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한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유로움, 열정, 힘
어제 쇼팽 클래식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문화생활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클래식 공연은 어릴 때 엄마 따라서 몇 번 갔었다는 사실 말고는 크게 기억에 남는 게 없어서 지금까지 딱히 보러 가지 않았었는데 우연히 친구가 표가 생겼다길래 함께 다녀왔다. 경험상 한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갔었는데 앞으로 클래식 공연을 찾아다닐 것 같을 정도로 너무나도 황홀한 경험을 하고 왔다.
공연 홀의 웅장함과 멋진 옷을 입고 각자의 악기를 들고 앉아있는 연주자들의 위엄에 연주 시작도 전에 압도되었고 지휘자의 등장에 모두가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순간은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음악이 시작되고 모두가 각자의 연주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지휘자를 바라보며 소통하고 그에 맞춰 음악을 조율하는 과정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는 말 그대로 상호작용의 예술이었다. 크게 들리는 악기의 소리뿐만 아니라 저 뒤에서 계속해서 작고 낮은 소리를 내고 있는 악기의 소리까지 모두 들으려 귀를 계속해서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 모든 소리들을 화합해서 최상의 연주를 이끌어내는 지휘자의 모습도 계속해서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뒷모습만 보여서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가끔씩 보이는 그의 표정에서 그는 단순히 손으로만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표정으로도 연주자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악기들의 아름다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문득 연주자들의 표정이 보였다. 각자의 연주에 완전히 몰입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들의 표정과 몸짓. 음악에 맞춰 표정을 찡그리기도 하고 손을 크게 움직이기도 하고 발로 리듬을 타기도 하면서 순간에 완전히 몰두하여 손과 입으로만이 아닌 온몸으로 음악을 느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규정되지 않은 형태로 마음껏 펼쳐내는 표현.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유, 열정, 힘, 즐거움. 순식간에 그들에게서 나오는 진짜의 에너지들로 공연장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진짜인 사람들을 숨죽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어쩌면 이래서 우리 삶에는 예술이 필요한 게 아닐까. 예술을 하고, 예술을, 예술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를 느끼니까.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각자 모두가 진짜가 되는 시간들이 꼭 필요하니까 말이다.
긴 시간 공연을 보며 이들은 어떻게 연주를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분명 그들이 좋아서 시작했을 음악, 여기까지 오게 되기까지의 수도 없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들, 성취와 절망,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마음껏 펼쳐내는 열정, 끊이지 않는 박수갈채. 인생을 살면서 아주 깊이 몰입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정말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몰입하고 흔적을 남기는 과정은 정말 의미가 있다.
클래식 공연을 보고 온 것뿐인데 나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정말 몰입했던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몰입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앞으로 나는 또 어떤 것들에 진정으로 몰입하며 살아갈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늘 진짜가 되는 시간은 감동적이라는 것. 나를 잊고 너를 잊고 오로지 순간만 존재하는 시간들 속에서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깊이 황홀하고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