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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멀쩡할 땐 모르는 사실

by 유주씨

아침에 생감자에 싹이 나기 시작한 걸 봤다. 껍질 벗겨서 냉동하고 국거리에 넣으려고 손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작은 감자에 맨손으로 필러를 쓰다가 갑자기 통증을 느꼈다.



중지 손톱이 중간부터 잘려나가고 살에 상처가 나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고무장갑 끼고 조심히 했어야 했는데 필러도 칼이란 걸 무시한 탓이다. 피를 씻고 팔을 들어 올려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했다. 손수건으로 지혈을 하고 연고를 바른 뒤 드레싱을 감았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면서 더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머리도 어젯밤에 감고 자서 안심이다.



손가락이 욱신거려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왼손을 최대한 쓰지 않은 채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렸다. 속도가 느렸지만 하는 수 없이 천천히 움직여 밥 먹고 양치도 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았던 몸의 한 군데라도 다치거나 아프면 지장이 분명 있다는 걸 느꼈다.



안 아픈 게 돈 버는 거고 아프고 다칠 일 없을 때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라고 하신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신체적으로 큰 병 걸리거나 수술대에 누운 적이 없었던 지라 신체건강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손가락 하나에도 그동안 별일 없이 살아서 감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도 대부분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멀쩡할 때는 모르는 것들을 뜻밖의 순간에 느끼게 한 감자필러에게도 감사해야 할지…(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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