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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오를로는 어렸을 때부터 발칙했다.
_이를테면 오를로는 공부를 할 때마다 기어 들어가는 장소가 있었다.
_그곳은 집의 가장 안쪽에 있는 욕실과 침실을 잇는 짧은 복도였다. 복도에는 욕실과 침실 쪽을 각각 막는 두 문이 있었다. 그래서 오를로는 그 가운데에서 양쪽의 문을 닫고 누웠다. 오를로의 몸은 복도에 딱 맞았다.
_머리 쪽에서는 욕실의 물과 유리 냄새가 들어왔고, 발치에서는 먼지 쌓인 서랍장의 냄새가 들어왔다. 거기 가만히 누워서 오를로는 눈을 감고 희미한 웃음소리와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듣곤 했다.
_그러나 오를로가 발칙한 것은 자신이 그 복도를 좁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_복도에서 공부한 것을 오를로는 머지않아 모두 잊었다. 오를로는 기억력이 좋고 온순했기 때문에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오를로는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시시하게 여겼다. 그것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무엇과 자신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행위에 모두 걸쳐 있는 시시함이었다.
_다만 오를로는 자신이 어떤 것에 시시함을 느끼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오를로는 다양하게 공부했다. 복도에 눕고 웅크려서, 글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사람들이 시끄러운 거리에서, 자신이 최고로 우울한 날에.
_시시함은 그 방향과 대상과 강도가 울쑥들쑥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오를로는 꽤 오랫동안 공부했다.
_오를로에 대해 하나만 말해야 한다면 물론 오를로는 글쎄 라는 말을 좋아했다. 글쎄 .. 라고 말하면 어떤 것도 지루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글쎄는 마법적인 보류를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_- 오를로, 장 작가 좋아하니?
_- 글쎄 ..
_그러면 오를로는 다음부터 장 작가의 작품만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_갤러리의 새하얗고 우둘투둘한 사면의 벽들, 부드러운 나무 계단의 난간들, 작품이 매끈한 바닥에 드리우는 그림자들.
_그것들이 모두 어떠한 기다림을 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_오를로는 정말 발칙했다.
_그래서 익숙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오를로가 버스를 타는 가로등 아래는 아스포델을 엉성하게 심은 곳, 저 골목 끝집은 유리문이 옆으로 길게 열리는 곳, 저쪽은 가로등이 8시에 일제히 켜지는 곳, 그 너머는 신호를 어기는 사람들이 많은 짧은 횡단보도.
_무엇보다도 오를로는 그것들이 자신에게만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글쎄 로 보류해둔 것들이야말로 그러했다.
_글쎄 .. 는 마치 신비로운 물이나 빛, 은밀한 핀 조명과 같았다. 오를로는 자주 글쎄 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리고 오를로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모든 것을 가졌다.
_곧 장 작가는 보라색으로 반짝였고, 아스포델의 꽃말이 가로등 아래에서 어둑하게 흘렀고, 상대가 흘린 기억과 단어들은 기다렸다. 오직 오를로를 위해서.
_오를로는 단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물컹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_오를로는 처음으로 마카롱을 먹었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 날 오를로 앞에는 핑크색 트롤리가 있었다. 그곳은 청결하고 쾌적한 백화점이었지만, 일요일이나 놀이공원에 잘 어울리는 화려하게 장식된 트롤리였다. 오를로는 거기에 진열된 라즈베리가 든 마카롱을 처음 먹어보았다.
_오를로는 궁금했다. 자신이 처음 먹은 황홀한 단 맛이 그토록 바삭하지 않은 것이었어도 자신이 물렁한 것들을 불편해했을지.
_그러나 그것은 적당히 장난스러운 궁금증이어서, 오를로의 라즈베리 마카롱은 그저 관념적으로 사랑스러운 어떤 핑크였다.
_오를로는 5월 17일에 태어났다.
_오를로는 5월이 가까워오면 늘 안절부절못하곤 했다. 6월이 가까우면 날씨가 상쾌하고 맑아졌는데, 낮이면 오를로는 자주 거실 한가운데에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그것은, 글쎄, 마치 오를로가 초여름에 어떠한 자성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_이를테면 다른 시기에는 잠잠하다가, 5월이 되면 오를로 안에서 초여름에 가까운 부분이 강해지고 끌어올려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를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자성이 없는 부분들이 우르릉거리는 모양을 볼 수 있었으면서도 가장 강한 그 부분만은 오를로의 눈꺼풀 가장 바깥을 차분하게 드리우고 있는 듯 보였다.
_초여름의 오를로는 분주하고, 상큼하고, 기민했으며 또한 우울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오를로를 만나는 사람은 몇 없었고, 오를로는 대부분 사랑스러웠다.
_뭐라고 해야 할까? 오를로의 사랑스러움을 가장 많이 마주한 사람은 포포였다. 포포는 유독 초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오를로를 자주 만났지만, 그건 포포가 의도한 것도, 오를로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_오를로는 포포와 영화를 많이 보았다. 오래된 디즈니 영화, 일본의 귀여운 지브리 영화, 화려한 하이틴 영화, 팝콘이랑 같이 보기 좋은 영화 .. 그리고 포포와 오를로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총과 폭력, 사랑과 날조, 결벽증과 놀이공원, 환상과 언어 ..
_초여름의 오를로, 포포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앉아 듣는 오를로는 생각했다.
_아 .. 저렇도록 멀리 있는, 정교하고 복잡하고 두꺼운 얘기. 저 애는 미친 것 같아.
