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서비스 리뷰 [동영상 플랫폼]
[동영상 플랫폼편]
국내 OTT 플랫폼인 티빙(Tving), 옥수수(oksusu), 푹(pooq), 왓챠 플레이(Watcha play)와 국외 플랫폼인 넷플릭스(Netflix)를 차례대로 다룰 예정이다. 직접 사용해본 애플리케이션을 기준으로 플랫폼을 선정했으며, 넷플릭스 이후 추가적으로 몇 가지 플랫폼을 더 다뤄볼 수도 있다. (트위치라던가...)
옥수수는 생각보다 할 이야기가 많아서 두 편으로 나눠서 진행한다. 1편에서는 옥수수와 관련된 이슈나 개인적인 사색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면, 2편에서는 옥수수 서비스 사용 후 느꼈던 점을 공유하는 리뷰에 충실하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 브로드밴드와 관련 無)
2018년 7월, 25년 만에 최고로 더웠다는 그 여름.
서울역 그린빌딩(말 그대로 초록색 건물이었던)의 SK 브로드밴드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출근하기 싫어서 매일 징징대면서도 풀냉방 사무실 덕에 긴 여름을 버텨낼 수 있던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서비스기획 직무로 배정받아 한 달은 모바일팀에서, 한 달은 IPTV팀에서 근무했고, 모바일팀에서는 동영상 플랫폼인 옥수수(oksusu) 관련 업무를 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다. UX나 서비스 기획과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음에도(물론 면접 때는 이 업무에 적합할만한 다른 역량을 어필했다) 해보고 싶다는 말 하나로 직무가 결정됐다. 또, 인턴이라도 잡일(?)이나 쉬운 일만을 주지 않겠다는 팀장님 덕분에 나름대로 현업 선배들의 업무와 유사한 일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옥수수 앱 내의 이벤트 메뉴를 리뉴얼하기 위해 admin(관리자)단에서 필요한 기능들을 정의했고, GUI 시안 제작을 했었다. 짧은 기간 동안 매일 선배들을 괴롭히며 어찌어찌 완성한 결과물은 뿌듯함보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서비스 기획은 단순히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 기획'이 아니었고, 서비스 운영자, 사용자, 개발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위한 '온갖 기획'이 이뤄져야 하는 일이었다. 비즈니스가 깊게 얽혀있었고, 끊임없이 구현과 기획의 가능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일이었다.
서비스, 기획, UI/UX... '멋들어진 말로 수식돼서', 또는 '있어 보여서' 등이 내가 서비스 기획자를 꿈꾸게 했던 이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태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인턴을 하는 동안 차츰 옅어졌고, 그 대신 많은 부분에서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 공부의 일환으로 이 브런치도 연재하는 것이고...
인턴을 하면서 옥수수의 서비스와 회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들은 글을 써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근무했던 모바일 서비스 기획팀은 나름대로 큰 애정을 느꼈던 부서이기 때문에 서비스를 리뷰하는데 약간의 사심은 들어갈 수 있다는 점...
최근, SK 텔레콤은 브로드밴드로부터 옥수수의 '분사'를 결정했다. 이는 국내 OTT 시장에서 경쟁력의 우위를 확고히 하겠다는 텔레콤의 의지를 보여준다. 분사에서 비롯되는 콘텐츠 사업자로부터의 투자와, 이를 기반으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강화는 옥수수가 11번가의 성공 공식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본격적으로 콘텐츠 파워의 강화와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예고하며 '한국형 넷플릭스'를 위한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분사 이슈는 내가 인턴을 끝낼 무렵 즈음에 터졌는데 황당했던 점은 사측에서 내부에 먼저 언질을 준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임원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원들은 보도자료를 보고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의 각종 불만과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SK브로드밴드의 이름을 떼고 '*옥수수'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회사가 된다는 점은 직원들 입장에선 많은 고민을 하게 한 문제였다.
(*tmi : '옥수수'라는 이름은 '애플'처럼 식품에서 따왔다는 썰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옥수수 분사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옥수수와 관련된 부서(모바일팀)는 브로드밴드의 여타 부서들(특히 IPTV 관련 부서)과 몇 가지 부분에서 굉장히 분리된 느낌을 주었다.
