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이 남긴 감정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본 그 날, 그에 대한 감정이 탄생했다.

by 이유진

오늘 오전에 유튜브를 켜보니 노무현 대통령 16주기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날짜를 보고 알았다. 아 오늘이 5월 23일이었구나.

미리 말해두자면 오늘 이 이야기는 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남기는 감정에 대한 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랄까.



16년 전, 그러니까 2009년 5월 29일 오전, 학교와 일을 병행하고 있었던 나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가고 있었다. 스마트폰 시절이 아니었던 그 때, 난 2G폰으로 DMB를 켰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생중계되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는 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크게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던 2003년에 나는 현실정치보다는 여고의 교내정치가, 경제 성장률보다는 모의고사의 성적이 중요한 고1이었다. TV나 신문,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집권후반기였던 2006년 나는 대학에 들어갔고 1,2학년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놀았다. 너무 놀아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첫번째 참정권조차도 날려버렸다. 그렇게 2007년 12월, 이명박이 당선되였고 이듬해 mb정부가 들어섰다.

2008년 나는 홍대 힙합레이블에서 일하고 있었던 휴학생이었고, mb와 조지부시는 공공연한 랩퍼들의 디스 대상이었다. 진지함 반, 조롱 반이 섞여있었던 그 랩을 나도 같이 즐겼다. 그렇게 mb는 내게 대통령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의 소재로 소비하던 대상이었다.


그러다 2009년 5월 23일,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아침에 뉴스를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던 기억 외에, 별다른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은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아무래도 직전 대통령이,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많은 충격을 받은듯 했다. 그것도 검찰 수사를 받다가 그렇게 되었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밈이 떠돌던 나라가 갑자기 온 슬픔에 빠진듯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상황이 조금 의아했다.


그렇게 며칠 온 나라가 들썩이다 6일 후인 2009년 5월 29일 오전, 국민장이 열렸다. 그렇게 스물 둘의 내가 지하철 안에서 그 국민장 생중계를 보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 감정 없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내 안에서 뭔가 일렁이는게 일어나기 시작했다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정은 한명숙 전 총리의 절규와 가까운 추도사에서 뻥 하고 터졌다.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의 그 절규와, 그 흐느낌과, 그 회한과 분노가 낮은 화질의 DMB를 뚫고 내게 전해져 지하철 안에서 그만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노무현의 죽음을 본 그날, 아니 노무현의 죽음이 남긴 그 감정들 본 순간, 내 안에서 노무현은 태어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무현이라는 존재에 대한 내 감정이 태어났다.


이런 감정을 가지는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꽃이 지나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다'며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생각들, 그의 소박한 모습들, 그가 꿈꿨던 세상이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사후에 인간으로서, 대통령으로서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그가 실제로 해온 정책들이나 실적 또한 생전과는 정반대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물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그런 거창한 꿈을 꿨고, 권력을 잡았으나 결국 현실에서 실패했고, 스스로 부엉이바위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인간 노무현'에 대한 조롱 또한 한편에선 계속 이루어졌다.

대통령 이전에 소박한 인간에 대한 '그리움', 제 때 알아봐주지 못하고 보냈다는 '미안함', 생전에는 그를 그렇게 외롭게 보냈다는 '부채감', 일부 사후능멸하는 행태들로부터 그를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라는 집단적 감정을 가지고 사람들은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사랑의 상실 후에 비로소 그 존재를 바로 보게 되는 것 처럼, 이루지 못한 관계가 더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 처럼, 그의 미완된 꿈과 죽음으로 인한 상실로 만들어진 감정들은 남겨진 이들에게 숙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숙제와 같은 감정을 투사할 대상을 현실 속에서 찾기 시작했고, 그 숙제를 자신의 '운명'이라 말했던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었다.


하지만 노무현보다 더 오랜시간동안,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부채감’과 '애틋함'을 동시에 가지게 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박근혜였다. 이 나라를 이렇게 잘살게 해준 대통령의 비극적인 딸. 박정희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게 남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잘 살게 해주었다는 고마움도 있겠지만, 나는 박정희가 남긴 감정의 본질은 '효능감'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력한 만큼 국가가 성장하는게 가시적으로 보였던, 인생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함께 만들어주었던 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난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당장 우리 부모님마저 그랬다.

