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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궁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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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시리즈를 보진 않았지만요.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라고요.
어릴 때 제게는 사촌 오빠가 아주 많았는데요. 집에서 저는 첫째지만 친척들 중에서는 막내 쪽이라서요. 스무 살 차이부터 열다섯 살 차이까지 되는 사촌들이 아주 많아서 가로등처럼 긴 친척들 사이에 어린애처럼 껴있곤 했고요.
그 중 셋째 고모부의 둘째 아들인 사촌 오빠는 저에게 귤을 잘 까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 덧붙였는데 유조야 귤에, 알알이 있는 거 있지. 그게 다 씨거든. 그걸 먹으면 뱃속에서 귤나무가 자라는 거야. 뻔한 얘기죠. 어릴 땐 너무 이상한 얘기였고요. 하지만 우린 뻔한 얘기보다 항상 이상한 얘기를 믿어버리지 않나요?
아주 오래 좋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요. 얼마나 오래냐면 그 애를 만나지 않는 날에도 그 애가 날 볼 거라고 생각할 만큼요.
입고 나갈 옷을 고를 때 나는 가끔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 애는 뭘 하고 있을까? 지금 당장, 지금 이 순간. 그럼 나는 꼭 전생을 추적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그 애가 분명히 어디에 있겠지요. 분명 뭘 하고 있겠죠. 내가 옷을 고르는 동안 그 애는 어쩌면 느린 동작으로 이를 닦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 분명한 공존과 미지의 행동.
그러니까,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안부부터 묻고 시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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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몇 명이 탔는지 헤아리는 수수께끼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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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가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나무 계단이 아주 가파르고, 마른 담쟁이가 창틀을 가로질러 붙어있는 곳이요. 여기 정강이 만한 모카빵은 삼천오백원, 팔뚝만한 소금빵은 천칠백원입니다.
제가 어딘가를 가는 날에는 늘 비가 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날도 비가 왔겠지요. 하지만 아직 빗줄기가 강하지는 않습니다. 아침의 지하 주차장에서는 비 냄새와 먼지 냄새가 났지만 - 딱 그만큼만요.
나는 창틀 앞에 앉아있습니다.
나뭇잎은 초록으로 짙고 두꺼워져 창밖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습니다.
보통 이곳엔 사람이 거의 없고, 오늘은 비가 오는데요.
회색 승복이 보입니다. 그 뒤로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남자 세 명이 따라 올라옵니다. 스님만 자리에 앉고 남자들은 모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차와 빵을 쟁반에 담아가지고 옵니다.
등 뒤에서 자리를 잡는 사람들의 어수선함이 잦아들자 나는 몸을 완전히 창 쪽으로 돌립니다. 오른손에 끈적한 시럽 방울이 묻어 있습니다.
별 게 아닌 거야. 고양이가 손을 혀로 핥으면 또 기분이 좋고. 스님은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목소리군요.
앳된 목소리들이 이어지면서 기독교와 천주교와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스님은 계속 이야기합니다.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다 같은 신을 생각하고 있겠느냔 말이지. 다 다른 신이란 말이야.
이곳의 얼그레이는 맛있습니다. 비가 오기 때문에 공기가 차갑습니다. 김이 솟아오릅니다. 6월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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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 위입니다. 날은 흐리고, 간간이 날벌레들이 날아다닙니다.
저 앞에 두 사람이 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아마 열대여섯 살쯤 된 아들과 엄마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보도 블록 위에 흐릿한 얼룩이 있습니다. 걸어갈수록 날벌레들이 많아집니다.
그 앞까지 가자 얼룩이 조금 더 잘 보입니다. 회색빛 얼룩은 크기가 큽니다. 그 얼룩은 모두 길쭉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벌레들입니다. 그곳에서 벌레들이 하나씩 날아올라 멀리 나아가고 있습니다.
옆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습니다.
이게 뭐예요?
다 깨진 거죠, 다 깨진 거예요, 여기서.
보도블록 틈이 유난히 넓었기 때문에 나는 블록이 깨졌다는 건지 다른 것이 깨졌다는 건지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랑은 현재가 거의 없죠. 어떤 사랑은 끊임없이 복선을 쌓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에서 상대방의 눈은 꼭 흐려지지 않더군요. 징조처럼 아직 보이지 않는 불안의 눈.
