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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Sep 11. 2018

원격근무를 하는 욕심많고 게으른 기획자의 고민

퇴사하고 원격근무를 9개월차 하고 있는 Product Manager입니다

원격근무를 시작했고,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주변의 지인을 둘러봐도, IT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원격근무를 하고 있는 '서비스 기획자'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에서, 4대 보험에 가입된,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의, 5년차 이상의 IT 스타트업의 기획자로서 '원격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며, 그만큼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 행운아임에도 고민이란 건 존재한다. 그 고민을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원격근무를 하게 된 계기와 과정

지난 글과 이번 글이 아주 많이 동 떨어져 있음을 눈치챈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는 원격근무를 하게 된 계기와 무관하진 않다. 나는 분명 그 크지만 작은 조직 (대기업이지만 대기업같진 않은 작은 단위의 조직으로 굴러가는)에서 2년 조금 넘게 일을 했으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분명 애사심, 서비스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었지만, 보수적이고 남을 깍아내리는 조직 문화에 대한 적응은 끝까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퇴사의 원인은 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개인사정이 더 컸으며 이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려 한다.) 답답한 문화 속에서, 스타트업의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를 자연스레 꿈꾸게 되었으며, '원격근무'라는 것은 당시의 나에게 말도 안 될 정도로 멋진 일로 보였다.


퇴사를 결정하며 전부터 알고 있던 원격근무 스타트업의 대표님에게 직접 콘텍을 했고, 입사 의지를 밝혔다.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를 채용해 달라'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조직에게 두번 정도 기획 외주를 받아서 한 적이 있어서 얼마나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지는 조금은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타트업 붐이 일어나며 멍멍이나 소나 스타트업을 한답시고 뛰어든 흙탕물 사이에서 제대로 비전을 가지고 일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스타트업을 찾기란 정말 힘들다.


면접 조차도 전원이 참여해 화상 통화로 진행을 했고 한번의 탈락 위기(?) 끝에 Product Manager라는 포지션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원격근무 스타트업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9개월간의 원격근무 생활은 어땠을까

9개월 간 난 어떻게 지냈나. 소위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화려한 라이프(?)는 사실 없었다.

일단 이혼 마무리 지은 후 이사를 하느라 몇개월을 까먹어 버렸다. 물론 원격근무가 아니었다면 연차를 한 10일을 썼을 거다. 집 보러 다니기, 부동산 계약, 인테리어 등등은 꼭 낮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기에 오전 회의를 하고 오후 시간에 잠깐 짬을 내어 이러한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 껏 우울해 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 몇개월은, 집에서의 삶을 만끽했다. 야근 작렬의 회사 생활을 끝냈다는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침대 위에 노트북을 두고 회의하고, 침대 위에서 작업하다 자다... '내 꿈은 침대와 하나가 되는거야'를 실현하며 살았다.

이 꿈을 실현시켜 준 원격근무

정말이지, 처음 3 ~ 4개월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아름다웠다.

회사를 다닐때 느낄 수 없는 주 중 한낮의 여유는 달콤했다.

길에 핀 꽃을 햇빛아래 아무런 생각없이 멍-하니 앉아서 볼 수 있다는 것에 환희를 느꼈다. 동시에, 혼자 한적한 오후의 공원에 앉아있을 때 느껴지는 적적함, 그리고 소외된 느낌에서 오는 불안감까지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 하나 곱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똑같이 낮에 공원에 앉아있어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 혹은 주말에 짬 내서 기어나온 직장인이 느끼는 느낌과 이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약간은 세상과 동떨어져 나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놀고 먹고 일하는 것. 외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약간은 세상과 동떨어져 나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놀고 먹고 일하는 것. 외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원격근무다.


그 다음 3 ~ 4개월은... 이것, 저것을 시도해 보며 지냈다.

늘 배워보고 싶었던 것들- 디지털 음악 수업을 다닌다던가, 니들 펠트를 배운다던가, 유투브를 해본다던가...를 시도 해 보았고 (늘 그렇든, 곧 흥미를 잃었지만.) 지인과 여행도 일주간 떠나보았다. 그런데 장기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한 어짜피 일하는 시간, 회의하는 시간이 그날 그날 조금 변덕 스럽게 잡히기 때문에 확실히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은 적었다.

그냥 호텔에서 자고 저녁에 맛있는걸 먹고 도시를 돌아다니는 정도가 다르달까. 투어를 해야하거나, 액티비티를 하려면 휴가를 써야 하는 것은 보통 회사와 변함없는 것 같다.

왜 디지털노마드들이 값싸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동남아에서 한 두 달씩을 살다 오는지 알것 같다.

아무리 원격근무더라도 시차가 10시간 이상씩 나고 숙소비가 비싼 미국이나 유럽 여행등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어쨋든 디지털 노마드에게도 고민은 있다.

자유롭고 행복하지만, 나에게도 고민은 있다.

아직은 나는 내 자신을 서른 초반의 한창 커리어를 쌓아갈 단계에 있는 기획자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아직 미친듯한 성장곡선을 그리지 않는 스테이지에서는 지속해서 고민하고 서비스를 크게, 작게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다.

구성원의 숫자가 적으니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속도가 대기업 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고, 원격근무 특성상 미친듯한 속도로 기획, 디자인, 개발을 해 낼 수는 없다. 서로를 신뢰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형태를 띄고 있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큰 기업에서 상용화된 서비스를 미친 듯한 속도로 돌리다...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또 고민을 할 심적 여유를 주기에 고마울 때도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1년 후, 2년 후, 3년 후에도 지금 같이 한걸음씩 나간다면 내 자신이 흔히 말하는 ‘사회성’ 부분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찾고자 열심히 '원격 근무' '디지털 노마드'로 글을 검색하며 읽어보지만 아직은 같은 고민을 가진 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프리랜서처럼 불안정한 수입은 아니지만 수입이 좋을 수는 없다. 스타트업 치고는 많이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출금 갚고, 생활비 쓰고, 적금 조금 내고나면 사실 여윳돈은 없다. 차를 몰거나 필라테스 레슨을 받거나 할 수는 없다.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는 것도 조금 빠듯하다 (물론 내가 많이 절약하지 않는 스타일이라서인 것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고민은, 아마도 지속될 것이고 풀어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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