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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봄의 아카시아 속에서

계절을 축복하며

by 유주씨

아카시아 향기가 번지는 따뜻한 봄이다. 얼마 전엔 시골집으로 내려가 제철 봄나물 무침을 맛있게 얻어먹었다. 가죽나물 무침은 향이 매혹적이고 두릅나물처럼 봄이 왔음을 땡땡 울리는 제철음식이다. 둘 다 나무에서 자라는 걸 따온다고 들었다.


매화나무에선 초록 매실이 몽실몽실 열려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고, 제비 두 마리가 지붕 아래에 놀러 왔다. 재작년에 선대 제비들이 지어 살던 둥지 속을 장갑 끼고 미리 청소해 두었는데 구축이지만 살짝 리모델링해서 살아주었으면 했다. 다음에 갈 땐 제비 가족을 볼 수 있으려나. 차창 너머의 산은 갈색빛을 지우고 일일이 표현할 수 없는 푸르른 색감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한봄의 계절에 태어났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계절이다. 다만 너무 짧게 스치듯 지나가서,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땐 맘껏 누리지 못한 해도 많았다. 그래서 한겨울, 한여름은 있어도 한봄이란 말은 쓰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의 계절을 누릴 마음만 있다면 한봄이라는 단어에도 작지만 강한 생명력이 생길 것만 같다. 나의 축복을 받는 한봄의 계절에 태어난 나는, 이제 내 존재도 축복하고 싶어진다.



일 년 중 일주일이면 사라질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면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계절을 즐길 감각들이 살아 있어 지금 사는 재미도 있는 거겠지. 따뜻하고도 시원한, 생동감 넘치고 색색이 아름다운 이 계절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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