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부표

by 유조


무지개와 노란 부표. 멀리 있는 난간과 어깨의 통증과 희미하고 익숙한 불안. 어디에서 비가 오는지 몰라도 하늘이 곰팡이 슨 노란색으로 물들어도 (그것은 비) 나는 무지개를 눈앞에 보고 있다. 무지개가 사라져도 심장이 아픈 구석을 골라 뛰어도 눈 뒤에 몇 개의 알약이 굴러다녀도 까딱하지 못하는 손가락이 있어도 나는 무지개를 보려고 방충망을 열고 멀리 있는 난간을 붙잡고 차가운 공기에 얇은 옷을 바치고 있어.

재현하려고 다가선 창가. 먼 흐린 잿빛 안개 속에 눈의 신비처럼 반짝이는 빛과 (연붉은) 색을 드리우는 구름의 시간과 유리알과 그림자.


오렌지 필과 쑥 - 약을 먹으면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아프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프다는 이야기밖에 할 것이 없어요. 푸른 곰팡이처럼 부드러운 번개와 왜 울었더라.

꿈에서 유독 계단을 많이 내려가요. 비 오는 계단.. 뒤에서 소리가 어깨에 따라붙는 계단. 웃는 소리보다는 급박한 소리들에 졸음이 쏟아지게 됐지 뭐야. 장난스러운 비명 소리.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유니폼도 패딩도 아니고 여러 명과 함께 앉아 있는데 그 사람만 눈에 툭 들어온다. 주황색 보조 배터리, 주황색 책 표지. 껍질을 벗겨내면 살짝 닳아 있어..

천장은 늘어진 비닐로 되어 있고 사람들은 비에 하나도 젖지 않았다. 편의점들이 하나씩 네모 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 안마다 냉기가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베르가못이 라임이랑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아요? 나는 언제나 꿈에서 같은 골목을 방문한다. 옷을 모두 벗고 있을 때도 있고, 위태로운 버스를 따라갈 때도 있고, 입을 가리고 있을 때도 있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빨간색 커피와 투명한 저녁 가게. 기름 냄새가 배어 있는 골목과 유리로 된 하늘 아래.

꿈에서 누군가의 점퍼에 눈물을 잔뜩 묻혔다. 축축한 얼굴을 가리고 문을 닫고 나오려다가 나는 약속의 말을 간절히 받고 싶었다. 너는 네가 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뜨거운 물과 깨끗한 머그. 뜨겁고 부드럽고 깨끗하고 좋은 시간들 - 시간들. 너는 날아오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해.

또 - 찻잔이 가득한 공연장에 갔었어요. 애들이 쉬는 시간마다 이런 곳에 올 수 있다는 게 믿겨? 나보다 네 살 어린 친구가 내 뒤에 가만히 서 있었고요. 난 그 애보다 훨씬 바보 같고요. 촌스러운 파랑, 크림, 노랑, 먼 거리에서 보이는 허여멀건 도자기의 액체. 비닐보다 정교한 드레이프. 귀신과 유령의 차이. 귀신의 기억. 검은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가는 너를 발견하고 달려갔을 때 나는 곰팡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괜찮아, 나도 그랬어. 평생에 그렇게 아름다운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런 것이었다.

창문 틀을 따라 그릴 때 나는 앞서 그랬던 많은 손가락들을 알고 있어. 그 손가락들은 모두 비슷한 나이에 죽었고 뻗친 머리를 가지고 있다. 코를 건드리면 눈을 찡긋하고 무례한 짓은 가끔만 해. 지루한 것을 죽도록 싫어하고.. 그런 손가락들을 가지고 싶은 게 아니라 되고 싶었어. 시끄러운, 뜨거운 손가락들. 그 너머의 귀여운 입과 떠도는 눈들. 꼿꼿한 기억과 걸어가는 찡그림들.

연장하고 연장하고 싶었다. 자잘한 좋은 것들은 자잘한 날카로운 것들을 동반하고 나는 자잘한 날카로운 것들을 버릴 마음이 없어서였어. 나는 늘 담요와 이불의 차이를 고민하고 / 담요의 색깔을 고민하고 / 하얀색 컵과 검은색 컵과 남색 컵 중에서 고민하고 / 아마도 꿈에서는 주머니에 소시지를 주렁주렁 단 로봇과 손을 잡고 걸어가고 초원을 달려 모든 이별에 웃음을 터뜨리고 또 - 수프에서 날아오르는 나무 장난감의 냄새를 기억하고 팝콘을 따라하려고 애쓰고 또 - 꿈에서 깨면 또 온몸이 부었는지 알아보려고 꾹 누르다가 팝콘인지 소시지인지 어떤 이별에 웃음을 참지 못했는지 - 뜨겁고 부드럽고 깨끗하고 좋은 것들 또 투명한 것들을 골라내려고 하다가 그러다가 노란 부표를 보면 모두 잊어버리는 거야 - 그러니까 노란 부표를 사랑할 거야.

무지개와 노란 부표. 멀리 있는 난간과 어깨의 통증과 희미하고 익숙한 불안. 어디에서 비가 오는지 몰라도 하늘이 곰팡이 슨 노란색으로 물들어도 (그것은 비) 나는 무지개를 눈앞에 보고 있다. 무지개가 사라져도 심장이 아픈 구석을 골라 뛰어도 눈 뒤에 몇 개의 알약이 굴러다녀도 까딱하지 못하는 손가락이 있어도 나는 무지개를 보려고 방충망을 열고 멀리 있는 난간을 붙잡고 차가운 공기에 얇은 옷을 바치고 있어.

재현하려고 다가선 창가. 먼 흐린 잿빛 안개 속에 눈의 신비처럼 반짝이는 빛과 (연붉은) 색을 드리우는 구름의 시간과 유리알과 그림자 같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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