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와 귀신

by 유조


버스를 탔다.

유리창에 모기가 부딪히며 날아다녔다. 날이 무겁고 더웠다.

창밖에 부딪히는 모기를 진심으로 비웃고 싶었다. 있는 대로 성실하게. 이 개 같은 거.. 하고.


조금 무례한 애가 있었다.

마주 앉으면 자주 손톱을 뜯고 틱틱 아무데나 버렸다. 가끔 깨끗한 테이블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약속 시간은 다섯 번씩 바꿨다. 그렇게 만나면 손을 흔들어 대며 그저께 있었던 일들을 짜증내곤 했다.

그 애는 일본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 나라의 찜찜함과 축축함이 좋다고 했다.

어쨌든 조금 무례한 그 애.


이거 봐, 사마귀야.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다보며, 쪼그려 앉아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툭 떨어지던 순간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7호선 근처의 어딘가였다. 버스에서 내리면 훅 더운 기가 돌지만 조금은 바깥에 있어도 괜찮을 정도의 날씨였다. 화장실을 간 P를 기다리면서 C는 녹빛 차양막 아래에 서 있었고, N은 나를 따라 걸어왔다. 아, 죽고 있잖아.

아스팔트 위에서 말벌이 사마귀를 뜯고 있었다. N이 따라서 쪼그려 앉았다. P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나와 N은 거기 앉아 있었다. 잔인한 얘기 들어도 괜찮아? N이 물었고 나는 웃었다. 같이 잘 수도 있어...

살처분된 나무늘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속이 조금 안 좋아졌다. 나한테 그건 잔인한 게 아니라 슬픈 얘기야. 슬픈 건 못 본단 말이야. N이 동의해주었다. 잘린 사마귀의 다리와 몸통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그 나무늘보들을 살처분한 이유는 화재로 숲이 모두 불탔기 때문이라고 했다. 살 능력을 잃은 그것들을 죽여준 거라고.

생각해보니 안락사라는 말을 썼던 것 같았다. N은 유독 인간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다큐멘터리 찍는 사람들이 펭귄 구해주는 거랑, 나무늘보들이랑 뭐가 인간의 간섭이야? 아무래도 둘 다긴 하지 .. 그렇게 말했더니 N이 펄쩍 뛰었다. 난 그래도 펭귄 살릴 거야. 걔가 손을 파닥거리는데 어떻게 그래?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친환경적으로 살릴 거야. 화장실을 다녀온 P가 내 옷에 물기를 닦으면서 걔들은 손이 없어, 하고 깔깔거리며 도망갔다.


그거 알아? 개라는 건 별로 대단한 말도 아니더라.


인터넷에서 마녀에 대한 테스트를 보았다. 엠비티아이 같은 거였다. Find out your Witch Archetype : 그건 주로 영어로 되어 있었고, 마법 구슬과 악을 쫓는 파란 눈알들 같은 이모티콘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지난 달에는 생일이었고, 보름은 아니었지만 아주 희고 환한 달이 떴다. 흰 빛에 커튼이나 침대가 물드는 것이 좋았다. - 잘 때 보니까 너 얼굴에 빛이 들어오더라.

꿈에는 나무 냄새 나는 집이 나왔다. 곳곳에 귀신들이 숨어 있는 꿈을 꾸었다. 아니 ㅡ 있는 꿈을. 눈을 떴을 때 왼손에 작고 붉은 점이 다섯 개 돋아 있었다. 달은 여전히 창 안에 있어 빛이 들어왔다. 하루 지난 보름달이었나 봐 .. 상해서 그런가. 긴 숨을 내쉬고 집안 곳곳을 돌아보고, 모기와 귀신을 무작위로 용서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친구에게서는 괴담이 와 있었다. 웃었다. 어쨌든 귀신들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


조금 무례한 그 애..

머리 자를 때를 늘 놓치곤 했고, 사진을 찍어주면 꼭 다리에서 잘랐다. 그 애는 헤드셋을 잘 하고 다녔는데, 가끔 허공에다 손가락을 휘적거렸다. 그 애와 나란히 누워서 잤던 날 그 애는 내 손가락에 걸려 있는 반지들을 뺐다 ; 잡아 뺐다. 그리고는 그것들의 크기를 멋대로 바꿔두고는 책상 위에 던져버렸다. 허전해진 손을 모아 가슴 위로 올리고 천장을 보고 있으면 그 애가 곧 이쪽으로 돌아누워 내 머리카락을 잘근거리곤 했다.

창문으로 노린재가 수평으로 기어갔다. 저건 노린재가 아냐. 저런 색깔이 아니잖아. 설익었나 보지.


위대한 걸 하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바깥은 밤이었고, 나는 유독 에어컨이 차가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위에서 차가운 바람이 계속해서 내려왔다. 물가를 지나면서 빛이 번쩍거렸고, 그 때 무시무시한 형광 초록 표지판 아래를 지났다. 거대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해치지 않아, 괜찮아. 해치지 않으니까 괜찮아. 그건 해치는 게 아니야.


