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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향 Aug 27. 2023

아이를 키우며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다

첫 독립, 너와의 소중한 순간을 담고 싶다.

자식만 평생 바라보고 살았던 엄마.

7살에 만났던 엄마는 20살의 앳된 모습이었다.

대학생 나이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아이를 키워보니 엄마를 이해하게 되더라.

엄마랑 단둘이 외출을 해서

엄마!라고 불러도 믿지 않았던 사회적 시선.

이렇게 큰 딸이 있다고요. 이모 아니에요?

자존감이 낮았던 아이는 위축될 수밖에.

밖에 나가면 엄마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외도로 엄마 삶이 불행해

보였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싫고 미웠다.

엄마는 가방끈이 짧지만 조무사자격증을 취득해

평생을 병원에 몸담아 성실하게 일하셨다.

지금 와서 보니 엄마의 성실함과 책임감이

살며시 젖어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엄마의 아동학대 사건들을 뉴스를

통해 접할 때 마음이 아펐다.

그때 엄마에게 고맙다는 걸 느낀다.


아이를 키우며 내 안의 자라지 않은

꼬맹이가 불쑥불쑥 튕겨 나와 나 좀 바라봐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아이 생떼는 길게는 1시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비교하게 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기에

어떤 부모를 만나서 양육받느냐에 따라

아이의 행복의 질도 달라진다.

그래서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것.

굶주린 엄마사랑 사십 년을 외면한 채로

살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으니깐.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사랑을 몸소 체험한다.

어린 시절 받아야 할 시기 사랑, 정서적 교감이

없으면 아이는 자존감이 짓밟힐 수밖에.


몽돌해수욕장에서

친정엄마와 딸의 모습처럼 보였다.

파도치는 바다풍경과 함께 딸은 엄마의 모습을 예쁘게 찍어주고 있는 다정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럽다. 난 그런 적이 없었기에 슬퍼져 눈물이 흘렀다.

친정엄마랑 쇼핑하고 밥 먹으러 가려고요.

엄마와 딸 함께 하는 모습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모습에 눈물이 쏟아질 때가 많았다.

엄마 사랑이 뭔지.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우주 같은 존재이고,

위대한 존재이더라.

지금은 원망하진 않는다.

우리 모두는 미성숙한 사람이니깐.

지금은 엄마의 고단한 삶이 보인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아이를 키우면서 이제야 알 것 같다.



지하에서 햇살이 들어오는 3층 집에서 지내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대중교통, 마트, 백화점, 도서관이 주변에 있어

편리했다.


"엄마 나 친구 집에 데리고 오면 안 돼?"

문득 아이가 저녁을 먹고 나서 물었다.

"여기는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고 있어

어려울 것 같아."

"난 데리고 오고 싶은데"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이다.

지금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미안해졌다.

동네에서 만난 언니를 집 앞까지 데리고 와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아이를 혼자 키울 때 주거안정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있을 생각은 안 했다.

아이의 말이 신경 쓰였는지

아이 때문이라도 더 빨리 독립을 하자 라는 의지가

생겼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1천만 원이었다.

영업은 월급처럼 매달 일정하지 않기에

저축을 일정금액 넣지 못했다.

매달 월급에 고정지출 제외 하고 나머지는

통장에 넣었다.

매달 돈이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객 상담을 다녀오는 길에 급여명세서를 들고 하나은행을 찾아갔다.

저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단다.

가능하다니 들뜬 기분으로 은행을 나왔다.


아이가 혼자 있어야 해서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보안이었다.

몇 군데 집을 알아보는 중에

학교에서 도보 3분 거리의 2층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1층은 카페가 있었는데 주인이 이번에 인수하면서

리모델링을 한 듯 보였다.

화이트 간판에 햇살 비치는 테라스가 예뻤다.

1층 문은 원목으로 되어 고급지고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성격이 강한 사람보다 부드러운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연세가 있으신 주인 어머님은 외모, 말투가 고와 마음이 갔다.

"이 집 계약 하겠습니다."

집을 보자마자 계약을 했다.

매달 월세를 부담을 줄이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보증금은 3천이고 월세 40만 원에 주기로 결정되었다.

 

역경 가운데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사랑과 위로이다.

주변에서 사랑을 베풀어주고 있기에

그 고마움에 더 열심히 살아 갚아야 되겠다고

다짐한다.

tv, 냉장고, 세탁기는 후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비싼 브랜드 가구는 사주지 못해도 괜찮다.

아이는 브랜드도 모르고 엄마 만족이라는 걸 알기에

30만 원 안에서 책상과 침대를 구입해 아이방을 마련했다. 화이트색 별커튼까지 달아주니 근사해졌다. 아이가 좋아할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2년 만에 3번을 이사하고 아이와 독립.

단둘이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의미가 깊었다.

비록 월세지만 내 힘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사실로 뿌듯했다. 못할 게 뭐 있어. 지금처럼 한 걸음씩 해나가면 되는 거야.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더라.

아이와 엄마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남자의 집착이 해결만 된다면

아이와 살아갈 날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너와의 소중한 순간을 담으며

앞으로도 행복하게 예쁜 추억 쌓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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