_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리고 저 애 묘비명에는 분명 그렇게 적히겠지.
_하지만 어쨌든 오를로는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어쨌든 종국에는 오를로는 사랑했기 때문이다.
_중요해 보이는 많은 일들이 그렇듯, 오를로는 포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머지않아 잊었다.
_그러나 오를로는 포포를 마주하고 있을 때, 포포의 이야기를 들을 때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오를로는 물론 포포를 좋아했지만, 포포의 잠이 덜 깬 얼굴이나 포포가 편의점에 갈 때 주워 입는 옷을 바라볼 때는 아주 평화로웠다.
_오직 포포의 말과 단어들을 생각하면 그랬다. 오를로의 심장은 매번 동물처럼 두근두근 뛰었다. 오를로는 포포의 글씨만 보아도 고개를 돌리고 싶어졌고,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_하지만 어쨌든 오를로는 포포와 함께 보는 영화, 포포가 이야기해주는 영화, 포포의 목소리, 포포의 단어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오를로는 자신이 정의한 미친 것이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과 같은 단어들의 의미를 알아내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썼다.
_그러나 또한 물론, 오를로는 아주 오랫동안 공부해왔다.
_오를로는 화학식을 구성하듯이 포포를 구성했다. 포포의 목소리, 포포의 단어들, 포포의 생각.
_오를로는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하는 것은 아주 흐릿한 무언가를 볼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_무언가가 아주 흐릿한 것은 보통 그것이 멀리 있거나 눈이 뿌옇게 바랬을 때, 혹은 다른 것이 막고 있을 때의 경우였다.
_멀리 있는 달처럼, 이른 아침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옷을 보는 일처럼, 혹은 쓰레기통 뒤에 있는 검은색이 비닐 봉지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때처럼.
_오를로는 예민하지만 평범했다. 오를로는 때로 한쪽을 까먹고 다른 쪽을 강조했지만, 아무튼 오를로는 그랬다.
_때문에 오를로에게는 다른 모든 평범한 것들이 그러하듯이 머리와 꼬리가 모두 있었다.
_그러나 오를로는 동시에 아주 예민했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와 꼬리가 끊임없이 술렁술렁 말을 주고받는 것을 잘 알아챘다.
_그래도 오를로는 살아있는 것이 좋았다.
_바스락거리는 고양이의 꼬리, 많은 이들이 황금으로 빗대는 모과의 향기, 늦여름이면 귀신처럼 피어난 능소화, 그 아래의 쓰레기통까지 모두 좋았다. 바람 아래 태어나는 물결은 빛 아래서 입을 벌린다는 것을 아는 일들이 좋았다.
_뭐라고 해야 할까? 오를로는 그것들을 향수처럼 대했다.
_세상이 라즈베리의 냄새, 허구의 냄새, 귀신의 냄새, 쓰레기의 냄새, 물의 냄새, 초여름의 공기, 비와 바람의 냄새로 가득 차는 것이 좋았다.
_그리고 그것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 아니라 무엇의 냄새라고 해야 좋았다.
_초여름의 오를로가 포포에게서 느끼는 것은 그런 무엇이었다. 포포의 안에서 술렁술렁거리는, 나무보다 부드럽고 향기보다 곧센 무언가는 끊임없이 하늘 위로 태어나고 눈을 감았다. 포포가 아닌 포포의 그것들이었다.
_그것들은 향이 없어서 오를로가 즐거워하기에는 너무나 포포의 것이면서, 포포는 너무 가까워서 그것들을 잘 보지 못했지만 오를로는 먼 거리에서 그것들을 볼 수 있었다.
_오를로는 초여름의 오를로가 포포의 그것들에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 알아낸 것이었다.
_오를로는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특권을 타고 났다.
_오를로는 이불 요새 아래에 있는 이름이었다. 이불과 낮은 의자와 구름버섯 모양의 랜턴으로 지을 수 있는 요새. 오를로는 그 아래에 있는 사물들을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가져왔다.
_그래서 내가 그를 만나는 날에는 늘 오를로와 함께 누워 있었다.
_오를로는 나를 만나는 날에는 늘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_이불 요새에 바람이 빠지지 않은 쿠션을 모두 가져다 두어야 했고, 짭짤하지만 목을 태우지는 않을 만한 치즈를 준비해야 했고, 요새의 이불을 걷어 하루종일 거대한 공기를 드나들게 하고 햇빛으로 야광별의 빛을 채워야 한다고 했다.
_그럴 때면, 오를로는 말했다.
_그럴 때면 꼭 내가 너무 거대해지는 기분이 들어. 내 팔다리가 의자 다리처럼 크고 딱딱해지고, 내 뾰족한 머리 끝과 꼬리가 만나서 원을 그릴 것 같이 길어지고 뭉개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_오를로는 누운 채로 말하면서 야광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무섭지 않았다.
_함께 누워 있을 때 오를로의 눈은 늘 차분하고 향기로웠기 때문이다. 오를로는 웃으며 풀썩거리며 가라앉았다. 쿠션의 깃털이 촘촘히 느껴졌고, 오를로가 천천히 호흡하는 소리는 늘 잘 들리지 않았다.
_그런데 다 까먹었어.
_이렇게 .. 그냥 자고 싶어. 그럼 좋은 냄새도 안 좋은 냄새도 다 꿈에 나올 테고 .. 설령 네가 내 꿈을 보지 못하더라도 나는 모든 걸 가지고 밖으로 나가겠지.
_내가 공기 속을 걷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