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by 유조


척도가 늘어나고 있다

발이 뜨겁거나 단 것에 돈을 자꾸 쓰고 싶어지면

저녁에는 반드시 아플 것이라는 예측이 된다

그래서 꼭 우유가 든 커피를 사오면 그 날은 발이 뜨거워지곤 했고


중독에 대한 영화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O의 그림자가 몸 위로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유리 탁자 위에 내가 손에 쥔 안경을 올려주고 바슬한 분홍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 느껴졌다

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이 왠지 너무 부끄러웠다

O가 내 중독을 보살피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르면서

어렴풋한 꿈의 논리대로 아주 많이 부끄러워했다


Q의 집에서 잤다

사실 다음날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망원을 가보자고

그런 계획을 세웠었는데

고요한 현기증

무릎을 감싸안고 내내 이야기하다가 새벽 5시에 비척거리며 잠들었고

Q는 함께 점심으로 말간 카레를 먹고 들어와선 낮잠을 잤다

내 머리 아래 팔을 둔 채로 뒤척거리면서

초저녁에 일어나더니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적당히 몸을 누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꿈에 문어가 나왔다

나와 가까운 사이였다

창틀 너머로 나는 문어가 스스로 죽으려는 것을 보았다

하얀 종이에 그린 목탄 같았다

그 앞에 서서 안 된다고 울고 소리를 질렀다

깨고 나서도 꿈이 웃기지 않았다

꿈 이야기를 O에게 했더니 웃었다

문어에게 미안해졌다 정말로


O와는 학교를 같이 다녔다

부스스한 얼굴로 나란히 감색 옷을 입고 걷다가 같이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언제 서로가 함께 과거로 왔다는 걸 알게 될까?'

아마도 나는 숏컷을 했었다는 말실수를 하게 될 거고

Q는 하얀 강아지에 대한 말실수를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때일 거라고


날이 아주 흐렸다

뭘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Q는 점심 먹고 운동장 돌던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대학이 있는 신촌과 지난 주말에 갔던 상수역을 가보자고 했다

우린 기껏해야 떡볶이만 사먹고 다녔잖아

생각하다보니 너무 그러고 싶다면서 Q는 당장 방법을 찾아내라고 나를 흔들어댔다

웃다가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잠이 들었는데 어렴풋하게 Q와 손을 잡은 것 같았다

깨어있을 때는 절대 안 하는 짓이었다


오래된 주택 안이었다

나는 나무 바닥에 누워 있었고,

머리 위로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머리를 높게 묶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그걸 들키는 순간 죽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뺨을 바닥에 가능한 가까이 붙이고 있었다

감은 눈 안으로 계속 벼락이 번쩍이는데

누군가 내 위로 엎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사람의 고요하고 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나보다 먼저 찔리기를 원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이었다

비가 아주 많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 달리고 있었고, 곧 밝은 벽돌 골목 사이로 숨어들어갔다

있는 대로 비를 맞으면서 그 사람은 뭐라고 외쳤다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그 사람이 등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나는 그 사람 앞에 서서 애원하고 있었다

네가 형편없는 인간이란 걸 알아,

근데 지금 나는 아무도 없고 나는 네가 너무 필요해

그가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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