그 벌레들은요, 얼룩처럼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기어다니던,
그것들은 다 날아갔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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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하러 갑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넓은 공원을 가로지르면 도착합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아이보리색 높은 기둥이 두 개 있습니다.
그 날은 그 기둥 사이에 앰뷸런스 한 대와 소방차 두 대가 서 있었습니다. 좀 더 들어가니 형광색 옷을 입은 소방관들이 몇 명 있었고요.
예, 불났어요. sns에 올라왔어요.
그 중 한 명이 말합니다. 맞은편에서 엷은 입김 같은 연기가 쌓이며 올라오고 있습니다. 나는 유리문을 지나 경비원을 만납니다.
아파트에 불이 난 건가요?
아닙니다, 건너편인 것 같은데요. 저희도 확인 중에 있습니다. 몇 호 오셨죠?
이곳의 엘리베이터 천장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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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어떤 사랑은 침착한가요?
만지지 않고 질감만 가질 방법은 없나요?
약속하는 아이스크림 말고
다르게 입맞출 순 없나요?
당신 목을 안고 싶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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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극을 올렸습니다. 제 이름은 나였고요.
가 나 다에 대한 글을 쓴 지 한 달만입니다.
리허설은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고 연습이 끝나면 나는 가와 함께 저녁을 먹곤 했습니다.
크게 까다롭지 않은 가는 내가 가리키는 곳마다 기꺼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어둡고 뒤죽박죽한 블라인드 아래에서 가는 노란색 잡지를 뒤적이다가 대뜸 가방에서 갈색 노트를 꺼냈다. 언니 그려줄게.
나는 푹신하고 검은 소파에 유연하게 기대앉은 모양이 되었고 가는 줄이 그어진 노트 위로 샤프를 달각거렸다. 종이 위로 그르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고, 어 뭐야
샤프심이 없다 다음에 그려줄게.
하며 가는 아무렇지 않게 샤프와 노트를 회색 가방에 넣었다. 나는 웃는 소리를 낮추지도 않았고 가는 다른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건 그러니까 나에게는
아스팔트의 형형색색과 고집과 ㅡ 열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눈매 다정한 매서움 ㅡ 이해 저편의 새까만
천재 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니 천재임이 분명하다고, 실은
하지만 들어봐, 아스팔트를 건너려면 몇 개의 횡단보도를 지나야 하는지
그렇게 기어코 도착한 아스팔트의 여름은 나무를 전봇대를 가장 거대한 밑둥을 흐리고 알 수 없게 하는걸
칭찬이지? 가는 물었고 나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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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독일
눈과 눈
기억과 기억
대사와 대사
사랑과 사랑
슈가, 설탕
바나나를 넣은 술
마르코와 노벨라
무엇이 궁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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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양과
우연의 양
하나하나 만져본
가져본 적 있어요?
당신 앞에 앉은 사람 스웨터가 무슨 느낌인지
버스 안에서 나무가 자라는지
알아요? 그거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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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하지만 이곳의 아방가르드는 제일
뒤에 있습니다.
저는 사실 아방가르드를 정말 싫어
하는데요, 하지만 아방가르드만큼
예쁜 건 잘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지
물렁한 것보다는 아방가르드를 좀
더 편안해 해요.
brutally honest 라는 말 아세요?
하지만 사실 솔직은 상대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무참한 것 같고,
그래서 아방가르드인 걸 거예요.
하지만 어차피 방패가 몸보다 딱딱
하다면,
이 뒤쪽에서 이야기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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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평생을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
하며 지냈는데요,
예전에는 외로운 건 별난 것 때문
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질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죽음 없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국의 욕설과 이곳의 눈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목욕물의 적당한 온도
매년 돌아오는 여름
하늘의 라벤더의 질감
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외로움이
그런 거라고요.
보고 싶어요. 너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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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독일의 E를 만난 다음 날
--- 오 년만에 발견하게 되는 유리창 밖의 독일 학교
ㅡ 마지막 리허설이 끝난 날
--- 택시 안에서 반복 재생되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ㅡ 작열하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와
--- 그림자로 그린 산타 마리아 노벨라
lll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주황색lll
lll기억의 캔버스와lll
lll질문들lll
[ 출처 ]
표지 이미지: Gallery Grappe ⟪아직 도착하지 않은 너를 위해⟫ 전시, 이여운 작가
이미지 1: Gallery Grappe ⟪아직 도착하지 않은 너를 위해⟫ 전시, 고은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