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반년과 10년 전 꿈 속 이야기

별거 안했지만 충분히 얻었다

by 이유진


회사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는 pros/cons 라는 걸 따져본다. 어떤 아이디어에 대한 장/단점을 따져보는 것인데, 보통 2,3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때 각각 pros/cons를 따져보며 cons(단점)보다 pros(장점)가 많은 쪽, 측정 가능한 쪽을 선택한다.


그런 관점에서 올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은 pros보다 cons가 더 많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통장에 꽂히는 육아휴직 수당은 월급의 절반도 안될 것이고, 작년에 거둔 성과에 대한 올해의 정당한 보상도 기대하기도 힘들 것이며, 다시 복귀했을 때 나의 포지션에 대한 불확실성도 엄밀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 나를 가장 붙잡았던 건 동료들에 대한 미련이었다. 지금 여기서 휴직을 한다는 것은, 몇 해동안 난파선에 함께 몸을 싣고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 비로소 고요와 햇빛이 스미기 시작한 바다 위에서, 동료들을 남겨둔 채 홀로 배에서 내려야 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들은 내가 배에서 내린 뒤에도 유유히 항해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나 스스로 움켜쥐고 있던 미련은 나를 쉽사리 내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 고민에 대해서 만약 pros/cons를 따져보면 답은 금방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탁한 정신으로 내리는 결정은, 악취 가득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 목욕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나는 오랜 시간 결정을 유보했다.

그러다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어느날 어느 회의 직전, 나는 ‘아, 육아휴직을 하는 게 맞다’ 는 느낌이 사악 가슴속에 번져오는 순간을 만났다. 폭풍우가 지나간 고요한 바다 위에 스미는 햇빛과도 같았다.




놀라운 것은 나의 변화를 바로 감지한 J였다. 그녀는 내 파트너이자 전우이자 친구다. 우리는 나이와 성별 빼곤 모든게 달랐다. 하지만 모든게 달랐던 우리에게 단 한가지 같은게 있다면, 그것은 서로가 각자의 마음에 진실되다는 것이었다. 서로가 다른 부분만 알았던 초기에 우리는 많이 부딪혔다. 그러나 몇년 간 함께 폭풍우를 맞으며 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어느 순간부터, 우린 진실된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공전하는 궤도 속에서 우연히 달과 태양이 맞물릴 때 두 개가 완전히 포개지는 개기일식처럼, 서로의 마음을 공전하다가 문득 포개져 공명하는 순간이 때때로 오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한마디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곤 했다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심한, 그러니까 내 마음에 저 느낌이 스미고 난 직후, 그녀는 내 공기가 다른 것을 대번에 감지하고 회의가 끝난 뒤 조용히 내게 물었다.


"…무슨 일 있지?"

그렇게 결심한지 1시간도 안되어 나는 그녀에게 모든걸 말했고, 우린 9층 한구석에서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직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 있는 깊이의 바다에 있을 때, 그래서 맨몸으로 파도를 타고 육지로 갈 수 있을 때. 그 때가 지금이라는 확신이었다. 인생에서 이런 확신이 오는 순간은 몇 번 없다. 돌이켜보면, 그럴 때에는 앞뒤 재지 않고 이 느낌을 따라가는게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옳은 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6개월, 특별히 거창하게 뭔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매일, 그저 매 순간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그 순간을 마음껏 누리고 살 뿐이었다. 매순간 땅을 딛고 살며 발바닥으로부터 느껴지는 땅의 질감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 딸의 머리를 빗길 때에는 머리를 빗기는 데에만 집중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때에는 대화에만 집중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침에 샤워를 할 때는 몸을 씻는데만 집중했고, 물기를 닦고 나서 바디크림을 바를 때는 바디크림을 바르는 데에만 집중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매일 운동을 할 때는 운동에만 집중했고, 책을 읽을 때는 책에만 집중했며, 음악회를 가거나 리스닝룸에 가서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에만 집중했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대화에만 집중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대화들이 내게 남긴 생각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매 순간 하는 모든 행위에, 그저 진심만을 담았고 그것으로 모든게 충분했다. 그래서 별거 하지 않아도 매순간 모든 걸 얻는 느낌이었다.


2주 뒤면 6개월간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난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나는 10년 전 어느 날 내 꿈 속에 나온 고양이를 자주 떠올렸다.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바로 그 친구말이다.





언젠간 이 꿈이 내게 다시 필요하다는 걸 알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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