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겠다.
오늘(5/2)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 다녀왔다. 이유는 하나였다. 프로그램 내에 그리그(Grieg)의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in A minor, Op 16)이 있었기 때문이다.
클래식 작곡가 중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 물으면 단연코 슈만을 꼽겠지만, 어떤 곡을 제일 좋아하냐 물으면 주저 없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꼽는다.
이 곡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생생하다. 10년전, 그러니까 2015년 어느 날. 대학로 벙커원에서 4주동안 열렸던 올댓클래식이 끝나고 밤 10시가 넘는 시간, 나는 슈만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으며 창경궁 돌담길을 걷고 있었다. 슈만의 곡이 끝나자 같은 앨범에 들어있던 다음 곡이 흘러나왔는데 그게 바로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그렇게 이 곡은 내게 예기치 않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이 곡을 듣는 30분 동안, 난 완전히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동묘까지 한시간 넘게 걸었다.
그 후 이 곡은 10년동안 내 삶 언제나 함께했다. 산책할 때, 아무것도 안하고 쉴 때, 회사에서 일할 때에도...언제나 이 곡을 들었다. 8년 전, 베르겐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도, 피요르드에 들어가면서도 나는 이 곡을 들었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은 나를 항상 평온한 상태로 되돌려 놓으면서도 무기력하지 않게 잡아주었고, 가슴 뛰게 했지만, 들뜨지는 않게 다독여주는 나만의 만트라였다.
이 곡은 그리그의 인생이 담겨있다. 그냥 수사가 아니라 그는 25살 때였던 1868년에 이 곡을 처음 발표하고 수차례 개정하여 사망하기 몇 주 전인 1907년 완성했다고 한다. 무려 40년에 걸쳐 완성한 이 곡을, 나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1975년에 88세의 나이로 연주한 영상으로 듣는다. 그리그가 인생에 걸쳐 완성한 이 곡의 서사는, 90세를 앞둔 만년의 피아니스트의 단단하고 깊이있는 연주를 통해 가장 잘 전달된다.
그리그가 인생을 바쳐 이 곡을 완성했기 때문인건지, 루빈스타인의 연주때문인건지,
나는 이 곡을 들으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인생의 챕터, 그리고 그 챕터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음 하나하나에 염사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1악장에서 그리그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젊음과 열망을 무기삼아 세상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그 어느 시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동시에 세상에서 부딪혀가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또 한계를 깨는 과정들을 통해 맞닥뜨리는 성취와 절망의 감정들을 음 하나하나에 담아낸다.
2악장의 분위기는 1악장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 챕터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조심스럽고 평온하게 자신의내면을 관조한다. 그리고 하나둘씩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찾아가며, 조금씩 나에게 진짜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2악장에서의 깨달음은 결코 내면으로의 침잠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깨달음은 다시 삶에 빛을 비추는 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 빛은 1악장과 달리 자기 안으로만 향해 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3악장은 세상에 대한 경탄, 자연에 대한 경외, 삶에 대한 감사로 가득하다. 그리고 절정을 향해 상향음과 하향음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이런게 인생이다’ 라는 것을 온 음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장엄하게 끝난다.
어떤 음악은 좋았다가 싫어지기도 하고 별로 즐겨듣지 않았던 음악을 어느새 좋아하게 된다. 20대에는 그렇게 즐겨듣던 힙합음악을 30대 들어서는 잘 안듣게 되고, 젊었을 때는 듣지도 않던 포크송이나 클래식이 나이가 들면 좋아지는 것은, 일종의 신체반응이라 생각한다.
이 곡을 10년동안 수백번 들으며 단 한 순간도 지겹지 않았던 이유는, 이 곡의 음 하나하나가 각각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들을 비춰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을 들으며 마음 속 한켠에서 "나는 지금 어느 챕터쯤에 와 있나?"를 항상 떠올려왔다. 상향음과 하향음을 반복하고 다양한 악기들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며 협주곡이 완성되는 것 처럼, 살아간다는 건 결국 협주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어떤 시절은 장조일수도 있고 단조일수도 있고, 어떤 순간은 allegro일수도, adagio일수도 있는 것. 예기치 않게 팀파니같은 사람이 느닷없이 등장하여 내 인생을 뒤흔들 수도 있고, 저 멀리서 플룻같은 사람이 구원처럼 다가올 수도 있는 것. 예측할 수 없는 음들이 교차하며 우리는 인생이라는 단 하나의 협주곡을 써내려가는 건 아닐까?
아직 더 살아봐야하는 인생이지만 어쨌든 오늘 나에겐새로운 꿈이 생겼다. 언젠가 죽기 30분 전, 이 곡을 들으며 눈을 감고 싶다는 것.
- 2025년 5월 2일,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ps.
1. 다음에 어떤 악기에서 어떤 음이 나올지 아는 상태에서 협주곡을 라이브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재미였다.
2. 오늘 피아노를 연주했던 엘리자베스 레온스카야는 루빈스타인과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사뿐사뿐, 산뜻하달까. 새로운 곡을 경험하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