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 Jun 20. 2023

아름답고 현명하며 성공한 언니들의 레퍼런스

홍진경 엄정화 최화정

4. 레퍼런스가 되는 언니들, 홍진경 엄정화 최화정


이 선배들의 삶은 한마디로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아줌마가 되어서, 결혼을 안 하면 결혼 못한 아줌마가 되어서 후려쳐지는, 그래서 어느 불행이 더 견딜만한 것인가 재어보게 되는 마음에서 조금 고개를 들게 된다.


인생에는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난생처음 삶으로 던져져 가이드도 롤모델도 없이 살아가는 이곳에서 무언가 참고할 만한 것.* 그리고 레퍼런스는 이왕이면, 나와 공통점이 있을수록 좋다. 심리적으로 가깝고, 실제로도 참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소중하다.

홍진경, 엄정화, 최화정.

아름답고, 현명하며, 성공한 언니들. 그런 사람들은 몇이고 더 이야기할 수 있다. 방송에서, 유튜브에서, 책에서, 강연에서, 각종 콘텐츠에서 20, 30대 여성들의 미래가 되어주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오늘은 홍진경 채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홍진경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최화정과 엄정화의 집을 소개하며 그들의 루틴과 인터뷰, 그리고 손님으로 홍진경을 맞아 대접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영상들은 조회수도 많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23년 6월 현재 기준 최화정 1부 423만 회, 2부 114만 회, 엄정화 89만 회), 댓글에서의 뜨거운 반응과 등장했던 제품들의 국내 품절 사태 등 여러모로 큰 관심을 받았다. 사회적으로도 그랬고, 나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남은 콘텐츠들이었다. 물론 이 영상을 보기 전, 대중에게 알려진 그들의 삶과 시간, 선택들을 알고 있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홍진경은 기혼 유자녀 여성, 최화정과 엄정화는 미혼 여성으로 서로 삶의 형태가 다르며, 40-60대인 그들은 나와 다른 세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차이는 내가 그들을 레퍼런스 삼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우리가 여자라는 느낌 때문이다. 물론 젠더가 계층이나 장애여부 라이프스타일 등 모든 차이를 상쇄하는 것은 아니며, 젠더는 이분법적으로 깔끔하게 나누어지는 개념 또한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앞서 말한 문장이 성립한다면, 그건 그만큼이나 레퍼런스 삼을 선배 여성들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선배들의 삶은 한마디로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아줌마가 되어서, 결혼을 안 하면 결혼 못한 아줌마가 되어서 후려쳐지는, 그래서 어느 불행이 더 견딜만한 것인가 재어보게 되는 마음에서 조금 고개를 들게 된다. 물론 그 사람들은 돈도 많고 유명인 아니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돈 많은 유명인이라고 다 행복하고 (특히 마음이) 건강하고 풍요롭게 사는 것은 아니잖나. 아침마다 사과 식초 탄 물을 마신다는, ‘이제 앞으로 관건은 무엇을 먹느냐’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최화정의 싱그러운 단호함이나 거실이 아닌 응접실로 꾸민 방에 앉아 그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말하는 엄정화의 천진한 담담함은 어쨌든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고 가드를 내려놓게 만드는 데가 있다.

선배들의 집은 하나같이 취향이 묻어있다는 것도 좋은 삶의 반증 같다. 홍진경의 집에 감탄한 사람이야 한둘이 아닐 테지만, 그 신성하기까지 한 단순함과 정갈함은 홍진경이란 사람의 스타일과도 닮아있어 그의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서울숲이 내려다보이는 최화정의 집 역시도 그의 취향대로 여기저기 걸려있는 독특한 그림, 예술 작품들과 직접 리폼한 인테리어 요소들, 끊임없이 나오는 맛있고 섬세한 식재료들이 없었다면 그 매력이 절감됐을 터다. 집주인만큼이나 환하고 생명력 있는, 그리고 냉장고 가득 한두 잔씩 마신 와인들이 자리한 엄정화의 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응접실. 거실이 아닌, 보다 개인적으로 꾸며진 응접실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이는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련된 취향을 자본이 뒷받침한다는 걸 모를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과 취향과 삶이 합치를 이루는 건 오롯이 자본의 힘만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파는 김치를 한입으로 알아본 홍진경의 사업에 대한 진지함이나 음악과 연기를 모두 내려놓지 않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계속 자기 길을 걷는 엄정화의 용기는 그 삶이 취향의 고급화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 보여준다. 무엇보다, 어느 누가 60대 독거 여성을 상상할 때 최화정의 밝디 밝고 건강하며 산뜻한 삶을 떠올리겠는가. 그 희소성이 또한 소중한 레퍼런스다.

이 영상들을 보며 나에게는 몇 가지 꿈이 생겼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 한 점을 사서 거실에 걸어두고, 거실이 아닌 응접실에서 사람을 맞고 자신 있는 요리로 그를 대접하는 이가 되자. 그리고 그런 이들이 부르고 찾는 사람이 되자. 무엇보다 나에게는 이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이 생겼으니 그것이 가장 큰 무기다. 앞서 잘 살아준 선배들의 레퍼런스로 인하여.



*얼마 전 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진저티프로젝트의 책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전 3권)>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매한 골목에서 갑자기 발견하는 작고 환한 불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