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귀걸이 ; 찾기

by 유조


커피 괜히 마셨다..

진짜 배울 줄을 몰라. 오르막길 걸을 때 의심해 본 적이 백 번인데.

건물 아래를 걸을 때 물이 떨어지면 그건 분명 녹슬거나 더러운 쇠에서 떨어진 물일 거랬다. 그러니 비 오는 날에는 건물 아래 있지 말라고.. 탁 트인 안전한 데로 피하라고. 너도 끔찍하게 배울 줄을 몰라. 밥 먹으러 가는 길에 그런 얘기 하면 아무도 안 좋아해. 난 상관없지만 ..


넌 왜 귀여운 것들을 그렇게 좋아해?

난 네가 빨간 딸기 귀걸이 하고 올 때 진짜 싫더라.


커피를 마시면 구분이 안 된다. 나한테는 커피가 흔들다리야. 네가 빨간색 바지에 노란색 꽃무늬 옷 입은.. 미키마우스 초콜릿처럼 눈이 길고 큰 키링 같은 거, 나한테 들이밀 때. 커피랑 같이 들이밀면 좀 편할걸.. 마시고 나면 구분이 안 돼. 눈썹 하나에도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Elliott Smith 의 'Roman Candle' 에는 순수한 악감정이 있다면 이런 음이지 않을까 한다는 댓글이 있다.


무서운 영화 좋아한다고 하니까 냉큼 하나를 보자고 찾아왔다. 서로 존댓말 안 쓰게 된 지 겨우 두 달인데 너는 식탁에 네 귀걸이며 겉옷을 늘어놓고 가방은 소파 옆에 던져두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근데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아닌지.


물론 언어는 엉망진창이지.. 처음부터.

너무너무 재밌지만 어쨌든 엉망진창이지.

우유병이 있다고 하자.

우유 좋아하니? 신선한 우유를 생각했어? 우유 병은 투명해? 울퉁불퉁한 로고는 없어? 유리병이야? 플라스틱? 뚜껑은 초록색? 코르크? 특정한 우유를 생각했니? 그건 컵에 따른 우유야? 병째로 식탁에 올려둔 우유야? 식탁은 차가워? 우유는 차가워? 집에 우유 있어? 냉장고는 커? 오래됐어? 냉장고 안에 보통 우유가 있어?

처음부터.. 우유병이 있다고 하자. 우유 좋아하니?

거기서부터 엉망진창이지.. 물어보고 싶어져.


넌 대체 왜 더위를 안 타는지 모르겠어.

빳빳하고 미스락거리는 셔츠 입고 오는 게 싫어. 양말에 운동화까지 신고 오는 것도 싫고. 그런 주제에 머리는 매번 짧게 깎은 게 제일 싫어. 가는 머리카락이랑 네 목은 구분이 하나도 안 돼.


창피해하는 마음과 창피한 마음은 어렵다.

창피해하다가 창피해진다. 좋아하는 걸 창피해하면 창피해지고 창피해지면 괜히 좋아하게 된다.

자꾸 창피하다고 말하다 보면 얇아진다. 월남쌈의 격자처럼 질깃하고 얇고 투명해져.

짧게 깎은 머리, 덧니로 새는 발음, 딸기 귀걸이와 키링.. 새까만 가방.

너무너무 창피해..

그러다 미안해지고 좋아지고, 구분이 안 되고. 커피를 마시고 오르막길을 걸으면 그렇게 돼.


'Veronica' 를 보다가 네가 내 무릎을 톡톡 건드렸다. 돌아보니 네 얼굴에 선명한 윤곽과 그림자가 져 있었다. 어두운 색으로 딸기가 귀에서 빛난다.

슬퍼? 라고 네가 묻는다. 공포 영화를 보면서.

그때만큼 네가 음침한 생물 같았던 적이 없어. 네 가방 옆에 얌전했던, 핑크색 인조 털을 뒤집어쓴 괴물의 반쯤 뜬 플라스틱 눈알처럼.


하얗게 사라지는 오후.

하얀 빛 아래로 온통 눈이 부시면서 사라지면 매미 소리만 느껴진다. 샤워의 반대말 같아. 더운 빛, 하얀 열, 매미 소리. 어두운 샤워실에서 투명한 물로 씻는 거랑은 다르지. 음악도 없고..

