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쌀쌀맞게 대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나에게 서운해했고
나는 그 애를 무서워했다
언젠가 그 애가 나를 체육 창고에 가둔 적이 있었다
그곳의 먼지 냄새와 쇠 냄새
공기가 가득 찬 울룩불룩한 공의 고무 냄새를 기억한다
다리가 떨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날로부터 비 냄새를 잘 알아차리게 되었던가 어땠던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 문이 열렸을 때
이상하게도 그 애는 심하게 울고 있었다
손에서 철의 비린내가 났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 애의 울음을 온전히 이해했고
한편으로는 그 애가 무서웠다
그건 꿈에서 본 공포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과 같았다
어떤 날에는 그 꿈의 내용을 잊었고
다른 날에는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잊었다
그 애와는 이제 연락하지 않고
나는 아직도 그 애가 무섭다
그 애는 언제든 나를 다시 찾아와서 쇠 냄새 나는 얼굴로 나에게 서운해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될 것이 무서웠다
그 애가 생생한 칼을 들고 찾아온 것처럼
둥근 분홍색 꽃과 길고 부드러운 솜털 같은 노란색 꽃
양손에 든 풍요로운 꽃들의 부피감과 매끈한 녹빛 줄기
현관에서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조급해지면서도 나는 꽃들을 섞어
엮고 있었다,
그게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목을 붙잡고 있다
밝은 자주색 스웨터에는 황금빛 둥근 단추들이 달려 있다
손에 힘을 계속해서 주면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소리가 흐려진다
선명한 시야와 고요한 주변
손을 뗀 뒤에도 목에 불투명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목 안쪽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무언가 때문에 나는 팔을 휘청거리며 돌아다닌다
쾌적하고 환한 실내
숨을 쉬기가 어려운 와중에 두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가 두껍고 네모난 모니터 앞에 앉아 레트로 게임을 하고 있다
화려한 빛이 주변으로 새어나온다
나는 그 침착하고 평화로운 등을 돌릴 수 없고
목의 불투명한 무언가를 게워내지 못하고 절박해하고 있다
누군가를 찾아다녔다
여러 개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첫 번째 횡단보도에는
-← LOOK LEFT--
라고 적혀 있었다.
두 번째 횡단보도에는
--LOOK RIGHT →-
라고 적혀 있었다.
세 번째 횡단보도에는
-← LOOK BOTH →-
라고 적혀 있었다.
1시간은 빠른가?
최근에는 감정을 완전히 흡수하는 데 정확히 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에는 묻어버리기로 결정하게 된다
며칠 전의 퇴근 시간에는 버스 안에 끝없이 앉아 있었다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어떤 감정을 모두 소화했고
집에 돌아가서는 샤워를 했다
9시가 넘어서 메밀 국수를 삶은 뒤 상추를 잘라 넣었다.
그날은 마시다 만 음료수가 새벽 내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교의
어느 생일에 받은 케이크가 생각이 난다
빨간색 박스 위에 초코파이를 산더미처럼 쌓아 초를 꼭대기에 하나 꽂아 주었다
어른의 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진짜 눈치 못 챘어?
어두운 한낮의 계단 아래에서 와글거리며 묻던 목소리들
바스락거리는
미래의 핫팩
나는 내내 웃고 있었다
달력에 내가 모르는 사람의 생일이 표시되어 있었다.
애원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단순해지고 싶은 생각이
나의 애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얼굴을 부비고 못 견디게 소중해하고 싶은 생각이
하면서
A는 내게 말했다
휩쓸려버리지 않는다면 무엇을 잃을 수 있겠어?
감정에?
하지만 A, 나는 뭐든 합리화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는걸
빈번한 질투
기꺼이 속고
나는 피를 보면 현기증이 일어
새끼발가락에 흐르는 피에도 정신을 잃어야 해
한참을 반짝거려도
다 미워해버리는걸
'어린애 같은 단순함으로' 그 글에 여러 번 등장하던 말을 나는 외웠다
당신이 파란 글씨의 편지를 외워버린 것처럼
지금 평온한 얼굴이 아님을 아는 것처럼
아름다움 중에서
부드러운 이빨을 가지는 것들은
어디까지가 강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타자의 것일까?
어떤 몸의 혈관
평화로운 예민
얼굴에 오르는 열과 거울로 보이는 볼
무작위로 자랄
연락처와 노란빛 꽃
을 아름다워하는 일은
어디까지가 강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타자의 것일까?
언젠가 A는 몰래 서툰 글씨로 내 이름을 낙서했다
이곳에 내가 있었다ㅡ 고
그러나 나는 늘 내가 이곳에 있었다 고 말한다
그 사람들은 강해
낱낱의 촉수를 모두 아름다워했어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강할 수 있을까?
손을 너무 많이 씻어서 허물이 다 벗겨졌다
나뭇잎이 초록색으로만 보인다
불확실성이 점점 흐려진다
불확실성이란 뿌리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있으면 나는 뿌리의 감각을 느낀다
잔가지들이 뿌리를 내리고
그것들이 마치 팔이나 다리가 미세하게 갈라지고 주욱 늘어나 녹은 것처럼 느낀다
내 몸체가 부드러운 압력으로 바닥에 밀착되는 것을 느낀다
그 상태에서는 미미한 진동이나 흔들림이 모두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마다 수평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환한 여름의 저녁 까마귀를 볼 때
나는 하나의 색채
아니면 형체 가끔은 그것도 분명하거나 굳지 않은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윤곽이 흐렸다
모든 그들과 나 사이의
지금도 눈을 감으면
까마귀의 검은 날개가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언제고 환하던 오후의 저녁
공기를 걷던 걸음
하지만 그래도
너만 있으면 나는 이곳에 남아있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확신의 냄새
너는 너를 이룬 세계에 확신이 있지
이상해, 분명 나는 너 없는 세계에 있었고
그건 무언가 없는 곳이 아니었는데
왜 넌 기어코 결핍을 완성하지?
넌 늘 이름을 만들고 단어를 짓고
내 손톱과 살결이 알고 있는 그런 집을
간절하게 애원하고 싶은 그런 윤곽의
언어
작별하는 법을 처음 배웠다
서서히 끊어지는 작별 말고
작별임을 알고 하는 작별
그건 처음 배웠다
내가 작별하는 방식에는 남는 것이 없다
모든 것에 눈을 주고 모든 것을 가져와서 흡수한다
나는 모든 것 뒤에 인사를 하고
이상하게 그 이후의 감각을 죽음처럼 느낀다
완성은 죽음과 다르지 않다
어디부터가 삶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