01. 모바일은 TV보다 서비스 구현이나 개선이 빠르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팀도 좀 더 자율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다. 반면 TV는 구현과 반영이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팀 내의 분위기도 절차와 규율을 좀 더 따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부서는 위치한 층이 다르기도 했는데 (18년 기준) 각 층의 조명 밝기나 공기 자체가 다른 것 같다고 인턴 동기들끼리 이야기하곤 했었다.)
02. 오리지널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 옥수수는 '콘텐츠 제작사이자 플랫폼사'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TV가 일반적으로 CP사와 계약을 맺어 수급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면, 모바일은 이미 제작과 기획의 영역을 좀 더 넓힌 것이다. 그만큼 콘텐츠와 플랫폼 자체에 대한 마케팅의 필요성도 더욱 대두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확장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더 폭넓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내부에서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분사 결정은 '성장'과 더불어 '견제'를 위하는 바도 있다. LG U+와 넷플릭스간의 제휴는 국내 OTT 사업자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고, 때문에 분리되어 있는 서비스들간의 의기투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다. 옥수수는 카더라만 무성했던 푹(Pooq)과의 제휴를 진행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고, 박정호 사장은 텔레콤과 브로드밴드의 사장을 겸직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행보를 예고하기도 했다.
물론, 분사와 제휴가 시장에서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탑이 없는 국내 시장에서 통신사나 방송사의 부수적인 동영상 플랫폼이 아니라 'OTT 플랫폼' 그 자체로 옥수수를 발전시켜 선보이겠다는 결단은 의미가 크다. 통신사로서의 메리트도 살리면서, 독자적인 서비스로서 콘텐츠 투자와 마케팅에 영리하게 힘쓴다면 넷플릭스의 경쟁사로서, 또는 국내 탑 서비스로서 한 번 옥수수를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옥수수는 국내 플랫폼 중 오리지널 콘텐츠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에는 '나는 길에서 연예인을 주웠다(나길연)'에 100% 지분 투자를 하며 선보였고, 그 이전에는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 '엑소의 사다리 타기', '레벨업 프로젝트' 등 로맨스부터 아이돌 장르까지 꽤 다양한 콘텐츠를 방영했다. 특히 '엑소의 사다리 타기'는 (어마어마한) 팬심에 힘입어 오리지널 콘텐츠 최초로 2,000만 조회수를 달성하기도 했다. 아직 그렇다 할 오리지널 콘텐츠가 부재한 다른 OTT 플랫폼들에 비하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콘텐츠 시장에 돌격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직 멀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넷플릭스와 같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보여주기식 투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35억을 쏟아부었다고 사전 홍보에 열 올렸던 '나길연'은 보도자료와 같이 정말 성황리에 종영했을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봤을 때 과연 몇 명이나 안다고 말할까? 몇 년 전 화제를 끌었던 '72초 TV'의 콘텐츠들이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상응하는 인지도와 파급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쯤 되면 투자는 제작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실감할 것이다.
공들여 만든 제품은 공을 들인 '운영과 후속 마케팅, 관리'와 함께해야 한다. '나길연'은 내가 인턴을 하는 동안 제작되었고, 인턴 기간이 끝난 후에 방영을 했다. 그런데 회사 밖, 일반인으로서는 나길연과 관련된 홍보나 소식을 전혀 듣고 보지 못했다. 보도자료에서도 '옥수수의 100% 지분 투자'라는 헤드라인만이 보이고, 콘텐츠 자체의 흥미도나 퀄리티, 이슈 등은 소리 소문이 없었다. 이쯤 되면 후속 홍보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 팬덤 형성에 실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수상이나 투자에 대한 자랑, 단순 블로그 서포터즈를 넘어서는 전략이 이제는 절실하다.
덧붙여서, 앞으로는 옥수수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레드벨벳이나 엑소로 초반 플랫폼 인지도를 다지고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만들어놓은 것은 꽤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돌 영상 플랫폼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장르 다변화나 콘텐츠 퀄리티 고도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넷플릭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CJ ENM의 '시그널'이나 최근 핫한 JTBC의 '스카이 캐슬' 정도의 기획을 감행하겠다는 야망이 필요하다. '하우스 오브 카드' 애청자로서, 좋은 콘텐츠 하나가 플랫폼 자체에 대한 큰 신뢰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체감해왔다. 이쯤 되니 양으로 승부하지 말고 대박 작품 하나를 제대로 만들고, 알려서 '믿고 보는 옥수수'의 기반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