대적이지 못할지 모르겠으나, 생판 남이 장을 보고, 카페에 가고, 베이킹에 실패하는 걸 지켜보는 재미는 내게 와닿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을  친구는 뜨악한 표정으로 내가 자기네 부장님과 똑같은 소리를 한다고 했다) 인기의 이유가 궁금하니 한두  시도해 보면서도 공감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혹시나하는 한두 번의 시도가, 혼자 하는 식사의 가벼운 배경음이 되었다가, 대중교통에서 피곤한 여정을 달래는 동반자가 되고, 다시   오는 밤의 ASMR 면서, 나는 효용 없는 브이로그의 따뜻함에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이유 없이 마음이 소란한 날, 자연스레 브이로그를 켜놓게 될 때까지.


주로 챙겨보는 브이로그는 'deemd 딤디', '소소soso', '오눅onuk' 세 채널이다. 다른 채널의 브이로그도 간혹 보지만, 이 채널들은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꼬박꼬박 본다. 셋의 공통점이자 브이로그를 주된 테마로 하는 채널들의 특징은 업로드가 매우 성실하다는 점이다. 보통은 비슷한 구성과 구도의 화면 흐름이 주를 이루고, 예측 가능한 일상이 펼쳐지며(간혹 특별한 일이 발생하고), 썸네일이나 시작과 끝 화면이 일관되고, 어느 정도 규칙적인 간격으로 업로드된다. 그리고 그 특유의 성실성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채널들은 결국 성장하고 구독자를 늘려간다(모든 채널이 똑같다는 것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브이로그들이 주로 그렇다).

22년 5월 현재 기준 90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 'deemd 딤디'가 보여주듯, 그 컨텐츠는 화려하거나 대단한 경험을 담을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구독자들은 딤디가 더없이 규칙적인 태도로 담아내는 반복의 일상들, 새벽 6시 기상을 아이패드로 인증한 뒤 매일 똑같은 패딩을 입고 뛰는 장면이나, 폴로 니트를 입고 원룸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장면, 우리 주방에 있는 것만 같은 프라이팬을 사용해 홍고추와 청양고추를 넣은 요리를 만드는 장면을 가장 사랑한다.

사랑의 연유를 얕게 살피자면 일상을 공유하는 그녀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이고, 사랑의 이면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자면 그녀의 삶이 반복에서 비롯된 단단함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 단단함, 어제와 그리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또 한번 살아내는 담담함, 그 하루를 여전히 카메라에 담는 묵묵함으로부터 보는 이는 눈치채지 못한 채 위로받는다. 


조금 우울한 날에도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숨쉬고 있음에도 가끔은 '살아낸다'고 느껴지는 날들. 그런 날에도 저 사람은 하루를 영상에 담는구나. 그렇게 브이로그는 그 자체로 꾸준함과 성실함의 지표가 되고, 반복적인 삶을 살아낼 뿐만 아니라 촬영하고 편집하고 업로드함으로써 두번 세번 다져져 단단함의 영역이 된다. 그러니까 마음이 들썩이거나 가라앉는 날 브이로그를 보는 것은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보는 차분함과 더불어 그녀의 일상을 통해 나의 반복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별다를 것 없는 삶을 탈출하고 싶을 때 한번 더 견디게 해주고, 왠지 모를 허무함과 외로움이 몰려올 때 평범한 평온을 지키게 해주는. 그건 이 요란한 세상에서, 브이로그의 그녀들이 내게 선사한 평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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