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옷 중에서 가장 알록달록한 옷을 좋아한다.
예전에 놀러 갔었던 어떤 어른의 집이 있었다. 그 어른은 아주 멀리 살고 있어서 내가 그 집에 가본 것은 손가락에 꼽게 적었다. 그런데도 갈 때마다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다. 그 집에는 방이 아주 많았고, 방마다 냄새도 아주 많았다. 맨끝의 방에서 나는 단감 냄새와,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방의 노란 이불 냄새. 가장 큰 방의 오래된 흔들의자와 갈색 미닫이 문의 뿌연 유리창 냄새.
문고리를 돌릴 때마다 늘 잠겨 있었던 그 방에서는 좀약 냄새가 났다. 실리카겔이 생각이 났던 좀약이라는 게 좀벌레를 막는 물건이라는 것, 원래부터 장롱에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기억 속에서는 늘 그랬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다.
언젠가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어른과 함께였다. 새까만 옷걸이가 나무처럼 자라 있고, 옷이 널려 한낮의 햇빛을 모두 막고 있는 곳이었다. 황금빛 보와 빨간 꽃과 덮을 마음은 들지 않는 형형색색의 커다란 옷들. 어른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어두운 색의 상자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곧 나와 그가 앉은 주변으로 작고 무거운 상자들이 쌓였고, 그것들은 열릴 때마다 비밀한 빛을 냈다. 그 오래되고 비밀한 장신구들. 밤의 잠자리, 코끼리, 붉은 눈과 부드러운 꼬리, 은색 꽃잎. 무엇이 아름다운지 알게 되기 이전에 나는 그 방의 웃자란 것들 틈에 있었다.
어른은 나와 그 가운데에 앉아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결혼할 때의 기분과 기억,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 내가 슬프냐고 물었던 것 같고 어른은 솔직히 정말 슬프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게 나에게는 이상했다. 그러고 난 뒤 어른은 다시 상자들을 닫고 신비로운 수납처럼 모든 것들을 정리했다. 여전히 어둡고 좀약 냄새가 나는 방 안에서 어른은 내가 시집을 가는 날 그것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그만큼 귀한 시간이 쌓였던 물건들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기억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어른이 그 방에 있던 물건 하나를 정말로 준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게 사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알록달록한 옷은 그 어른이 준 것이었다. 온갖 줄무늬와 색, 모양이 너무 많았지만 아주 얇고 부드러워서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있기 좋았다. 어른은 그 옷을 잠긴 방에서 꺼내다 준 것이 아니라, 어른의 아이들이 응접실이라고 부르던 작은 쪽방의 탁자 위에 쌓여 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옷을 자주 입었고,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도 챙겨 갔다. 아마 동남아의 어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기서 그 애와 다시는 안 볼 정도로 싸웠다. 동남아의 숙소란 너무 느긋하고 찬란하고 풍요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 그 애와 그런 공간에 같이 있는 게 힘들어서 선크림도 대충 서둘러 바르고 바다로 도망을 가 온 등이 다 빨갛게 벗겨졌다. 샤워를 할 때마다 이를 악물고 신음하며 씻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해 생각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 글의 대부분은 진짜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친구와도 만나지 않고, 작은엄마의 얼굴도 보지 않고 산다. 그 옷에는 별로 유지되는 좋은 기억이랄 게 없는 것인데 이상하게 나는 그 옷을 좋아한다. 그 옷에는 전설이나 밀림 같았던 그 방이나, 동남아의 하얗고 얇은 커튼 사이에서 펄럭거리는 온갖 색깔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그 옷을 꺼내 입는다. 가끔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으로 여겨진다. 우스운 이유로 싸웠던 준아, 나는 네가 깔깔거리면서 웃고 볼을 부볐던 옷을 입고 있어도 네가 생각이 나질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ㅡ 라고 말하는 게 무언의 클리셰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각이 나는 게 하나도 없다. 나에게 귀한 것은 그냥 그 방의 찬란함 같은 것이다.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다른 것도 죄가 아니라 그게 죄 같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어지러운 취미들을 계속 오가고 있다. 전시를 보고, 게임 유튜브를 보고, 연극을 보고, 금강경 (색과 형상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 을 읽고, 영화를 보고, 목욕을 하고, 보르헤스를 읽는다. 단편은 순서대로 읽지 않는데, 꼭 더 정교한 글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조금 덜한 글을 읽는 버릇 (징크스) 이 있다. 테드 창의 숨을 읽고 난 뒤에야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고, 픽션들을 읽은 다음에 알레프를 읽는다. 어김없이 읽다 보면 덜 정교하다. 그래도 좋아하기를 관두진 않는다. 대신 페이지마다 어디에서 읽었는지를 적어둔다.
