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거
집에 동물을 하나 데려왔다. 이름을 피비라고 지었다.
#2 단자
나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여 개의 창문들 중 특정한 하나에는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액자 속 바비 인형들 같은 모양이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물속에서 벗어난 깨끗한 시야가 보였다. 거실이었다.
욕조보다 훨씬 넓은 거실에 통째로 물이 차 있었고, 나는 그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무엇이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 느꼈던 것과 가장 가까운 느낌은 내가 스스로 나의 자세를 교정할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손을 물 위로 들어올려 보았다. 내 손은 가득 찬 물에 젖어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에 무언가가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투명하고 탄력 있는 젤라틴 같은 것이었는데, 각 손가락들 사이에 느슨하게 너덜거리면서 붙어 있었고 끄트머리에서부터 피가 번져 물들어 있었다. 특히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있는 것이 거의 다 떨어져나가 투명하고 붉게 젖어 있었다. 나는 그걸 지느러미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어떤 통증도 없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3 하얀색
3년 전의 나는 입을 벌리고 있다.
내 시야에는 나무 바닥의 무늬가 있다. 나는 혼자 주저앉아 있다.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채로, 내 눈은 활짝 열려 있고 입에서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오열하고 있다.
ㅡ 오열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단어를 찾아 보았다. - '목메어 우는 것' 이란 뜻이라는데 그럼 틀렸다. 나는 끊임없이 목구멍을 긁으면서 원기둥 같이 두껍고 길게 이어지는 것을 토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며 웅크리고 있다. 꼼짝 못한 채로 모든 순간에 나는 선명하게 경악하고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나는 몸을 일으켜 복도를 걸어 간다. 입은 여전히 벌려 있고 소리는 뜬 눈과 코 뒤와 목구멍을 진동시키고 있다. (글로 적을수록 소리가 사라지고 있고 다행이다) 나는 한 방 앞에서 멈춰선다. 내가 내는 소리임에도 소리는 쉼없이 내 눈썹을 치켜뜨게 하고 눈을 크게 열리게 하는데도 방 안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미동이 없다. 하얀 빛의 침대 속에서 그들은 마치 평온한 아침을 맞듯이 천천히 몸을 꾸물거리며 일으키고 있다. 나는 내가 토해내는 소리가 공포인지 절망인지 분노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잠에서 깼다. 정신이 들자마자 나는 내가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가가 깨끗하고 건조했다.
#4 일기
피비의 선호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껍질 안쪽의 단 살을 먹으면 눈이 더 또렷해지고 빛난다. 그럴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쟤 눈이 돌았다 -이다. 발톱이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갈비뼈 쪽에 피딱지가 생겼다. 무서울 정도로 빨라질 때가 있다. 이 애에게 귀엽다는 말을 생각보단 잘 하지 않는다.
탈의실에 들어가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엉엉 울다시피 하며 함께 들어왔다. 안내 직원이 어떡해요 울지 마세요, 많이 아프셨어요? 하면서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주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핑크색 줄무늬가 그려진 가운을 벗으러 들어갔고 나는 같은 가운을 들고 들어갔다.
나는 가운을 입고 밖으로 나와서 앉았다. 그래도 반지와 목걸이를 많이 하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사람의 손과 같은 모양으로 가운의 헤진 핑크색 끈을 묶었다. 목의 옷깃보다 한참 짧은 머리카락과 쇄골 언저리에 내려온 목걸이에서는 온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울던 그 사람이 한층 말간 얼굴로 유리문을 열고 나갔다.
# 수
ㅡ 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다고 해보자.
거기에 100명이 들어간 걸 촘촘하다고 부르는 거야.
그 방에 200명이 들어가도, 400명이 들어가도,
500에서 600명이 들어가도 다 똑같이 촘촘하다고 하는 거지.
너도 촘촘하지.
너는 몇 명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