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윤 Oct 05. 2019

2년 간의 원격근무를 마치며.

원격근무로 일한 스타트업에서의 2년을 회고해 봅니다.

원격근무로 일하던 스타트업을 퇴사하고 새로운 출퇴근제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잊혀질 것 같아 기록해 놓는 2년 간의 원격근무 생활에 대한 후기를 재빨리 적어본다.

두서없고 뒤죽박죽인 글이 될 것 같지만....


원격근무를 시작한 이유

두 가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조금은 몸도 마음도 덜 힘든 곳에서 확실하게 내가 혼자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전전 직장이 돼버린 인터파크에서 4년 같은 2년을 보내며 (최소 하루 10시간 이상은 기본으로 일하며) 좀 몸이 힘들었고, 팀장님과 팀원들은 좋았지만 보수적이고 꽉 막힌 조직 분위기에 마음이 힘들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칼 같은 출근시간을 지치려고 조금만 버스가 늦고 엘리베이터가 늦으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것도 지겨웠다. 고립되고 싶은 마음이 컸고, 당시 IT 대기업 L사에 최종 오퍼를 받았지만 더 낮은 연봉으로 원격근무를 하는 스타트업을 택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일을 효율적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어서였다. 

나는 남들보다 (뇌피셜) 일의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느꼈다. 5시간 걸일 일을 나는 2시간 만에 할 수 있었다. '벌써 다 했어요?'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 같아, 일을 끝내 놓고도 조금 뒀다가 보고한 적도 종종 있다. 그 의미는, '나는 같은 일을 더 빨리 끝내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을 많이 하고 싶을 때는 조금 많이 하고, 덜하고 싶을 때 빨리 끝내고 쉬거나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업무 방식을 찾고 싶었고, 원격 근무가 이에 제격이었다.

무엇보다,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으로 PM이 원격근무라니?! 개꿀 아닌가?


그래서 2년간의 원격근무는 어땠나?

장단점이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그런데 여기엔 정말 회사의 특성이 많이 반영된다. 원격근무를 하는 기업마다 장단점이 아주 많이 다를 것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격근무의 방식도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있었던 스타트업에서의 원격근무 특징을 정리하자면....

1. 기본적으로 전 직원이 사무실 없이 원격 근무하는 방식.

2. 성장을 엄청나게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의 소규모 스타트업.

3. 전체 or 팀 화상회의가 매일 오전에 30분 정도 존재 / 개별 미팅은 따로 있으며 1-2시간 정도 회의 종종 함.

4. 바쁜 시기와 바쁘지 않은 시기가 있었지만 한정된 개발 리소스로 인해 70퍼센트는 엄청나게 바쁘지 않음.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나는 장단점이 분명하게 나뉘었다고 생각한다.


원격근무의 장점들!  

어쨌든 내 시간을 분명히,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일에 있어서 게으름 피우는 성격도 아니고,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게으름 피우려면 한없이 피울 수 있는 환경이었고 중간중간 낮잠도 자고, 친구도 만나면서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내 스케줄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이혼 후 혼자 있고 싶었던 시간들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고, 2년의 기간 동안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남자 친구와도 꼭 밖에서 퇴근 후 만나지 않아도 되어, 충분히 편안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인터넷 환경이 좋고, 시차만 어느 정도 맞는다는 전제하에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사람들이 '원격근무'하면 떠올리는 Fancy 한 이미지들 - 바닷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노트북을 하는 것 등도 따라 해 본답시고 발리에서 한 달 동안 지내보기도 했다. (퇴사는 치앙마이에서 일하며 했다!)

단,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세계 여행하며 원격 근무를 하는 것은 좀 힘들다. 시차가 너무 나면 정규 미팅 또는 갑자기 해야 하는 미팅에 참석하기도 어렵고, 인터넷 환경을 항상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발리에서 한 달간 원격근무를 하며... 카페 / 바닷가 / 침대에서 일할 수 있다니?! (하지만 바닷가에선 절대 일 안 됨)


오히려 회의를 하기 편하다. 원격근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일이 돼?'라고 하는데, 규모가 크지 않고, 원격근무 환경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구성원들이 원격근무를 이용해 먹는 구성원들만 아니라면 사실 층이 다른 사무실을 쓰는 것보다 훨씬 일하긴 편하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에서 일할 땐 회의실 힘들게 잡고, 회의 가능하시냐 물어보고, 회의 참석 기다리고, 종이 프린트해서 나눠주면서 회의하는 것보다 개인 컴퓨터에서 공유된 화면을 보면서 회의하는 게 훨씬 깔끔하다. (가끔 화상통화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구성원이 있는데 간혹 그런 경우만 빼면 거의 양호하다)  


자 이제 개인적으로 느낀 원격근무의 단점들을 열거해 보겠다.

