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도 시작하고 건강해지는 일상
정말 오랜만에 쓰는 브런치 글이다. 두 달 전, 병원을 다녀왔는데 그때 처방받았던 신경안정제가 사라졌다. 분명 기억 속엔 매번 약을 두는 다섯 번째 서랍에 매일 먹는 약과 함께 넣어놨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약봉지에 발이 달렸는지 정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전에 받은 신경안정제 두 알이 남아있었고 꼭 필요한 시기는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았다. 한 달에 두 알은 꼭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동네 병원을 찾아가서 받아오기도 애매하고 아껴먹기로 결정했다.
한 알은 생리 전 증후군 비슷한 게 왔을 때, 기분이 마구 날뛰고 있을 때 후딱 삼켰다. 그리고 남은 한 알은 강박사고가 멈추지 않고 자꾸만 집에서 뛰쳐나가고 싶거나 술을 들이켜고 싶은 충동이 들어서 먹었다. 이제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병원까지 갈 날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아있다. 그동안에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그때마다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데 사실 잘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뭐 이런 거에 스트레스를 받나 싶을 일에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으니 다루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남은 일주일을 신경안정제 없이 잘 견디기 위해서 나름대로 일상생활을 잘 영위하도록 애쓰고 있는 중이다. 밥과 약을 제때 잘 챙겨 먹고 잠도 늦지 않게 잔다. 또 우울감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 일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
하고 있는 일이란 건 요즘 들어서는 부업이다. 전선을 꼽는 단순 작업으로 단가가 매우 낮은 저임금 노동이지만, 시간 보내기도 좋고 한 달에 몇십만 원 버는 용돈 벌이도 된다. 세 달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외출할 일 없으면 매일 꾸준히 앉아서 한다. 약 3-4일간 목표량을 세우고 작업시간을 배분해 적당히 쉬는 시간도 만들어가면서 열심히 일한다. 노동력 대비 임금은 매우 적지만 집까지 배달해 주고 수거해가기까지 하니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어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용돈만 간신히 버는 백수로 지낼 시기에는 집에서 일하면서 한 달에 2-30만 원만 벌면 좋겠다 했는데, 막상 그렇게 벌어보니 더 큰 욕심이 생기더라. 이제는 목표가 50만 원으로 앞으로 다른 투잡을 가져야 가능하겠지만, 저축에 대한 욕심이 나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으로 보고 있다.
이 부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었고 돈을 벌 의욕조차 거의 없다시피 살았다. 작년의 가계부만 봐도 본가에 얹혀살면서 얻어먹다 보니 한 달에 평균 5만 원 정도만 지출했던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삶의 의욕이 바닥을 치곤했었다. 주변과 비교했을 때도 터무니없이 적게 쓰는 걸 알고 친구에게 상담을 받으며 물욕을 끌어올리는데에 집중했다. 그렇게 안 바르고 지내던 토너와 로션을 주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랜 친구와 부산 여행을 가는 등 돈 쓸 곳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없던 물욕은 여러 자극으로 인해 돌아왔고 유사 미니멀리스트에서 다시 적당하게 사람 사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렇게 나는 여기서 한 번씩 근황을 털어놓고 병의 경과를 확인해나가는 과정을 브런치와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가끔은 눈물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쩌면 이젠 아프지 않은 사람들과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덜 버거운 인생살이를 하고 있어서 그나마 감사한 기분이 든다. 더디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하루하루 잘 버텨낸다는 것에 의미를 두면서 다음 주에는 신경안정제를 잊지 말고 다시 타와야겠다.