그런 대통령의 비극적이고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당시 전국민들은 그 상실감을 박근혜에게 투사했다. 수십년 후 정치인이 된 그는 자의든 타이든 '아버지의 영광' 을 다시 재현할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영광을 재현할 박근혜' vs '친구의 못다한 꿈을 실현시킬 문재인'

박근혜에 대한 감정이 훨씬 더 복합적이고 오래되었기 때문에 18대 대선은 박근혜가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근혜에게 아버지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것은, 지극히 사사로운 것이었다. 아버지와 살았던 그 시절에 살았던 자기 집, 즉 청와대로 돌아가는 것 그 자체만이 그의 유일한 욕망이었으므로 그에게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기 만무하다. 그의 사적욕망이 공적욕망으로 바뀌기에, 그의 주변에는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인간적으로는 불행한 일이다.

어쨌든 박근혜 시절에도 노무현은 끊임없이 소환되었다. 전국민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던 세월호 당시 노무현과 아이들이 만나는 그림이며, 그가 했었던 어록이며,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그렇게 오로지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인간 박근혜는 대통령 역할극을 하다가 결국 다시 청와대에서 끌려나오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승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승리감을 오랜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던 노무현과 함께 나누고 싶어했고,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은 문재인 이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동기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동기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진다. 문재인은 노무현과 달리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다는 공적 욕망은 없었던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단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국민들의 집단적인 부채감이, 친구 노무현에 대한 개인적인 부채감과도 일치했을 뿐이었다. 그런 부채감으로 인해 그 자리에 끌려나온 사람의 유일한 목표는 '아름다운 퇴임'이었다.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난 후의 노무현의 첫 추도식에서 ‘5년 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오겠다’는 말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성공한 대통령' 이라는게 뭔가? 그리고 그게 국민과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노무현의 못다한 꿈에 대한 ‘부채감' 과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평화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승리감' 이라는 감정을 발판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결과적으로 노무현의 검찰개혁이라는 꿈과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문재인이 남긴 것은 무엇이었는지는 계속 재해석 되겠지만, 어찌됐던 '노무현에 대한 부채감'과 '대통령 탄핵에 대한 승리감' 이라는 감정을 발판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집권 내내 노무현의 수많은 꿈 중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지는 못했다. 그의 가장 큰 치적이 '코로나 방역' 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안전주의자인지를 알 수 있다. 평화로운 시기에 대통령을 했으면 괜찮았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그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의 꿈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무력감'을 안겨줬다. 특히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젊은 세대에게.


‘안싸우는' 착한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좌절감과 무력감이라는 감정은 ‘잘 싸우는’ 강한 대통령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그가 10년 전 검사이던 시절 국감에서 싸우고, 검찰총장 시절 자신의 상사인 추미애와 싸우고, 조국과 싸우는 모습에서 일종의 ‘통쾌함’을 느꼈던 것 같다. 이해가 안가진 않는다. 물론 싸우는 캐릭터로는 이재명도 못지 않았으나, 그는 그 당시 가족끼리 싸우는 측면만이 부각되었다. 자신의 신념에 따른 공적 싸움을 하는 것 처럼 보였던 윤석열 vs 일은 좀 하는지 몰라도 가족끼리의 사사로운 싸움을 하는 이재명. 가족끼리의 사사로운 싸움은 이 통쾌함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시끄럽기만 하다. 윤석열은 기존 보수 뿐만 아니라 젊은 유권자들로부터의 통쾌함도 이끌어내며 결국 '윤카' 가 되었다.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한 윤석열의 목표는 오로지 자신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고, 윤석열의 욕망은 승리에서 나오는 쾌감 뿐이었으므로 그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적욕망이 있기엔 만무했다. 그렇게 그는 약 2년 반동안 열심히 싸움터를 만들었고, 어쩔때는 승리하기도 어쩔때는 지기도 했다. ‘질 수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한 싸움터가 비상계엄이었을 것이다. 비록 비상계엄도 실패했고, 탄핵도 인용되었고, 구속도 되는 3연패를 당했지만 그는 구속취소라는 1승을 거뒀다. 구속취소되는 날, 어퍼컷 세레머니를 하며 한 지지자에게 "다 이기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마세요" 라는 말에서 그의 욕망은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대통령은 항상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남긴다. 그것은 그의 육신이 살아있던, 죽어있던 상관이 없다. 누구는 효능감을, 누구는 좌절감을, 누구는 부채감을, 누구는 무력감을, 누구는 통쾌함을, 누구는 분노를 남기기도 한다. 세상의 작용과 반작용이 있는 것처럼 항상 어떤 감정 끝엔 그와 반대되는 또다른 감정이 탄생했고, 그 감정들을 가장 잘 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윤석열은 처음에는 내게 분노를 남겼지만 그 분노는 이내 ‘절박함' 과 ‘의무감’ 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이렇듯 절대적으로 나쁜 일도, 또 절대적으로 좋은 일도 없는 것이다. 불일불이(不一不異)를 또 한 번 새겨본다.




- 2025년 5월 23일 비오는 밤, 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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