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동안 독서실을 가지 않았다

by 이유진

사흘 동안 독서실을 가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나는 대부분 누워 있다. 가족들은 내가 무너질 때마다 방에 누워 있는 모습을 오래 봐왔던지라 내가 이틀 이상 밖에 나가지 않고 누워만 있으면 집 안의 공기는 즉각적으로 변한다. 말수가 줄어들고,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 듯 공기가 무거워진다. 가족들이 나를 반가워하는 건 내가 현관문을 열고 독서실로 향할 때뿐이다.

사흘째 되던 날, 몸이 움직이지 않아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나 때문에 같이 우울해지는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머릿속에선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독서실 가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행여나 시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다면 반드시 이 순간들을 후회하겠지. 하지만 등이 침대에 달라붙은 것 같아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독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출석률이 엉망이라 이번 등록 기간이 끝나면 재등록이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였다. 웬만하면 융통성 있게 봐주던 관리형 독서실이었는데, 그곳에서조차 나를 거절한 것이다.

근데 생각만큼 좌절감이 깊지 않고 오래가지 않았다. 가만히 따져보니 실제로 일어난 일은 3가지 뿐이었다. 나는 사흘간 독서실에 가지 않았다. 가족들의 방문이 닫혔다. 독서실에서 재등록 거부 예고 문자가 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쪼그리든 심장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우울해진다는 것도, 나중에 이 순간을 후회할 것이란 걱정도, 독서실에서 ‘나’를 거절했다는 생각도 사실은 그 사건들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건 전부 내가 머릿속에서 이어 붙인 서사였다.

“유진 씨, 나오세요.”

나흘째 되는 날, 독서실에서 다시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경고가 아니라 단순히 출석을 독려하는 일상적인 메시지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갈 때 거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나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시간을 견디는 가족들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만든 소설을 덮고 다시 독서실에 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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