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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Dec 25. 2018

워킹맘의 워킹데드 체험기

워킹맘의 출근전쟁

초보 워킹맘에게 출근시간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울음소리 알람에 잠을 깨서 아이를 달래며 남은 잠을 조금이라도 채워보지만 언제나 실패. 세수를 하다가 안아주고, 눈썹을 그리다가 업어주고, 1분이라도 아이에게 시간을 쓰고 싶어 매일 조금 늦게 현관문을 나선다.


출근시간은 아무리 뛰어도 1시간을 탈탈 털어 쓴다. 뛰어도 안 뛰어도 1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언제나 냅다 뛴다. 출근길 마의 구간은 양재역이다. 신분당선과 이어지는 환승구간은 길고 계단도 역대급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좋으련만 1분 1초가 아쉬운 나의 선택은 언제나 계단이다.


얼마 전 출근길 참사도 양재역에서 벌어졌다. 여느 때처럼 계단을 마구 뛰어올라갔고 고지에 도착했을 때 활짝 열린 지하철 문이 보였다. ‘타야 한다!’ 전두엽의 명령은 단호했다. 이미 가파른 계단을 뛰어올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지만 무조건 달렸다. 막 속도가 붙기 시작한 순간. 번쩍! 눈앞에 빛이 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등산복을 입은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등산으로 다져진 하체의 힘 때문인지 나와 부딪힌 아주머니는 흔들림이 없었다.  “으아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나를 뒤로하고 아주머니는 나를 힐끔 보고는 지하철에 타버렸다. 멀어지는 아주머니의 강인한 뒷모습에 다시 한번 비명을 질러 보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딘가 단단히 부러진 듯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앞을 보는데 아직 열려있는 지하철 문이 보였다. 다시 한번 전두엽의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타야 한다." 다리를 질질 끌며 아슬아슬하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손잡이에 매달리듯 서서 고통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숨도 못 쉬게 조여오던 통증이 조금 옅어지자 주위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이 지하철을 탔으니, 지루한 출근길에 진귀한 구경거리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여러 회사 점심시간에 맛있는 반찬이 되겠구나.

쏟아지는 뜨거운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회사에 도착해 여유 넘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속을 힘겹게 파고들었다. 출근을 했을 뿐인데 십년치 피로가 밀려왔다. 급히 내린 진한 커피에 한숨을 숨기고 애써 똑바로 걸으며 회의실로 향했다.

 

내일의 출근길이 벌써 저 앞에서 반갑게 손을 흔든다. 

"어서 와 워킹맘은 처음이지?"


팔다리가 부러져도 출근을 위해 뛰는 워킹맘의 워킹데드 체험기는 당분간 계속될듯하다.





아이와 여유롭게 걷던 길이 자꾸만 떠오르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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