나무 아래를 걸을 때 손등에 물이 떨어졌다. 여름에 그러면 그건 분명 매미가 싼 오줌이랬는데. 하필 투명하대. 그래서 지금까지 몰랐을 거래, 한 두 방울 맞았어도. 난 상관없지만.. 그건 별로 상큼한 얘기는 아니니까.


네가 나보고 까다롭다고 하던 거, 생각난다.

난 네가 그러는 거 좀 좋아했는데. 나보단 네가 훨씬 그런 것 같았어서, 그래서 네가 진짜 웃겼거든, 한입거리도 안 되는 게.

넌 무서운 게 너무 많아서 네 새까만 가방에 덕지덕지 귀여운 것들을 붙이고 다니는 주제에.. 그 위에 핑크색 털덩어리나 은색 뱃지나 초록색 씨가 촘촘한 딸기, 멍청해보여서 너무너무 좋다는 키링, 무슨 병균처럼 달고 다니면서. 그거 하나라도 없어지면 너 살아있을 수 있어?


공포 영화에는 보통 사랑스러운 이름을 쓴다. 에밀리 로즈, 한나 그레이스, 테오도라, 엘레노어 크레인.. 그리고 마녀에게는 주로 이름이 없다. 그래서 마녀들은 좀 제멋대로지. 엉망진창이고..

근데 마녀들이 수프를 끓일 때, 알고 보면 솥에 아무거나 다 넣는다면 어떨 것 같아? 난 너무 끔찍할 것 같아. 내가 감자를 넣고 끓여도 돼지를 넣고 끓여도 사람 진짜 많은 신촌역 횡단보도 넣고 끓여도 그게 마녀가 한 거랑 비슷한 냄새가 날 수 있다면 있잖아. 나는 진짜 이제 꿈에서 뭘 봐야 할지 모르겠어.. 네 새까만 가방이 그냥 내가 고등학생 때 쓰던 가방이면 어떡해? 내가 꿈에서 보던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정말로 내 뇌가 만들어낸 거면 어떡해?


'애인 발견!!!' 은 유일하게 내가 주체가 되고 싶은 내용이다.

그건 정말 신기한 일이야. 나는 사람 얼굴 정말 못 알아봐. 같이 사진 찍으면 얼굴이 쑤욱 밀려나, 거북이처럼. 어쩔 수 없어. 디스코볼 달린 노래방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아이스크림이 녹을 때까지 쩌렁쩌렁하게 웃던 목소리가 생각나거든. 근데 너랑 가니까 괜찮았어. 네 이빨 사이로 새는 발음이 좋아서. 짧게 깎은 뒷목에 빨강 파랑 초록 가볍게 물드는 색깔들이 좋아서.


까다롭다는 말.. 한입거리도 안 되는 네가 해서 좀 좋았는데.

근데 넌 내가 네 산만한 옷을 보고도, 한 번 쳐다보고 마는 걸 알고 있었대. 그러면서 내가 쓰는 물건은 오백 번씩 고민하다가 사더래. 그런 물건들이 네 거랑 너무 다르고.. 네가 한 달에 열다섯 개씩 살 때 나는 다섯 달에 한 개씩 사는데도, 모아놓으면 넌 단번에 내 게 보였대. ㅡ 까만색 바탕에 초록색 잎사귀, 목걸이, 커피, 말차, 둥근 시리얼 그릇. 장미나 과일 대신 견과류. 넌 그게 좋았대. 네가 나보고 까다롭다고 하던 거. 내가 달고 다니는 것들은 나를 닮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았대.

난 왜 그게 네가 내 덧니를, 짧은 머리카락을, 핑크색 털복숭이 괴물 키링을 좋아한다는 말로 들리지. 너무 끔찍해. 엉망진창이야.. 네 꿈과 내 꿈이 다르지 않은 거였다면. 에밀리 로즈가 마녀였다면.


넌 꼭 현재시제로 말하더라. 너무 싫어..


커피 정말 괜히 마셨다.

네 덧니, 짧게 깎은 머리가 너무너무 좋아져. 초록색 씨 콕콕 박힌 딸기 귀걸이도..

내 까만 바탕 초록색 이파리 목걸이도. 네 것인 줄 알았던 모든 까다로움도.

너만 아는 신촌역 횡단보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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