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의 감사함이 느껴진다
외국 영화에서 아이들이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햄버거랑 감자튀김을 사들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먹는 장면이 그리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멋진걸 우리 아이들은 안 한다. 아니 못한다. 캐나다 초등학교에는 카페테리아도 급식도 없으니까.. 소풍을 가던, 체육대회를 하던, 그냥 수업을 받으러 가던 무조건 도시락을 싸가야 한다. 고등학생, 대학생, 심지어는 회사원들도 도시락을 많이들 싸가지고 다니는 문화... 급식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도시락 싸기가 아닐까 싶다.
두 아이 점심 도시락 + 간식 도시락 + 남편 도시락까지 매일 다섯 개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급식을 한 세대이기 때문에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셨었다. 그때는 매일 밥에 국에 반찬을 싸주셨었는데 어떻게 매일을 그렇게 싸주셨을까.. 그땐 당연하다 여겼었는데 지금 내가 매일 도시락을 싸다 보니 정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난다.
여기에 와서 처음에는 예쁘게 정성스레 싸줘야지 하는 마음에 열심히도 검색하고 준비했다. 메뉴도 다양하게~!! 샌드위치 종류도 여러 가지, 김밥에는 참치도 넣었다가 김치도 넣었다가, 과일도 매일매일 다르게 사놓고.. 아이 친구들이 엄마가 셰프냐며 부럽다고 했다니 나도 절로 어깨가 뿜뿜 하게 되고. 그런데 큰 아이가 얘기하길 여기 아이들은 빵에 잼만 발라오거나 바나나 한 개만 도시락으로 싸 오기도 한다고 자기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뼛속까지 한국 엄마인지라 밥대신 빵 먹는 것도 맘이 안 좋은데 가볍게 먹는 것까지는 아닌 듯하여 하던 대로 싸주고는 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저 얘길 듣고나서부터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도시락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이면 다음 주 도시락 준비를 위해 장도 꼭 봐야 한다. 나는 미리 어느 정도의 식단을 생각해 놓고 장을 보는 편이다. 처음엔 로컬 마트에서 가볍게 장을 봤었는데 지금은 costco에 가서 대량으로 간식을 사놓고 두고두고 싸주는 편이고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도시락을 싸기도 한다. 갈수록 요령도 늘고 있는 중.
매일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느냐 지칠 때쯤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번 Lunch Box를 주문할 수 있다고 했고 매주 화요일은 피자, 목요일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주문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매주 화요일에 피자만 주문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도시락을 안 싸도 된다니 이것만으로도 해방된 기분. 물론 남편의 화요일 도시락은 덕분에 단출해졌지만..
캐나다에는 워낙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이 살고 있어 메뉴의 문제도 있을 테고 알레르기가 많아 단체 급식이 생기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듯하다. 그래서 당분간은 꼼짝없이 도시락을 싸야 한다. 한 가지 희소식은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용돈으로 학교 밖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사 먹기도 한다니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그렇게 하라고 해볼까 싶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익숙해지니 이것도 나름 기쁨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늘었으니..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엄마의 수고로움에 감사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매일 열심히 도시락을 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