이 개 같은 거. 너 못 믿지?


자는 그 애를 가끔 내려다보곤 했다. 어두운 방 안, 하얀색 스탠드를 켜둔 그 애의 책상에는 내 반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웃기다고 생각했고, 곤히 잠든 그 애의 손을 만지면서는 그 애의 두껍고 건강한 손톱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천장을 보며 에어컨이 없는 그 애의 방 안에 오래 서 있곤 했다.


당신은 나랑 비슷하구나..

난 당신을 재단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것만큼 제멋대로 구는 일은 없지만. 난 당신에게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도. 당신은 뭘 더 싫어할까, 내가 당신을 모른다는 것과 내가 당신을 무서워한다는 것 중에서.


N에게 가장 고마웠던 것은 사마귀라는 말에 내 옆에 쪼그려 앉은 것이었다. 병적인 기록. 거울에 키스하고 싶어하는 마음. 나와 네가 말벌이 잡아먹는 사마귀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 날 남은 사진은 사라질 수 있어. 내가 모르는 유행하는 아이스크림, 너의 강아지가 앉았던 소파, 간지러운 코끝.. 익숙한 비관 같은 것. 모두.

당신은 병이 당신을 규정짓는다고 했지만,

어떤 병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믿어?


어제는 열다섯 시간을 잤다.

유럽의 어느 약국이 꿈에 나왔다. 픽션 같은 검은색 뿔테 안경에 하얀 가운을 쓴 사람이 내 옆에 서 있다. 아, 이 사람이 샴푸를 고를 때 나를 도와주었다. ㅡ 마담, 그가 알려준 일투라 라는 단어는 공공장소에서 쓰지 마요.

ㅡ 왜요?

ㅡ 그건 날개라는 뜻도 있지만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

마담의 친구는 짓궂네요.


오후, 하늘에 높고 하얀 구름이 하나 떴다.

그 안에서 번개가 치는 것이 보였다. 많이 칠 때는 수 초에 한 번씩 번개가 쳤다. 구름이 흐려질수록 시간이 조금씩 더 오래 걸렸다. 하루 종일도 볼 수 있겠어, 중얼거렸다. I could watch it all day, 라고 느슨하게 번역되는 문장을 속으로 느끼면서, 파란색 빈백에 기대 있었다.

책상 위로 길게 늘어져 일본 영화를 틀었다. 음성을 영어로 바꾸려다가 결벽증 같아서 그냥 두었다. 당신이라면 분명 그랬을 테니까. 내 손에서 조용히 리모컨을 뺏고, 꾹 눌러주었을 테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따위로 살 것인가.. 중얼거리면서 눈을 치켜뜨고 영화를 보았다. 팔에 에어팟이 눌려서 자꾸 고개를 돌렸다. 눈과 머리를 관통하는 직선이 느껴졌다.


안에서 정신이 깜빡깜빡 점멸하다가 10분씩 끊겼다 돌아왔다. 여기서 토하면 안 돼.. 할 순 있겠지만. 집중해. 눈을 뜰 때마다 숫자를 봐. 시간이 가고 있다는 걸 느끼려고 노력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얼음을 씹으며 누워 있었던 먼 여름 밤, 건너편에 노란빛이 켜지고 꺼지고 했던 것은 그저 몸이 아파서였던 거면 어쩌지. 몸이 아픈 걸 불안이라고 생각하고, 불안이 지나가는 것을 위안이라고 생각하고, 그 짧은 사이를 나라고 생각했던 거면 어떡하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건강하고 훨씬 더 투명한 정체성이면 어쩌지..


깊이 자다 깼을 때 바깥은 황토색이었고, 땅 위에서는 비가 오고 있었다.

밤이 잿빛이어도 하늘과 빌딩들 사이의 윤곽을 순간에 비추는 번개가 좋았다. 싸늘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무릎을 안고 앉아서 보는 번개는 안전한 신 같았다. 멀리에서 보는 안전한 공포 영화, 안전한 불안.

나중에는 계속해서 보았다. 창문에 온갖 지문과 입김과 체온을 남기면서. 번번이 결국에는 내 예상보다 이르게 치는 번개를 보면서 한 번만 더, 생각하며 기다렸다. 더 긴 사이 끝에 오는 믿음이 가지고 싶었다. 흰 빛이 가를 때마다 구름의 속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게 따뜻한 색이 보이는 것 같았다.


위대한 걸 하고 싶어하지 않다. 그럼에도 개같아, 나보다 큰 것들은, 질척한 것들은, 질척한 것들을 잃는 것들은. 그러니까 나보다 더 큰 것 안에 있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내가 더 커지게.. 감은 눈은 새까맣지만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은 상큼하게 해주세요. 전보다 더 애절하고 간절하게 문장들을 대한다. 이게 마지막 문장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아, 언젠가 썼던 말을 계속 되뇌이며.


죽기 전에 보는 얼굴이 새로운 얼굴이면 좋겠네.

아침약과 점심약을 혼동하면 죽어버리고 싶어하는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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