리버벨 ㅡ 적당 ㅡ 파롤 앤 랑그 ㅡ (아무 표시도 없는 것은 집) ㅡ 버스 안 ㅡ 새벽 ㅡ 가배도 ㅡ 준의 집 ㅡ
네덜란드에 반년 동안 있었을 때 손이 온통 벗겨졌었다. 플랫 메이트들과 사두었던 세제와 손비누가 너무 독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하루에 셀 수도 없게 손을 많이 씻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숙사에서 지낼 때는 마트에서 도브를 사다가 바디워시로 썼는데, 손을 씻을 때도 비누 대신 그걸로 쓰니까 차츰 나았다. 그리고 뜨거운 물이나 건조하고 싸늘한 공기만 닿아도 아팠던 손이 조금 나아지면, 공용 부엌의 커다란 창에 팔을 내밀어 날씨를 가늠했다. 15도, 20도, 9도 같은 수치는 하나도 와닿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가늠한 뒤 메모장에다 입은 옷과 숫자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18도 : 판초와 목폴라, 얇은 스타킹. 21도 : 두껍지 않은 맨투맨. 10도 : 짧은 카키색 패딩과 부츠. 뒤집어진 손의 피부를 생각할 때는 다행을 느끼고 더 이상 창밖으로 맨살을 내밀어 가늠하려고 들지 않을 때는 불안을 느낀다. 내가 그리워하는 곳에도 죄가 있었고, 이곳에서도 죄가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반복하는 버릇과 고통을 죄라고 생각했을까?
얼마 전에는 처음 만난 사람 셋과 다트를 던졌다. 아주 늦은 시간이었고 아주 시끄러운 곳이었다. 그곳의 모든 것이 기꺼웠다. 이국의 음식과 다트들의 색깔 - 맛없는 아이싱 같은 밝은 보라색, 아마도 노란색, 달착한 핑크색 - 휘둘러지는 네온과 반짝이는 네모들, 바닥, 천장. 잘 뽑히지 않는 다트를 코앞에서 힘껏 붙잡고 뽑을 때 화면의 시끌벅적한 웃음 같은 오디오. 서로의 귀에 소리를 지르는 것들.
목욕은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데 어쨌든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목욕을 한다. 싸우는 것 같이 물이 받아지는 소리도 좋고, 욕실의 노란 불을 켜면 물이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도 좋고, 불을 모두 끄고 가득 찬 물 안에 들어가는 것도 좋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수건을 괴어 놓으면 물결이 반사되어 벽과 샤워기, 유리와 금속 위에 보인다. 어둠이나 하얀 플래시 아래의 몸을 움직여서 물결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는다. 유튜브에 소니피케이션을 치면 나오는 영상 중의 하나를 반복 재생으로 틀어 둔다. 대부분 30초 안팎이라 10분을 들으면 물밖으로 나와서 쉬게 된다. 심장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고 느낀다. 고함에서 도망치는 모양으로 욕조 위에서 몸을 말고 고개를 넣는다. 안 좋은 건 그것뿐이다.
헤드스페이스를 듣는다. 15분의 영상과 35분의 영상이 끝나기 전에 잠이 들고 충전하지 않은 핸드폰은 꺼져 있다. 몸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잠을 잘 자는 법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