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서점에 가면 왠지 모를 안락함을 느꼈다. 그 이유에 대해서 20대 초반에 생각해본 일이 있는데 결론은 이것이었다.
만권의 책이 있다면 그것은 만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만개의 세상 속에서 나는 내가 살아갈 세상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뒤로부터 나는 끌리는 책이 있으면 일단 사고 보는 습성이 생겼다. 구입한 책 중에 완독을 하는 책은 반도 안되는 것 같다. 구입하고 몇 페이지 읽다 덮어두거나, 사놓고 표지 조차도 열어보지 않은 책들이 책장에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 곁에 다른 가능성을 둔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든든했다. 만약 오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하루를 보내어 괴로워할지라도, 몇 발자국만 옮겨 책장 앞으로 가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음에 위안을 얻었다. 신기한 사실은, 어떤 끌림이 있어서 구입을 했지만 막상 책을 몇페이지 넘겨보니 그렇게 와닿지 않아 읽기를 그만두었거나 읽기는 했으나 특별한 기억은 없었던 책들 중, 수년 혹은 십수년이 지난 후 모종의 이유로 다시 찾게되는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책들 중 내 인생책이라 꼽을 수 있는 책들이 꽤 많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번주, 동료 몇명과 점심을 먹던 중, 동료 D가 다른 동료들에게 물었다.
’존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각자가 가진 ‘존중‘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했다. 동료 J는 존중이란 잘 들어주는 것이라 했으며, 나는 있는 그대로를 판단없이 수용하는 것이라 답했다. D는 자신이 요즘 존중에 대한 생각이 많다며,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 존중, 책임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다뤘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그 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나는 책장에서 그 책을 찾았다. <사랑의 기술>은 내가 20살 초반에 읽었던 책이었다. 거의 20년동안 쌓여져있던 먼지를 알콜스왑으로 닦고 책을 열어보니 빛바랜 종이 위에 꽤 열심히 읽은 흔적이 있었다. 밑줄 그은 본문 몇 장을 찍어 동료 D에게 보냈고, 그는 책을 빌려달라했다. 다음날 D의 책상 위에 그 책을 두었고, 조금 이따 그는 밑줄이 좋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같은 카톡방에 있던 J는 밑줄만 보면 되서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글을 읽는 것을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내가 가끔 보내주는 글귀들은 좋아했다. D와 나는 서로가 좋아하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눴고, 나는 그가 추천해준 책 몇 권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J는 자기도 이번주말에는 책을 읽겠다며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그녀는 내가 추천해준 책을 곧바로 주문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동안 가장 정신없는 수요일 오후에, 잠시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그 공간에 스스로를 두어보았다.
책, 음악, 영화 등 어떠한 예술 작품을 타자에게 추천하고, 타자로부터 추천받는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다. 그것은 나의 세상에 타자를 초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타자의 세상에 내가 초대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의 세상에 서로를 초대하고, 초대받은 곳으로부터 자신의 세상을 확장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나는 참 운이 좋다. 내 주변에는 그렇게 자신의 세상에 나를 초대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나와 타자는 서로의 세상을 넘나들며 각자의 세상을 확장해간다. 오롯이 홀로 선 각자들과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