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선배님, 잘지내시죠?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명절이나 새해가 되면 예전에 같이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선배, 상사들에게 안부 인사를 묻곤 한다.
수년 전에 같이 일했던 후배가 그렇게 안부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조만간 한번 뵈어요. 어느쪽에 계세요? " 라고 구체적인 일정을 잡으려하면,
"그래 보자! 언제볼까?" 라고 시원하게 답변하는 선배는 드물다.
이미 40을 훌쩍 넘어버린 선배들의 선택지는 대개 두가지로 좁혀진다. 기존 회사에서 임원을 달거나, 자영업이던 사업이던 자기일을 하는 것.
자의든, 타이든 자기일을 하는 케이스가 많지만, 그 일이 잘풀리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그들은 일이 잘풀리는 그날을 기대하며 후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자리 잡으면 보자. 다시 연락하마"
까마득한 후배에게 자랑스럽게 자기일을 얘기할 수 있는 그 날.
그래서 "야 너 우리회사로 들어와라. 연봉 맞춰줄게" 라고 쿨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 날.
그 날을 낙관하며 그들은 만남을 불확실한 미래로 미룬다.
하지만, 정작 후배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
어릴 땐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순간에 그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후배에게는 지금 그 선배가 일이 잘풀리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후배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선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이 마음을 지금 선배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 없는 수용이 낯선 우리의 선배들은
자기 자신이 세운 '선배의 조건'을 갖추기 전까지는 '후배의 마음'을 수용하는 것을 보류한다.
마침내 ‘선배의 조건’을 갖춘 어느 날이 온다 해도,
그때에도 ‘후배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 미래에는 후배는 이미 더 잘 풀렸을 수도 있고, 더 고마운 누군가를 만났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이제는 누구에게도 감사를 품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관계란 나의 준비가 끝났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이 겹칠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만나기에 적당한 때라는 건 없다.
오직 "지금" 만이 유일하지만 충분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