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탕가 요가를 하다 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부딪힌다. 관문, 혹은 게이트 키퍼라고 불리는 이러한 자세를 수련한다는 것은 한 발로 균형을 잡은 채 상체를 구부린다든가 목 뒤로 다리를 넘기고, 전완만으로 균형을 잡아 거꾸로 선 채 공중에서 가부좌를 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당신의 관절은 그 자세에 진입하기에 충분히 열리지 않았고, 근육과 힘줄이 타이트하게 뭉쳐있어 이완이 되지 않거나 혹은 너무 늘어져있어 수축이 되지 않는다. 유연성은 말할 것도 없고 힘도 부족하다. 겨우 자세에 진입한다고 해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땀을 뻘뻘 흘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대고 요가는 당신이 이 자세에서 마치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깊고 편안히 숨 쉬라고 한다. 숨을 쉬라니, 숨을 쉬라니! 헉헉대며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무렵 옆에 다가온 선생님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카운트를 세면 머릿속에서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걸릴 만한 생각들이 떠다닌다.
나에게도 이런 자세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캐칭”이었다. 양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바르게 선다. 양 발은 완전한 평행을 이룬다. 이 상태에서 양 팔을 머리 위로 쭉 뽑아내듯 들어 올린다. 마시는 숨에 갈비뼈 사이를 완전히 열어내고, 내쉬는 숨에 그대로 허리를 뒤로 꺾는다. 양팔은 계속 누가 당기듯 뻗어낸다. 마침내 양 손이 바닥에 닿는다. 이것이 차크라 타다사나, 혹은 “드롭백”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바닥에 닿은 손바닥을 발 근처로 가져온다. 뒤꿈치에 손이 닿았다면 손은 다리를 타고 올라가 발목을 잡아야 하는 티리앙 무코타사나, 바로 캐칭이다.
나는 아주 유연한 골반과 허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덕분에 드롭백은 쉽게 했지만, 캐칭을 하기 위해 발목으로 손을 옮기는 순간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파왔다. 선생님이 손을 정강이로 옮기기라도 하면 두려움에 벌벌 떨며 상체에 힘을 주었고, 너무 힘준 나머지 어깨가 뽑힐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언제나 반쯤 울며 올라올 정도로 힘들어하였고, 대부분은 올라오면서 선생님께 너무 무섭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 자세에서 선생님이 “수움!”하고 외치면, 물론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거니와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이 너무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깊은 후굴을 하고 나면 카운터포즈인 깊은 전굴 자세로 이어진다. 이때 선생님이 허리를 눌러준다. 그날도 캐칭을 겨우겨우 해내고, 흐느끼며 올라와 나는 왜 안될까 하는 자괴감과 끝났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등을 눌러주던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유진 씨의 허리 상태로 보면 손을 타고 올라가 무릎 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어요. 제가 아니라 어떤 선생님이라도 손이 무릎 위까지 오도록 지도할 거예요. 유진 씨가 넘겨야 하는 건 신체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인 거예요.” 눈물이 났다. 나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너무 믿어주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요가에서 그토록 당신에게 숨을 쉬라고 하는 이유가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몸을 프레첼처럼 말아놓든, 거꾸로 서있든, 그 자세가 얼마나 어렵고 힘들어도 숨을 쉴 수 있어야 할 것. 형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한발 떨어져 숨으로 환원할 것. 스스로의 한계에 맞닥뜨렸다고 생각할 때에도 숨으로 돌아가면 가슴 한 구석에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이는 살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자기 스스로에게 걸어놓은 한계는 이를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확인되지 않은 루머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면, 이를 밀쳐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삶은 그것이 무엇이든 의식의 진화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경험만을 준다. 그렇다면 이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그 경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것이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들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이를 그저 경험으로 남겨두느냐, 혹은 이를 경험치로 환산해서 레벨업을 하느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나는 결국 스스로 발목을 잡고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요가원에 떡을 돌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