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비슷한 곤경을 겪고 있는 모든 귀하들에게.
"내가 좋은 동료일까?" "내가 좋은 리더일까?"
오랜만에 만난 귀하는 현재 당신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내게 털어놓았습니다.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귀하임을 알기에, 이런 말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귀하는 자기 존재 의미에 대한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사적으로나, 항상 자신에 대한 어떠한 '상'을 규정해놓고 있는 귀하에게, 최근 일어난 몇몇 크고 작은 '현상'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이 실제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음을 방증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나는 귀하가 이 마음의 곤경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귀하 앞에 펼쳐진 유쾌하지 않은 현상들을, 전처럼 자신의 마음을 아늑하게 만들어줄 이야기로 꾸며내지 않고, 이 현상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귀하였다면, 틀림없이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그것을 사실이라 믿었을테지만, 이 현상에 의문을 품고, 그 원인을 자기 내부로 돌리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나는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외부에서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들의 원인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타인을 '설득' 하고 상황을 '통제' 하면 자기 감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그 때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눈 앞에 펼쳐져있는 현실이,
바로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방식으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지금의 현실을 바꾸고 싶은데, 그 현실을 바꾸는 방법이 결과적으로 이 현실을 만들어낸 원인이라고 한다면, 결국 지금과 같은 현실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원인을 내부로 돌리는 귀하의 1차적인 시도는 성공했으니, 그 '해결방법'을 내부에서 찾지 못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다만 귀하는 그 방법을 잘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수영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바다에 빠진 격이랄까요.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노파심에 말해두자면 귀하를 가르친다거나, 뭐 소위 말해 계몽시키거나, 그럴 의도는 결코 없습니다. 그럴 깜냥도 못됩니다. 다만 나 또한 그런 감정의 바다에 빠진 적이 있었고, 그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 바다에서 헤엄쳐서 육지로 올라오는 방법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한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살만한 세상이 될거라 믿을 뿐이랍니다.
나는 귀하를 옆에서 꽤 오랜시간 봐왔습니다. 내가 본 귀하는, 사실 그 누구보다 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통해 내적 연결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몇몇 경험들이, 이러한 귀하의 본성에 저항하는 관념체계를 귀하에게 뿌리내리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혹시 머릿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나요? ‘세상은 냉정한거야' '주고 받는게 없으면 인간관계도 별 쓸모가 없어' '저런 말랑한 마음들이 너의 성과나 연봉을 올려주진 않잖아' '나는 이래야해' '누구누구는 이래야해' ‘이건 이렇게 되어야 해’ ’저건 저렇게 되어야 해‘
에고의 속삭임을 따른 결과, 귀하는 지금까지 꽤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귀하는 나이에 비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또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나는 귀하에게서 때때로 왠지 모를 정서적 고립과 공허함의 그림자를 발견해왔습니다.
어느새부턴가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이 불편한 감정들을 만드는 현실들이 자꾸 눈 앞에 펼쳐지지 않았나요?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귀하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 귀하의 눈앞에 펼쳐진 이 순간은, 귀하의 머릿속의 관념이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냥 놓여져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귀하가 겪고 있는 그 불편한 감정의 본질은 귀하의 진짜 본성과 귀하가 만들어낸 에고의 충돌 때문이라는 것을요.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진 귀하에게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저 말장난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직접 본 것과 직접 경험한 세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귀하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 오해는 말길 바랍니다. 그러한 귀하의 가치관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현재 귀하가 누리고 있는 현실은, 귀하의 그러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존중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5%에 불과하다라는 것을요.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전체의 '표면적 국면'에 불과하며, 실재는 ‘보이지 않는 장’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귀하가 좋아하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것을요.
결국 내가 경험하고 판단한 세계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세계를 '내 마음에 들게' 바꾸기 위해 내가 하는 행위는 결국 나의 인식 한계 안에서 되풀이되는 '같은 현실'을 만들 뿐입니다. 여태까지 귀하가 취했던 방식이 아닌, 다른 접근 방식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현실을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잠시 뒤로 하고, 일단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 사로잡힌 관념과 감정에서 자유로운 '나의 상태'를 먼저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다른 사람, 외부 세계와의 문제를 풀기 이전에 일단 나 자신과의 문제를 풀고, 나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부터가 출발점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싱어의 <삶이 당신보다 더 잘안다> 이 책은 출발선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귀하를 위한 다정한 출발신호가 되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며칠 전, 사실 나는 주제넘게도 이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들이 나의 의도와 달리 전달되어 또다른 관념의 씨앗을 남길까봐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이 책을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글은 책 맨 앞장에 헌사처럼 적을 요량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쓰다보니 너무 멀리 와버려 아무래도 본래의 목적은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고는 가슴에 뭐가 얹힌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 서간문 비스무리한걸 써내려가며 비워보았습니다. 혼자 일기장에 적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러면 왠지 흐지부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사후에 유명해져서 안네의 일기처럼 발견될지도요. 대충 끄적이다 만 글이 파묘되면 얼마나 부끄러울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 편지가 귀하에게 전해질 일은 없을 것입니다.
2025년 5월 17일 밤
전할 목적은 없지만 감출 이유도 없는
이유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