'퇴사'를 한 이유는 50%는 내 욕심, 50%는 회사 탓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원격 근무'만의 단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며 이 단점들은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원격근무의 최대 단점은 여유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한다는 점이다.

원격근무 기간 동안 핸드폰 잠금 화면...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애초에 원격근무를 시작한 이유가 일을 효율적으로 빨리하고 내 여가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였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게으름 피우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 보는데 썼다.

= ( 내가 싫다 )


물론 그도 그 나름대로 가치 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내가 생산적인 활동을 훨씬 열심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배워보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해 볼 수 있었고, 운동도 열심하려고(?) 해보았으나,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시간이 있다고 해서 이러한 공부/취미/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털썩)

나는 정말 끈기가 없는 사람이었고, 공부/취미/운동을 시도해도 끈기 있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좋게 생각하자면 원격근무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좌절되었지만 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


두 번째 단점. '소속감' 그리고 '긴장감'을 갖기가 힘들다.

이건 특정 회사가 취한 원격근무의 단점일 수도 있고, 나라는 사람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개발자들은 업무의 특성 때문인지 어떤 팀이나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고 치열하게 무언가를 함께 이루어내는 것에 대한 니즈가 적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꿈에도 그럴 줄 몰랐는데, 힘들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동료들과 함께 아웃풋을 팍팍 냈던 인터파크에서의 시절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오프라인에서 일할 때 오는 사람 간의 적당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은 오히려 활력을 주는 부분이 있다. 또한, 알게 모르게 지겨운 얼굴들을 마주하며 든 정은 친밀감, 소속감을 준다.

내가 이 결론을 내며, 야근이 심하지 않은 선에서 출퇴근하며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고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일하는 환경이 나에게 맞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세 번째 단점은 '잡담'의 부재이다.

잡담은 중요하다. 이는 결국 구성원들끼리의 '본드'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원격근무를 하며 '잡담'의 부재로 인해 구성원들과의 친밀감을 쌓기가 어려웠다. 이는 서비스를 만드는데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잡담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많은 부부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회사에 대한, 회사 제품에 대한 구성원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있다.


잡담을 하며 현재 서비스 방향성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디벨롭될 수도 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불만을 나누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어느 정도 해소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잡담을 하며 친밀감을 쌓게 되어, 내가 흔들릴 때 동료가 잡아줄 수도 있다.

물론 회사에서도 이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메신저에서 text로 가끔 이루어지는 잡담은 위의 것들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흔들림이 있었는데, 이때 이를 나눌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꼭 말을 하지 않아도 오프라인이었으면 어떤 구성원이 최근 어떤 심경인지를 알 수 있을 텐데. 이런 부분은 원격 근무 자체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 술 마시며 친해진 몇 동료들과는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는...


퇴사 날. 회사 동료와 함께 치앙마이 카페에서 원격근무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많은 원격근무 회사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무실 비용 절감, 집에서 육아하는 능력자들을 채용할 수 있는 인프라적인 장점도 있지만, 더 많은 회사가 원격근무를 함으로써 더 좋은 원격근무 문화들이 만들어지고, 내가 느꼈던 위의 단점들 역시 극복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격근무를 하더라도, 서비스가 급성장을 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구성원들과 자주 모여서 이야기를 캐주얼하게 했다면, 내가 느꼈던 단점들이 모두 극복되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것들을 한 번씩 다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아름다운 해변도, 칵테일도, 이제는 지칠 만큼 누려봤다! 다시 지옥철로 출퇴근하더라도, 내가 더 배우며 성장할 수 있고, 사람들과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택했기에 후회는 (아직)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Instagram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강연을 듣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